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남편을 위해 분주히 집안 정리를 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사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밥을 먹고 온 집안에 걸레질을 했다. 남편이 청소기를 어디론가 가져간 바람에 걸레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밀대에 젖은 걸레를 끼우고 소독제를 뿌린 후 열심히 바닥을 밀었다. 땀이 뻘뻘 나도록 걸레질을 했다. 그 와중에 막내를 돌보고 재워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불꽃축제를 하는 곳에서 여러 행사와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고 있던 때에 나는 고군분투하며 집안을 청소했다. 온갖 장난감이며 잡동사니를 제자리에 갖다 두고 빨래를 갰다. 중간중간 머리카락을 집어 쓰레기 봉지에 넣었다. 청소기로 먼지와 머리카락을 휘리릭 빨아들였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야속하게도 청소기는 어디로 가있는지 버려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노트북에 끼워져 있던 마우스도 사라졌다. 워낙 버리기를 잘하는 남편의 작품인가 싶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 씻고 찾아봐도 그 어디에도 마우스는 없었다. 노트북을 연결하는 선도 분리되어 빠져 있는 걸 보니 남편의 짓이 아닌가 싶었다. 짜증 나고 화가 났을 때 남몰래 버리는 것이 취미이신 남편님이신지라 남편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들어왔다. 역시나 둘째 아이는 졸려서인지 들어오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아이가 잠에 들려는 사이 나는 낑낑대고 아이를 화장실 의자에 앉혀 물로 대충 씻겼다. 아이는 짜증이 났는지 징징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떻게든 참으려 애쓰던 남편은 위아래 집에 사는 아저씨 아줌마가 시끄러워 쫓아온다며 징징대는 아이를 다그쳤다. 제발 좀 징징대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걸까?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게 하는대는 남편의 다그침이 가장 크게 일조를 한다는 것을 정녕 남편은 모르고 있는 걸까?
남편이 베란다 장에 숨겨 놓은 청소기징징대는 아이를 재우려 아이 옆에 앉아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동안 갑자기 촉이 왔다. 남편이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 베란다에 있는 장을 열어보았다. 혹시나 남편이 눈치챌까 베란다 불을 켜지 않은 채 들여다본 장 안에는 익숙하고 큰 무엇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청소기 본체였다. 단단하고도 듬직한 청소기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청소기가 사라진 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도 모르고 땀 뻘뻘 흘려가며 걸레질을 했으니... 그래도 재밌는 사건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비록 마우스를 찾지 못해 커서를 움직이는 데 불편하긴 하지만 베란다 장 속에 덩그러니 모셔져 있던 청소기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그래, 당신이 아무리 화가 나도 본인이 본인 돈 주고 산 물건인데 어떻게 버리겠어. 겨우 생각해 낸 곳이 베란다 장이야?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하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숨기고 찾아내고 숨기고 찾아내고, 우리 부부는 이렇게 숨바꼭질을 하며 참 재미나게도 살고 있다. 나도 참 웃기다. 남편에게 청소기가 마우스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될 것을, 남편 몰래 현장 사진을 남겨놓기 위해 남편이 잠이 들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첩보영화도 아니고... 코미디가 섞인 첩보영화다. 남편이 무서우면서도 우습기도 하다. 청소기를 발견했을 땐 남편이 꼭 병적인 사람으로 생각되더니 지금은 그냥 우습다. 꼭 어린아이가 하는 장난 같다. 형에게 심술이 나서 형의 물건을 몰래 숨기는 것 처럼 말이다. 도대체 정신연령이 몇 살인 걸까. 둘째 아이와 동갑인 7살 어린아이 같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어린아이의 행동과 비슷하다. 반대로 그가 날 어리숙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볼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당신처럼 심술을 부리지는 않는다고!
그래 언제까지 말 안 하나 보자. 시할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화가 나시면 시할머니에게 6개월 동안 말을 걸지도 않으셨다는데 남편도 그런 할아버지를 닮은 건지. 더 심하게도 말하고 싶지만 욱욱하고 올라오는 미운 감정들을 밀어내려 애쓰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기 전 빨래를 개며 상상했다. 18평 정도 되는, 보증금만 내고 살 수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딸 셋과 살아가는 상상을 했다. 예전에 가보았던 지인의 집이 생각이 나면서 딱 그 정도의 평수와 집안 환경이면 아이들과 내가 오순도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는 주변에 이혼을 한 사람들을 보면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재밌게 산다고, 너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언니는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걸 위로라고 한 말인가. 현실적인 언니에겐 그 모습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아무리 혼자가 자유롭다 해도 가정을 가졌다 잃는 것이 어떻게 행복하고 즐겁겠는가. 아픔과 후회가 남아 마음 한 구석이 외롭고 힘들지 않을까?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때론 이렇게 가슴 졸이고 힘든 날들이 나를 불안하고 힘이 빠지게 하겠지? 그의 비난 같은 말들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하겠지. 그럼에도 가정을 유지하는 게 의무 아닌 의무로 다가온다. 나는 이런 날들이 싫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화를 내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때론 서로에게 긍정적인 말들을 해주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서로를 힘들게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내면 낼 수록 피하고 싶고 멀어지고 싶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이들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볼 때마다 '지엄마 딸 아니랄까 봐', 혹은 '누구하고 똑같네' 하며 비아냥대며 말하는 데 그 말은 내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꾸만 죽고 싶어 진다. 문제점을 고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책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 부디 화가 났을 때 이성적으로 감정 조절을 잘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