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경진 봄날의 달팽이 Nov 1. 2022
월요일엔 나 혼자 산다 혹은 전지적 참견 시점 재방송 보기
화요일엔 결혼 지옥 재방송 보기
목요일엔 고딩 엄빠 재방송 보기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안 하는 날엔 글쓰기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글쓰기
아이가 낮잠 잘 때 글을 안 써도 되면 맛있는 거 먹으며 TV 시청하기
너무 스트레스받는 날엔 먹고 싶은 음식 먹기
셋째 아이를 맘껏 안아주고 뽀뽀해주기
아이가 자고 있을 때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목욕하기
혹은 아이와 욕조에서 목욕하기 - 아이가 따뜻한 물에서 한참을 놀고 나면 잠을 잘 잔다.
첫째 아이는 매일 학원이 끝나면 데리러 오라고 학원에서 피아노 치는 중간에 전화를 한다. 나는 살짝 귀찮기도 하고 그 시간에 셋째가 낮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글을 쓰고 싶은데 그래도 아쉼움을 뒤로 하고 큰아이에게 간다. 혹여나 아이가 실망할까. 안 가면 실망할 것도 알고 그 모습을 오래 보기 싫어서 아이에게 간다. 그렇게 월화수목금 큰 아이의 학원 하원 시간에 맞춰 나의 루틴이 맞춰진다. 하원 후 집에 와서 간식을 먹거나 놀이터에서 셋째와 놀아주면서 둘째의 유치원 하원 버스를 기다린다. 걸음마가 많이 능숙해진 셋째는 집에서도 자신의 신발을 집안에서 들고 돌아다닌다. 첫째와 둘째가 밖으로 나갈라치면 맨발로 같이 나가려 한다. 그렇게 셋째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집안에서만 놀던 아기가 일어나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빠빠이 하며 인사하는 걸 따라 하더니 이젠 문 앞에서 가족들이 밖으로 나가면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러다 인사는 생략하고 같이 나가려고 문 앞까지 신발도 양말도 안 신고 뛰어 나간다. 셋째를 낳고 1년이 되었다. 그사이 아이는 훌쩍 자라 자기 이름도 알고 자기 마음도 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기 마음에 방어기제를 두고 사람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자책하고 있지는 않을까. 한 발자국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나를 가지 못하게 나 스스로를 막고 있지는 않을까. 일주일을 버티는 나만의 루틴을 적어보았다. 셋째 아이를 낳고 거의 집안에만 있었던 나는 아이와 어딜 돌아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첫째 둘째가 어렸을 땐 유모차 끌고 아기띠로 안고 업고 하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참 잘 돌아다녔다. 둘째를 낳았을 때만 해도 내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지금보다 한참 팔팔했고 에너지가 넘쳤다. 아이와 집에만 있기엔 나의 에너지가 버거웠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든 소진했어야 했는데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로는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왔다. 셋째를 낳은 지금은 아이와 둘이 어디를 가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무심하게 백화점이나 마트를 돌며 아이쇼핑하는 것이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옷들과 물건들이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셋째를 낳고 1년 동안 심리학과 관련된 민간 자격증 공부를 하다 보니 내 일상이 과제와 공부 글쓰기에 맞춰졌다.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을 땐 셋째가 고작 3개월 됐을 때인데 나는 새벽마다 일어나 책상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썼다. 몇 개월을 그렇게 글을 썼다. 처음 시작은 블로그였다. 내 마음을 다 퍼붓는 식의 일기를 썼다. 아주 노골적으로 나의 힘듦을 써 내려갔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며 내 마음을 정리했다. 그러다 글쓰기에 진심이 되었고 글쓰기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내 온 마음을 계속 써 내려가다 보니 분량이 꽤 됐고 책을 내도 될 것 같았다. 양으로만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객관적으로 보기엔 질적으로 아닐 수 있지만 내 이야기도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도 그렇다. 아직 책을 내기엔 부족하다 생각하지만 나의 이야기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같지만 누군가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을 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셋째를 임신하고 7개월쯤부터 시작된 공부가 지금까지 이어졌고 공부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있기게 자신 있게 나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고 글을 써나간다. 포기하지 않고 말이다. 글쓰기는 이제 내 삶이 되었으니 포기라는 말은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4월쯤이었나? <고민의 답> 저자 분과 고민상담을 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선택이 되어서 1시간 정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때의 고민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되어 돈을 벌 수 있냐는 것이었다. 작가님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주시면서 글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셨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언제가 자신보다 더 유명한 작가가 되어있을 거라고 그러니 많이 사유하고 많이 읽으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작가님은 내게 어떻게 글을 쓸 건지 계획을 물어보셨다. 나는 나 자신이 엄마이니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했고 1년 동안 써보겠다고 했다. 매일매일 쓰면 책 한 권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은 아니어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진심으로 말이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나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써 내려갈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하는 삶을 보여주기에 꽤 흥미롭다.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의 의도나 출연진의 특별한 하루를 계획해서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자신만의 하루 루틴은 어떤 모습인지 무얼 먹고 무얼 하며 지내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연예인의 모습 뒤에 보여주는 자신만의 일상에 관심이 간다. 비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도 즐겨본다. 고딩엄빠나 결혼 지옥, 우리 아이가 달려졌어요 등 자신만의 고민을 들고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찰 카메라로 찍힌 자신의 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 한다. 출연진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마치 제삼자가 보듯이 관찰을 한다. 자신의 모습을 직접 마주하면서 반성을 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누구도 비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출연진의 감정에 같이 따라가면서 같이 울고 웃는다. 지금의 이런 모습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한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글쓰기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우연하게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나'를 깊이 알아 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 그들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같이 울었고 같이 웃었다. 비록 나는 많은 관계 속에 있지는 않지만 나만의 공간 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오갔다. 가족들과의 주고받는 말과 눈빛에서도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 셋을 낳은 어른이 되었어도 어린아이 같았던 나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가족 과의 관계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심리학 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서 그 관계에서의 일들과 감정들은 내게 약이 되어주었다. 나 조차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던 일들을 스스로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투사를 관찰하고, 내가 가족들에게 투사하는 것을 인식하면서 트러블이 줄어들었다. 아이들에게도 더 이상 혼을 내거나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심리학 공부와 글쓰기 덕분이다. 그리고 수업을 이끌어주시고 지도해주신 자격증 협회 소장님과 공부를 함께한 메이트 분들 덕분에 나를 직면할 수 있었고 그런 나를 힘껏 안아줄 수 있었다. 소장님은 나에게 일기를 써보라고 말씀해주셨고 글쓰기를 격려해주셨다. 내 안에 있는 장점을 끌어내 주셨다. 충고와 조언 그리고 비판과 판단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하고 인정해주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가 신나서 춤을 추었다.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갔다.
나는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고 또 버틴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를 기대하면서 온 마음으로 나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