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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해

나는 어떤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더라도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그만큼 내 글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글을 읽고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건 읽는 자의 몫이다. 다만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는 원칙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만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추천되어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나에 대한 믿음은 내 글에도 이어질 것이다. 읽는 자에게 '저 사람은 왜 이리도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걸까. 자신감이 없는 게 느껴져 읽고 싶지 않다.'라는 평가는 받고 싶지 않다. 지금 당장은 돈이 될 수 없는 글이라 할지라도 언제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뻔하디 뻔한 응원이자 위로라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은 개성이 있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나 또한 자라면서 부모에게 '우리 딸 참 잘한다. 참 예쁘다.'라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부모님에게 나에게 칭찬 한 번 해주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먹고사는 데 바빠서 그런 말을 해 줄 여유가 없었다고 둘러댈지도 모른다. 실제 속마음은 무엇일지 알 수는 없어도 대충 짐작은 간다. 언니와 비교가 되었다거나 혹은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등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 어떤 이유를 들어도 내겐 또 한 번의 상처가 될 것 같다. 결국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소리로 들릴 것 같다.


<엄마 심리 수업>이란 책에서 저자는 자녀에게 짠한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한다. 많은 엄마들이 자식들을 보면서 소심한 것도 엄마 탓 키가 작아도 엄마 탓 공부를 잘 못해도 엄마 탓을 한다. 엄마의 미안한 마음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고 그것이 모성애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엄마가 아이를 짠하게 보면 아이에게 짠한 냄새가 배어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짠하게 보게 된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자신 없어하는 걸 아셨을까. 나를 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덕분에 나는 자신감 없어 보인다거나 위축되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당신은 참 멋지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부모님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던 나는 실제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고 간혹 그런 말을 듣게 되더라도 입에 발린 말이라 생각하고 믿지를 못했다.


나는 글을 쓰며 알았다. 나도 충분히 멋지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적어도 글 속에선 나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들어낼 수 있었다. 글을 쓰던 초반엔 내 글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책이라던지 어떤 곳에 글을 기고한다든지 하는 어떤 결과물을 원했다. 그런데 어떠한 곳에서도 피드백을 들을 수 없었고 들었어도 나에게 맞지 않는 조언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글을 썼고 시간이 지나면서 개개인의 글에 대한 평가는 지금으로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마다 개성이 다르 듯 각자의 생각도 달랐고 각자가 살아가는 모양새도 모두 달랐다. 그건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잘 썼다 못 썼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늘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생각이 깊어졌고, 나의 시선을 다양한 곳에 둘 수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구독자도 생겼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좋은 글 잘 읽고 간다는 그런 댓글을 보면 힘이 났다. 내 글에 몇 명이 공감하고 좋아하는지는 잘 몰라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생각할 거리를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나의 외적인 모습엔 자신이 없지만 글에 대한 자신감은 갖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분야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만 허락한다면 집중해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 보고 싶다. 하나의 콘텐츠로 승화시켜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엄마이자 아내로서가 아닌 나로서 재능을 펼쳐 보이고 싶다.


첫째 아이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매일 같이 아이돌의 춤을 춘다. 아이돌처럼 옷을 입고 긴 생머리를 한 채 베란다 창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춤을 춘다. 어렸을 적 나도 아이처럼 사람들 앞에 나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첫째 아이처럼 예쁘다거나 잘하지는 않았다. 때론 첫째 아이가 다른 사람들 앞에 보이는 걸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 어린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현실의 경쟁 속으로 들어가 상처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아이는 그저 춤을 추며 즐기고 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괜히 노심초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그런데 이젠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글을 쓰며 자신감을 얻었고 자존감이 높아졌듯이 큰아이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부족해 보이는 모습조차도 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자기 자신에겐 최고의 나이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면 사랑의 냄새가 배고, 귀여워하면 귀여운 냄새가 밴다고 하듯이 자기 내면의 아이 또한 사랑하고 귀여워하면 분명 다른 사람도 나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구에 살고 있어도 '나'라는 사람은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이다.


나는 오늘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멋지고 괜찮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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