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 오직 나를 믿고 버텨야 한다.

유아기를 벗어나지 않고 덜 깬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심리인 어머니 콤플렉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란 책을 읽다 콤플렉스에 대한 장을 읽다 눈에 들어온 부분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있었는데, 유아기를 벗어나지 않은, 이란 표현을 보니 내가 지금 유아기를 벗지 못한 상태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외식을 할 때에도 선뜻 먼저 계산하지도 못하고 음식점을 나올 때마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지. 부모님께 죄송하고 부끄럽다. 아이 셋에 서른여섯이나 먹은 어른이 부모님께 밥 한 번 제대로 사드리지도 못하고, 죄송하다 표현도 못하니 아이만 낳고 나이만 먹은 어른이 인 것 같다.


가정 안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도 꾹꾹 참고 누르다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조차도 나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어른이다. 며칠 전 남편과 다투는 상황이 발생이 되었다. 남편과 요 며칠 대화도 없이 지냈는데 남편이 우연하게 내 브런치 속 글을 읽고는 화가 잔뜩 나 나를 방으로 불러 내팽개쳤다. 자신을 공개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며 노트북을 덮어 버리고 던지는 시늉을 했다. 나는 남편의 몸짓에 흠칫 놀랐다. 소중한 내 글과 자료들이 담긴 노트북이 망가질까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노트북은 망가지지 않았다. 화가 난 남편은 방문을 닫고 이야기를 하자고 나를 불러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보이는 남편이 무섭고 두려워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아빠의 언성에 막내가 자다 일어나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토닥이며 재우는데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오라 하고는 대화를 시작했다. 진정한 대화라 할 수 없는 대화가 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는 남편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자 했다. 이제부터 내게 야! 야! 하고 부르지 말고 존댓말을 하자 했다.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싶었고 더 큰 싸움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존댓말을 시도했지만 남편은 화가 풀리지 않자 결국 존댓말은 날아가고 남편의 손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갑자기 안경을 벗기고는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세 개 내리쳤다. 순간 놀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 아빠한테 맞고 있다고 소리쳤다. 남편은 당황했는지 내 몸을 붙잡고는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내 몸을 감싸던 남편의 팔이 내 목을 눌렀다. 나는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나는 그 사람이 무엇에 화가 났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나에게 손을 댄 것 그 자체가 불쾌하고 화가 났다. 부부가 말싸움은 할 수 있다 생각하는데 소리에 민감한 남편은 내게 더 이상 말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이 소리에 민감하다 말한 적이 없는데 자신은 소리에 민감해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들리면 흥분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에 왜 이제야 말한 거냐고 되물었다. 내게 손을 대고 내가 소리를 지르자 당황했던 남편은 깜짝 놀라 더 이상 안 그러겠다 하자, 나는 당신 나랑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고 싶으면 당장 상담소로 가라고 했다. 상담받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라 말했다. 당신이 자신을 인식하지 않으면 오늘 일은 또 일어날 거라고 토로했다.


도무지 남편의 답답함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억울함이 가득 찼는지 아이 앞에서 자신의 몸을 치며 내가 미친놈이라며 자학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나는 큰아이와 바람 세고 오겠다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남편은 아이만은 나가지 못하게 했으나 나는 서둘러 막내 아이를 품에 안고 큰아이와 밖으로 나왔다. 그 와중에 나는 냉장고에 있는 커피와 음료를 챙겨 나왔다. 마치 감옥을 탈출한 듯 시원한 새벽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온 시간은 새벽 2시였다. 아이는 아빠가 무섭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우는 아이를 보니 나마저도 두려워 온몸이 떨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무시고 계신지 받지를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 무서워 얼른 와"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부모님은 지난번에도 남편이 내게 손을 댄 것을 아셨고 그래서 집에 오셨기 때문에 더 놀라지 않으시고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바로 달려 이곳에 오셨다.


사실 난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아이도 "아빠는 너무 무섭고 미운데 달이 참 예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들어오라는 전화와 문자, 카톡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우리가 들어와야 자신이 잠을 잘 수 있다고, 얼른 들어오라 했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같았다. 그러다 부모님이 오셨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부모님과 남편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이 집에 도착하시기 전 아빠와 통화를 한 남편은 내게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물어보았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이마를 때린 것까지 이야기를 한 것인지 물어보았다.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부모님은 남편과 대면하게 되었고 그들의 실랑이 같은 이야기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나는 더 이상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화난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내게 화가 나 손을 댔다는 것. 그 일이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까 두려웠다. 그저 나 자신이 무기력 해질까 무서웠다. 이혼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다음 또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의 힘이 더 강해질 것 같은 공포심이 나를 감쌌다. 더 이상 해결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질 결심도 하지 못했고 그저 상상만으로 헤어진 후의 생활을 그려볼 뿐이었다. 그저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싶었다. 부모님과 나는 그를 고소하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진짜 고소할 마음은 아니어도 해결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경찰서에 가고 있는 도중 엄마는 고소하면 정말 끝이라고 이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런 결정도 하지 않았고 그만큼 엄청 밉지도 않았다. 그저 남편의 지긋지긋한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가 경찰서로 향하던 시간은 오후 세 시 경이었다.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겨우 1시간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아빠는 진술하는 시간이 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내일 오전에 여유 있게 다시 출발하자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나온 김에 식당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하고 차를 돌렸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고소를 하게 되면 남편관의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을 것이고, 남편은 나가려면 아이들을 놓고 나가라 했기에 도저히 아이들을 놔두고 나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기로 했다. 남편도 더 이상 내게 아무리 화가 나도 손을 대지 않기로 약속했다. 뭔가 시원하지 않고 찝찝했지만 가정을 깰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다시 나의 의지하고픈 유아기적인 상태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부모님에게 의지해 해보지 못한 독립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살아보지 못한 삶을 꿈꾸었던 것 같다. 폭력을 휘두른 남편이 너무나 밉고 싫지만 남편의 그런 행동을 핑계 삼아 이곳을 나오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릴 적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나 자신조차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었던 것 같다. 새벽 2시에 전화를 받고 1시간 30분이나 걸려 이곳까지 달려와주신 부모님을 보자마자 안심했다. 내편이 이곳에 왔으니 이제 살았다고 안심했다. 남편은 맘에 안 드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꼬집으며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남편이 나에게 손을 댄 이유를 묻지 않으셨고 그저 남편의 행동만을 바라보고 문제 삼으셨다.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허용될 수 없고 사랑만 해도 모자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셨다.


결론적으로 남편도 힘들었지만 잘못을 인정했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회가 되면 상담도 받겠다고 했다. 약속은 했어도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나 또한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더 굳세게 살아갈 것이다. 차근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면서 건강한 어른이 되고 건강한 부부가 되기 위해 서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살아보지 못한 삶을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투사하지 않고, 내게 부족한 것을 남편에게서 채우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에게도 기대하지 않고 오직 나로서 버텨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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