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식상하고 뻔한 답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지 않을까. 타인 중심의 삶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려 애쓴다. 설령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고는 한다.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받고 싶지 않아 피하기 바쁘다. 그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자격증 수업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는 과제가 있었다. 그중 '2030년 내가 지금의 자신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은 가요?'란 질문이 있었다. 이에 나는 '잘 살고 있고, 넌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고 답했다.
'나'를 잘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주변을 둘러봐도 저 사람은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가족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지 대화만 나눠보아도 알 수 있다. MBTI와 융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부모님과 가족들의 성격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16가지 성격유형 중 엄마와 아빠는 각각 이런 유형의 기질을 갖고 계신데, 이래서 엄마가 아빠 맞추며 사시느라 힘들었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단번에 수긍하시며 아빠에게 "나 당신 맞추며 사느라 힘들었어. 알아?"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엄마는 나에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라고 물으셨다. 나보다 26년을 더 사셨는데, 자식인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으시다니.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웠다.
타인에게 나를 무조건 맞추며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만 생각하면서 살 수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 산다 해서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칼 융은 말했다.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은 비싸다. (...)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분석심리학 이야기, 이부영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데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듯이, 나와 상대 모두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에도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가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처럼, 나와 상대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알기란 쉽지 않다.
남편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다. 바로 '말'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는 듯하면 남편은 내게 "목소리 또 커진다. 그만 말해"라고 말하며 말을 멈출 것을 강요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존재 가치가 무시되는 느낌이 들었다. 저 사람은 내 감정 따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도대체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괴롭혔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 욕구와 소속 욕구가 있는데,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나는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며 나 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잡아 주었던 건 나의 존재를 인정해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눈빛과 공감의 말들이었다. 그 어떤 긴 말보다 내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 없이 들어주었던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충분히 나를 표현해도 되고 이야기해도 된다는 믿음이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나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가치 있는 보석과 같은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분명한 내향형이고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내 의견도 생각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지만 편한 성향대로만 지내려 했다면 진정 나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안에 고립되어 그 어떤 변화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한 것처럼 나의 감정과 생각도 중요하다. 존중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분명히 내 생각을 전달했다. 남편이 화가 많이 난 상태여서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나에게 두 가지만 약속해줘요. 이제부터 내게 야! 야! 하고 부르지 마세요. 여보라고 호칭을 불러주세요. 나도 존중받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앞으로 서로 존댓말로 이야기해요. 그럼 저절로 서로를 존중하게 될 거예요."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간에는 수직적일 수 없다. - 예외도 있겠지만 - 기본적으로 수평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무시하고 비판할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충고-조언-평가-판단하게 되면 그 관계는 자연스레 멀어질 뿐이다. 그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도 사랑도 없다. 나 자신에 대한 가치도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진다. 자존감만 낮아질 뿐 얻어지는 것은 없다. 비록 내 생각을 분명히 전하다 보니 목소리가 갔지만 나는 더 당당해졌다. 어제저녁엔 남편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 : "오늘부터 나 자격증 1급 공부 들어가. 그러니 공부하는 거 이해해줘."
남편 : "뭘 이해하라는 거야? 저번이 마지막 아니었어?"
나 : "저번에 2급 공부한 거고 이제 1급 공부하는 거야."
남편 : "비용은 얼만데?"
나 : "00야."
나는 그동안 자격증 공부를 하는 데 있어 비용을 이야기할 때 마다 매우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늘 내게 "결혼 전에 다 하고 왔어야지 왜 결혼하고 내 돈으로 공부를 하는 거야,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못하는데."라고 줄기차게 말해왔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편이 일해서 벌어온 돈이라는 걸 알고 있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온전히 자신이 받지 못해 억울한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처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는데 아내는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기적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돈을 벌어 오는 대신 내가 살림을 완벽하게 해 주길 바랬을 텐데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아 자신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는데 자신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지만,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남편이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이야기를 했다.
"여보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는데 나는 가정도 안 돌보고 나 하고 싶은 공부나 한다고 생각했지? 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 공부하는 거야. 아이 어린이집 가게 됐을 때 일 하려고. 일에 도움이 되려고 공부하는 거야. 지금의 공부가 일로 연결됐으면 하는 마음이야. 맞벌이하면 경제적 여유도 생겨서 아이들하고 맛있는 것도 더 사 먹을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잖아. 나 그래서 공부하고 돈 벌려는 거야. 여보, 조금만 더 믿어주고 기다려 줘. 믿어주면 믿어주는 만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어"
남편이 나의 이야기에 수긍을 한 건지, 다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의 마음속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이 있어 나의 이야기가 들어갈 자리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한 발 양보해 내어 준 보일 듯 말 듯한 마음의 공간 속에 나의 감정이 비집고 들어가 언제까지 머무를지 모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내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그걸로 된 거다. 더 이상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인정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당당하게 내 생각을 잘 전달한 것에 의의를 둘 뿐이다.
남편이 나에게 아이들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반드시 해주길 바랐던 모든 것들이 다 만족스러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에게 만족시켜 주기 위해 애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 역할을 놓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는 한 사람과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삼자가 나를 바라보듯이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힘들고 지치고, 때론 서로에게 실망할 때도 있겠지만 그 순간의 감정에 얽매여 나를 옭아매지 않을 것이다. 나를 '나'로서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나는 잘 살고 있고,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