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의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자꾸만 죽는 상상을 하게 된다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그동안 언니 앞에서 울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죽고 싶어질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마다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나 지금 너무 힘들고 속상해 내 존재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어서 꼭꼭 숨겨두었다가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언니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언니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이럴 거면 왜 이혼하지 않았냐고, 예전에 정리하려 했을 때 헤어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힘들 거면서 셋째는 왜 낳은 거냐고 원망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남편과 결혼한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아무 일 없이 본인 일 잘하며 살고 있는 언니가 새삼 부러우면서도 이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남편과 결혼 전 더 오래 만나봤어야 했다고, 그때도 지금의 남편의 모습이 나왔을 거라고 했다.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없고 둔해서 보이지 않았을 거라 했다. 사실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나왔던 남편의 단호함이 내게 상처가 됐고 울기도 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결혼을 선택했던 걸까. 결혼한 지 10년이 다되어가는 이때, 왜 이제야 남편과 결혼한 이유를 나에게 되묻는 걸까.
특별한 이유 없이 그가 좋았다. 매일 밤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그가 좋았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와 손을 잡고 걷는 게 좋았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와 손을 잡고 걷다 다리 밑을 지나면서 "오. 눈이 멈췄다"라고 말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별거 아닌 말에 함께 웃는 것이 좋았다. 안경을 쓴 그의 눈이 나를 향해 웃고 있어 좋았다. 반달눈이 되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의 선한 눈빛이 좋았다. 결혼을 약속하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나에게 장미 꽃다발과 편지를 건네주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 편지지 속에 너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란 메시지가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를 그토록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왜 이리도 차갑고 무섭게 변한 건지.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비난조로 이야기하던 그의 말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내 가습을 칼로 도려낸 듯이 아파왔다. 이런 나의 힘듦을 아는 사람들은 남편과 내가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만나고 결혼했는지 묻는다. 그럼 난 1년 안되게 만났다고 말하며 창피함을 느낀다. 더 많은 계절을 함께 보내 봤어햐 하는데 성급했었던 건 아니었는지, 뭐 그리 급하다고 결혼을 서둘렀는지. 후회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강을 건넜다. 아이 셋. 어여쁜 딸들만 셋이다. 예쁜 아이들을 낳고 헤어지길 바라는 내가 밉고 원망스럽다.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비용이 얼마가 됐든 부부상담을 받아야 할까. 그가 너무 밉고 무서워도 우리 상담받자고 말할 수 있을까. 만만치 않은 비용 앞에서 무너져 버린 상담에 대한 의지가 약해져 버린 우리 부부가, 시간이 지나 관계가 더 악화된 건 아닐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지나간 과거를 들먹거리며 비아냥될 것만 같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메아리가 치는 듯 자꾸만 소리가 점점 퍼져 나간다. 온몸을 파고들어 가 나를 괴롭힌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짧은 연애기간이었지만 우리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더욱 괴롭다. 180도 변해버린 그의 마음이 진심인 걸까. 정말 내가 나가길 바라는 걸까. 나는 절대로 아이들을 놔두고 나올 수 없는데.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신중히 선택할 것이다. 당장이라도 다 뿌리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의 집 평수보다 훨씬 작은 집이어도 괜찮다고 아이들만 지킬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남편은 화가 날 때마다 곧잘 과거의 이야기를 들먹거렸다. 결혼 후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을 나열하며 마치 지금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듯이,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나를 노려본다.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도 나도 관계 맺기에 미숙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대화를 할 땐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각자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로부터 도피해 온 가정이라는 곳에 성급히 발을 들인 우리였다. 마음속 쓰레기들을 치우지도 않은 채 만들었던 가정은 온통 상처로 뒤범벅되었다. 서로의 말로 서로를 갉아먹었다. 할퀴고 긁어 살이 패인 자리에 깊은 상처가 자리 잡았다. 딱지가 저절로 떼어져 새 살로 회복되기도 전에 또다시 딱지를 떼어 내 보기 싫은 흉터 자국만이 남았다. 흉터 자국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피해보려 해도 피할 수 없어 그 상처로 다시 곱씹고 또 곱씹어 서로에게 뱉어낸다. 나 이렇게 상처받았고 화가 났다고 으르렁 거린다. 그 으르렁 거리는 사자의 들썩이는 입 주변의 떨리는 살을 보며 나는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 약해진 마음은 나를 감추고 감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게 한다. 상처받지 않은 척, 착한 척, 순종적인 척하며 제자리를 맴돈다.
이렇게 겁이 많은 나는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답답한 가슴을 쥐어짜며 속으로 꺼이꺼이 운다.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낸다. 우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얼른 훔쳐낸다. 울면 왜 우냐고 이유를 말하라고 채근할 게 뻔하다. 직접 듣지 않아도 다 안다. 이미 학습이 되어 버린 그의 말투와 말들이 내 울음을 삼켜버린다. 더 이상 울지 못하도록 막는다. 방문도 닫고 마음도 닫아버린 나는 알 수 없는 슬픔을 감싸 쥐고 지금의 감정을 적어 내려간다. 눈물이 터질 듯 말듯하다 연신 코를 풀며 이제 더 이상 울지 않기로 결심한다. 죽고 싶다는 말도 죽겠다는 말도 더 이상 내 입에 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든지 간에 이리 흽쓸리고 저리 흽쓸리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것이다. 그 어떤 이의 생각과 말에 따라가지 않도록 나를 꽉 붙잡아 둘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의 진짜 감정과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낯설게만 변해버린 그가 진정 나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것은 아닐까 자꾸만 의심이 든다. 정말 지저분한 것이 싫어 화를 내는 것인지, 그의 마음 안에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쓰레기가 넘쳐흘러 그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해진 머릿속에 그 어떤 의심도 원망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점점 나 자신에 집중해 내 마음이 어떤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여다볼 것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머릿속 생각의 속도를 낮춰 나를 바라볼 것이다. 진짜 내 감정이 무엇인지 나에게 되물어 볼 것이다. 그 어떤 후회도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