나만의 사랑방식

가족들과 나는 통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부모님이나 언니가 내게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 이상 내가 직접 전화를 하진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고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언니 가족은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님이 또 언니 집에 가셨나 했는데 알고 보니 언니도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 나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빠의 언니와 조카를 향한 밝은 목소리가 나를 아프게 했다.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부모님과 언니는 내게 저 멀리 떨어진 섬과 같았다. 부모님과 언니가 한 섬이고 난 저 멀리서 그 섬을 바라보는 작은 섬이 된 느낌이었다.


아주 가끔 아빠가 전화를 주시지만 엄마와 통화를 하는 날은 거의 없다. 일 년에 몇 번 통화를 할까 말 까다. 통화를 해도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들의 시시콜콜 주고받는 이야기를 난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안방에서 들려오던 부모님과 언니의 대화가 생각이 난다. 방 문 너머로 들려오던 웃음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한 집에 살고 있었지만 없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감정 표현 없이 있는 사실들만 주고받는 대화를 하고 어떤 사람은 이야기에 감정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서로의 힘든 이야기도 나누면서 고된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어야 진짜 대화를 한 것 같다. 우리 부모님과 언니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들이다. 언니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속 한번 썩인 적이 없었고 싸운 적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원하는 대로 공무원이 되어 성과도 내고 돈도 잘 버는 착하고 어여쁜 딸이다. 반대로 나는 그런 가족들 사이에서 늘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울부짖었다. 지금도 부모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신다. 나는 살면서 나름 우여곡절이 많았고 방황도 했다. 중고등학생 땐 주말마다 집을 나가 나만의 쉼터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의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신다. 알았다면 분명 쓴소리를 하시거나 관심을 두지 않으셨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손상된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기에, 감정 섞인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표정이 굳어지신다. 그래서 난 이야기를 하지도 전화를 하지도 않는다.


그 어떤 걸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저 부모로서 자식의 힘든 부분도 들어달라고 하는 건데, 우리 부모님은 전혀 듣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카와의 영상통화 속 들려온 아빠의 목소리는 반가우면서도 전혀 반갑지 않았다. 영상통화 속에서, 언니의 전화로 걸려온 아빠와 큰 아이가 인사를 했다. 참 이상했다. 내가 직접 전화할 수도 있지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난 주말 언니 가족이 놀러 왔을 때 남편은 부모님께도 오시라고 전화를 해보라 했지만 선뜻 하고 싶지가 않았다. 분명 난 그들 사이에서 외딴섬이 될 것이 분명했다. 언니를 바라보는 엄마의 미소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내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다. 내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철렁하신다고 했다. 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신다고. 그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일까? 자신들이 걱정되어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논리로 설명이 될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전화를 하지 못하고 부모님도 걱정되어 내게서 멀어지려 하신다면, 정말 큰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려는 건지, 앞이 막막해져 온다. 당연히 나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지만 나의 가정과도 해결이 되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게 될 땐 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조금은 슬픈 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성인이라면 으레 참아야만 한다는,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모습이 바로 그런거라고 내가 나를 억압한다. 멀리 있어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잘 있을 거란 믿음 하나로 버텨내야 한다. 나는 어떤 속상한 마음이 있어 전화하고 싶어도 늘 꾹꾹 참아낸다. 지금의 사이마저 더 틀어질까 두려워 참는다. 이것이 부모님을 향한 나의 사랑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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