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무심하고 편안하게 지내보기로 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말이다. 무엇인가 꺼내보려 애쓰기보다는 떠오르는 대로 생각의 흐름을 맡겨보기로 했다. 어떤 감동을 주려고 또는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생각을 쥐어짜지 않고 지금의 내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으려고 한다. 모두가 다 잠든 이 시간은 어떤 소음이나 누군가의 인기척도 없는 고요한 밤이다.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오늘 이 시간을 갖기 위해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도 않았다. 셋째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졸음이 오니 알아서 이불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 잠들고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기다렸다. 남편은 내게 자신이 잠들면 자신의 핸드폰을 충전해주고 자기 전에 보일러 온도를 낮추라고 말하며 잠이 들 준비를 했다. 그리곤 곤히 잠들었다.
셋째의 분유물을 끓이기 위해 분유 포트를 닦아 물을 채워 놓았다. 물이 팔팔 끓고 분유온도에 맞춰 식히던 중 티백을 놓고 끓이던 물을 부었다. 환절기라 그런지 목도 칼칼했고 약간은 서늘한 지금의 공기에 따뜻한 차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끓인 지 얼마 안 된 물이어서 뜨거웠다. 글을 쓸 때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적당한 따뜻함이 되었다. 여기에 약간은 몽롱한 졸음이 나를 적당히 기분 좋게 했다. 얼마 만에 맞은 편안함인지. 요 며칠 셋째의 감기로 제대로 된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아직 혼자서 코를 풀 수 없는 이제 곧 돌을 맞이 할 아기라 코를 빼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줄줄 흐르던 코는 어느새 진득해져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워했다. 코가 막혔는지 킁킁댔다. 낮잠도 길게 자지 못했다. 지어 온 약을 열심히 먹였다. 약을 먹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먹였다. 다행히도 약효가 있었는지 킁킁대지 않고 깊이 잠들었다. 아기도 감기로 컨티션이 좋지 않았는데 서서히 편안함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평상시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남편은 씻자마자 내가 펴 둔 이불 위에 누웠다. 나는 남편이 잠이 들기 전에 얼른 칫솔에 치약을 묻혀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피곤하면 곧잘 이빨도 닦지 않고 잠이 들었다. 양치를 하지 않고 잠이 들면 다시 깨어나서 양치를 해야 했기에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런 남편을 위해 남편이 이불에 눕자마자 나는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준 것이었다. 일찍 잠이 든 남편 덕분에 남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타닥타닥 하는 타이핑 소리만이 나의 귀에 들려올 뿐이었다. 타이핑 소리는 적당히 나를 편안하게 했다. 마치 자장가 같았다.
남편이 잠들기 전 남편에게 셋째가 첫 생일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에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땐 아기도 분유를 떼고 우유를 마시면 되니 뜨거운 물을 싸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기 짐도 한결 가벼워지고 걸음도 더 능숙해질 테니 우리의 여행이 편안할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숙소도 미리 알아보고 어디 어디를 갈 것인지 여유 있게 알아보려고 한다. 계획적인 것을 편안해하는 남편을 위해서 좋을 것 같다. 여행경비도 모아 놓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여행 중 돈이 빠듯하면 먹는 것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을 테니 갈등 없는 편안한 여행을 위해서는 돈이 중요하다. 숙소도 아이들과 머무르기에 좋은 곳으로 조리도 가능한 호텔로 잡으려고 한다.
즉흥적인 것보다 미리 정해 놓은 대로 움직이는 것이 편안한 남편을 위해 미리 이야기를 꺼냈다. 셋째의 돌 준비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돌 상을 어떻게 할지 돌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걱정이 되었다. 양쪽 집안의 식구들과 각각 따로 식사를 하려니 부담이 되었다. 비용도 모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아이의 첫 돌이니 근사하게 해주고도 싶었지만 사진으로만 남을 테니 꼭 크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돌상을 대여할래도 비용이 드니 돌상을 간소하게 하고 돌잔치에 드는 비용으로 가족여행을 가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코로나로 가족여행도 제대로 못 갔으니 잘 계획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내겐 완전한 편안함이 없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편안하지 않았다. 남편이 오기 전 아이들을 씻기고 밥도 먹이고 주변 정리도 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 정리가 되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더라도 남편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은 해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이 불안은 매일 반복되는 것이다. 나도 남편이 오기 전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되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저녁 시간이 매우 분주하다. 멍 때릴 시간도 없다. 둘째의 하원 후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사이 서둘러 밥을 짓고 불고기용 고기에 여러 야채들을 섞어 양념에 재어 놓았다. 아이들이 들어오고 둘째를 씻긴 후 첫째 아이가 혼자 샤워를 하는 중에 양념에 재워 둔 고기를 볶고 찌개를 데웠다. 고기가 익어가는 사이 아이들 식기에 밥을 담아 놓고 고기를 담을 접시를 꺼내 놓았다. 아이들이 모두 다 씻고 옷을 입은 후 아이들과 함께 식물재배기 속 상추를 뜯은 후 얼른 씻어 아이들 식판에 놓아주었다. 아이들이 맛있게 밥을 먹고 있을 때 나는 얼른 씻었다. 그러던 중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이 돌아오니 아이들은 밥을 다 먹은 상태였고 설거지 거리만 남았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놀이를 하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남편도 집안을 둘러본 후 일찍 샤워를 했다. 나는 남편이 씻고 나서 얼른 이불을 가져와 남편의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남편이 잠들기 전 얼른 칫솔을 주었고 남편은 이빨을 닦고 나서 바로 누워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잠이 들고 남편도 이불에 누우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적당한 시간에 모두가 잠이 들었고 적당한 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적당했다. 그 적당함을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몸을 분주히 움직일 때 마음도 분주했다. 둘째 아이가 떼를 쓰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할 일을 했다. 나는 마치 물속에서 발만 빠르게 움직이는 오리 같았다. 그저 우아하게 둥실 떠다니는 오리가 된 기분이었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 누구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남편의 잔소리도 가볍게 넘겼다. 무심한 듯 편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