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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주 하는 하얀 도화지

늘 무언가를 좇아 갈망하는 나와 마주하다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런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떠올려 보니 내 눈앞에 하얀 도화지가 나타났다.


하얀 도화지를 마주하니 눈물이 흘렀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글을 쓰며 난 무얼 원하고 있는 것인지 한숨을 내뱉었다. 한심하다 해야 할까?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민간 자격증 공부도 현실적으로 보면 당장 꺼내 보일 수도 없게 느껴진다. 더 깊은 공부를 원하거나 학위가 필요하다면 대학원을 가야 한다. 성인 교육 혹은 평생교육이라는 단어 속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인생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난 언제까지 학생만 해야 할까 싶다. 아이들이 어리기에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내 나이 서른여섯. 많은 이들이 부러워했던 스물세 살의 젊은 나는 어디로 갔는지. 하염없이 난 무언가를 기다린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기차를 보듯 난 인생이라는 레일 위에 서서 멀어져 가는 기차를 가만히 서서 바라본다.




나는 늘 무언가를 좇아 갈망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세 아이를 낳은 엄마로서의 삶도 감사하지만 늘 내 가슴 한편은 허전하다. 완성되지 못한 삶인 것 같아 불안하다. 내가 생각하는 완성된 삶이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인정'받는 삶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거나 혹은 혼자 일을 하더라도 어떤 결과물이 나와 경제적 충족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이고 아직도 갈망하는 삶의 모습이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라는 책을 보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모든 사람의 눈에 희생적이고 헌신적으로 보이는 엄마라도 아이 입장에서 나만의 엄마를 느끼는 고유한 접촉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엄마는 부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엄마와의 구체적인 경험과 접촉이 없다면, 아이의 내면은 텅 비고 늘 무언가를 좇아 갈망합니다.'라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동경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다. 바로 엄마와의 정서적 교류의 부재 때문이었다.


엄마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엄마의 따뜻한 밥과 엄마의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웠던 것이다. 엄마의 다리에 누워 있으면 그렇게 좋았다. 그런데 엄마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마음이 어떤지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신 적은 없다. 엄마는 늘 밥을 잘 챙겨주셨지만 정서적인 밥은 안 먹여주신 것 같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육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엄만 우리가 어렸을 적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으시다고 했다. 아빠는 일 가시고 오로지 엄마 혼자 언니와 나 둘을 보셨으니 많이 힘드셨겠지. 나도 똑같이 아이 셋을 보고 있는데 왜 엄마와 나의 육아 행복지수가 다른 걸까. 아마도 엄마는 넉넉하지 못한 생활과 시댁의 무관심으로 육아가 더 힘드셨겠지. 그때 누군가가 엄마의 마음을 툭 건드려주는 한마디를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많이 힘들지?"라고 물어봐주었다면 엄마는 지금 내게도 이렇게 물어봐 주셨을까?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짓눌림이 있다. 몸도 피곤한데 마음마저도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무거움이 생긴다. 나는 이 증상이 '이루지 못한 삶'이 원인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았다. 어디에도 내 마음을 터 놓을 곳이 없을 때 이 증상은 더 심해진다. 누군가 내 옆에 앉아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조언도 판단도 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어도 좋을 것 같다.


이루지 못한 삶에 대한 갈망이 더 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를 향한 애정과 존재의 인정을 확인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부모님은 내게 '태어나 줘서 고맙다' 혹은 '네가 있어 행복하다'라는 말을 해주시지는 않는다. 그저 나를 보며 "그래, 그렇게 살면 되지."라고 말씀하신다. 본인들에게 짐이 될 것 같은 말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전화가 오면 좋아하실 것 같은 이야기만 한다.

"시댁에서 쌀 수확하셔서 햅쌀 가져왔어. 계란도 주시고...."


그럼에도 내가 다시 마음을 고쳐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아토피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그녀는 임신 중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녀는 스트레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아이가 어딘가 잘못되진 않았을지 늘 불안해했다. 신생아는 흔히 태열 등의 피부염을 겪기도 하는데 자신의 상태 때문에 아이가 아토피에 걸린 것은 아닌지 늘 전전긍긍했다. 그녀는 아이를 피부과나 소아과를 돌아다니면서 아이의 피부 상태에 대해 물어봐도 의사들은 신생아가 겪는 피부염이지 아토피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의사들의 말을 믿지 못했다.


아무리 의사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고 1년여를 병원을 전전한 끝에 결국 한 병원에서 아토피 진단을 받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의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여러 의사가 아니라고 할 때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던 그녀가 한 의사가 자신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말해 주자, 불안이 멈추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그렇지. 이제 진단받았으니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연고와 로션 바르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아이 피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어느 순간에 아토피가 사라졌다고 한다.

결국 죄책감과 불안이 신체증상으로 나타나고 그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 한 신체증상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례에서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인과 인정이 불안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데에 깊이 공감했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 혹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상담을 주제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당신의 증상은 우울증이 맞습니다."라고 전문가가 말했을 때 출연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마음고생했던 것이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해주니 오히려 자신의 지금 상태를 인정받는 것 같아서 후련해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갈망하고 꿈꾼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쪽 구석이 시린 느낌이다.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고 그 인정을 통해 '나'라는 한 사람의 완성이 된다는 것이 타인의 관심과 칭찬이 없이는 살아나가기 어려운 그런 현실처럼 느껴진다. 뚜벅뚜벅 씩씩하게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도 결국엔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품이 없다면 외로운 법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함께 서로의 감정을 들여다 봐 주면서 힘들 땐 따뜻한 위로와 토닥임을, 기쁠 땐 함께 웃어준다면 좋겠다.




그 누구보다도 부모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인정을 바랐던 건 나이다. 이젠 인정받지 못해 서운했던 마음을 흘려보내고 내 자녀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살아가고 싶다. 아이들의 화나고 슬픈 감정도, 기쁜 마음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아이의 마음을 다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알아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쫒았던 나는 지금의 현실에 맞게 이뤄 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럼 나의 하얀 도화지에 색색깔로 나의 꿈들을 채워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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