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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차려야만 하는 이유

떠오르다 잊히고

잊히고 떠오르다


내게 가장 큰 고민은 나를 짓누르고 무겁게 만들었던 고민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것이다. 없어진다는 것은 해결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느 순간 잊힌다는 것이다.


나의 몸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걱정이나 스트레스는 잊혔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생각도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감정도 무거웠다 가벼워졌다 한다. 기분이 가라앉다 올라오다 하듯 나의 감정은 파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한다. 며칠 혹은 몇 주는 이상하리만치 아무 일도 없이 편안하다가도 어떤 상황이나 사람들 간의 미묘한 감정선으로 인해 내 감정은 요동친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주고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어렸을 적 가족 안에서 감정표현이 금기시되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남편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들리게 되면 남편은 매우 불편해하고 화를 낸다. 나를 예의가 없고 철없는 사람이라 말한다.


부모교육과 MBTI 공부를 통해 욕구와 감정이 중요하다 배웠는데 나의 가족 안에서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자꾸만 이해를 바라는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도 버거워지는 것 같다. 버거워지는 나의 감정은 내게 곧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나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내 안에 감정의 찌꺼기들이 자꾸만 쌓여 나를 괴롭힌다. 지금 당장 그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의 감정을 남편과의 대화로 표현하지 못하다 보니 감정과 욕구를 말하지 않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다가도 또다시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차려야만 하는 이유.

-의존성을 탈피하기 위해 현실을 부여잡다.


한 차례 잠을 자고 일어났다.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잠에 들지 않았다. 써야겠다고 생각한 글의 3분의 1을 완성해 놓으니 피곤이 몰려온다. 다시 잘까 말까 고민한다. 나는 잠을 깨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심리학 수업 중 배웠던 *게슈탈트 심리학을 살펴보았다. 도대체 왜 나를 알아차려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글을 완성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글을 오늘까지 올려야겠다는 의지를 되새기며 잠을 깨우기 위해 애썼다.


셋째가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면서 나의 체력이 저하되고 있음을 느꼈다. 10킬로가 넘는 아기를 안고 업고 하다 보니 내 몸의 균형이 틀어지고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다. 그 피로가 밤에 자는 잠으로는 다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기가 낮잠을 잘 때 같이 자면서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데 나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바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고 오로지 나의 자발성으로 하는 일이기에 힘들고 피곤하다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 있는 나를 부여잡을 수 있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편이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어오니 나는 아이만 키우고 살림만 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한쪽 구석에 있어서 자꾸만 놀고만 싶을 때가 있었다.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나 실컷보고 좋아하는 음악만 실컷 들으며 살아도 되는데 언제부턴가 꼭 봐야 하는 프로그램만 보고 TV를 보지 않게 됐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재밌는 것을 찾아 헤매었고 주말에 못 보았던 프로그램도 재방송으로 다 챙겨보던 나였는데 어느새부턴가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글을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든 끌지 못하든 글을 써야만 했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해 주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감정을 쌓아두게 됐는데, 남편과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도 남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거슬리면 감정이 한 번씩 폭발해 버려 큰 싸움이 되곤 했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부턴 글로 내 마음을 다 풀어내다 보니 남편의 거슬리는 말과 행동에 크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 듣기 싫은 말이고 보고 싶지 않은 행동이지만 그냥 지나가려 애썼다. 부당하다 생각될 때도 있었고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엇나가지 않으려 했다.


글쓰기는 내게 독립의 의미였다. 어렸을 적 수용받지 못했던 경험들로 부모님께 의지하며 살았던 내가 의존성을 벗어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글쓰기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에 대한 의존이 남편에게로 이어져 어느샌가 남편의 명령적인 말들에 순응하고 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도 돈을 벌고 싶었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도 나는 남편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들을 어길 수 없었다. 그만큼 남편은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가족의 굴레와 같은 의미가 되었던 것이다. 아무런 구속도 방해도 없는, 나와 아이들과의 자유를 꿈꾸었지만 살아갈 현실의 어려움을 알기에 반항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글쓰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다 남 탓이라 원망했던 글들을 다 써내고 나니 나의 진짜 마음과 모습이 보였다. 이런 마음을 공개된 곳에 글로 올리다 보니 사람들의 응원과 공감 어린 댓글이 올라왔다. 좋은 글 읽고 간다는 댓글을 보니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봐줄 수 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내가 나를 알아차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현실성 없는 꿈만 꾸다 중도에 포기를 반복하던 내가 끝까지 애쓰고 노력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모든 건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아차릴수록 변화를 경험하는 자유가 많아진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철학적 가정처럼,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나를 알아차려 나갈 것이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독일출생 유대계 정신과 의사인 Fritz Perls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인간은 사진기나 녹음기처럼 외부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욕구나 흥미에 따라 능동적으로 조직화하고 편집하여 지각함을 강조한 심리학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철학적 가정


1.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전체적인 장에 대한, 즉 타인과 자신 모두에 대한 알아차림과 책임이 개인의 삶에 의미와 패턴을 부여해줌.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아차릴수록 변화를 경험하는 자유가 많아지며 자신의 반응을 잘 선택할 수 있게 된다.


2. 현상이 우선한다.

직접적인 경험세계의 우위성

편견이나 가정을 버리고 주어진 상화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경험에 초점을 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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