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의식에 대한 이야기
나의 욕구나 감정들이 만족스럽게 풀리지 못한 마음이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과 겹쳐진다.
내가 잘하지 못해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들과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이 마음은 연민일까? 사랑일까?
남편에 대한 연민은 나를 통제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남편의 카드를 쓸 때 마음이 편치 않다. 생활비를 주로 남편의 카드로 사용하는데, 카드를 사용할 때 가격이나 장소가 중요하다. 카드로 결제하게 되면 남편의 핸드폰에 문자가 가기 때문이다. 남편은 문자로 온 카드 내역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샀는지 파악한다. 그래서 난 늘 남편의 통제된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최대한 4만 원 이상 넘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남편이 문자로 카드 사용 내역을 보았을 때, 남편이 불편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만큼의 비용만 쓰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 기준이 딱 그 정도이다. 최대로 많이 썼을 때는 4~5만 원이고 최소로 쓸 땐 1~2만 원 선이다.
카드를 사용하는 액수의 기준을 정한 것은 신혼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신혼 때는 장을 볼 때 웬만하면 2만 원 이상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2만 원이 넘어가게 되면 나머지 비용을 나의 명의로 된 체크카드로 결제를 했다. 이상하게도 남편에게 2만 원 이상 쓴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 2만 원 정도면 2인 식구의 장을 보는데 적당하게 느껴졌다. 그 이상 넘어가면 너무 많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편의 카드를 사용하는 곳을 정해둔 이유는 남편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살 때도 웬만하면 남편의 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신혼 때 처음으로 남편 카드로 카페에서 커피값을 결제했을 때 남편이 커피값을 매우 사치스럽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도 결혼 후 처음으로 생활비를 온전히 아내에게 주었기 때문에 카드 사용내역에 많이 신경을 썼었던 것 같다. 남편의 카드로 처음 커피를 사 먹은 이후로는 나도 모르게 카드를 사용할 때 신경이 쓰였다. 신경이 쓰이는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몸에 새겨진 '긴장'과 나 자신이 만들어낸 '통제'라는 울타리 속에 나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날 가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어렸을 적, 엄마가 단 한 번도 '나' 자신으로서 독립되어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과 같은 느낌이다. 지금도 엄마는 아빠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고 계신 것 같다. 엄마이자 아내로서만 살아오시느라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보신 적이 없는 것 같다.
엄마에게서 느꼈던 아빠의 통제가 남편을 통해 나에게로 옮겨온 것일까?
늘 밖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싶었던 나였는데 결혼 후엔 자유가 박탈된 느낌이다. 아이들이 어려서가 아니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내가 나를 남편의 틀 안에 묶어둔 것이다. 나는 그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남편보다 더 돈을 많이 벌어햐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남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떤 통제도 없이 온전한 '나'로 살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가득하다.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굴레가 아닌 함께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동반자로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내 삶에 아쉬움이 많은 것이다. 내 존재를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늘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무언가를 자꾸 완성하고 싶고 결과를 내고 싶다. 지금 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데 무언가가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나를 찾아가려 애쓰지만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역시도 내가 만든 핑곗거리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가고 싶지만 앞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겪어야 하는 남편에 대한 말들과 행동이 두려운 것이다. 자꾸만 나를 탓하는 남편의 말들에 반응하는 내가 싫다. 남편은 나의 반응을 피해의식이라 말한다. 나는 남편이 말하는 '피해의식'이란 말이 끔찍이도 싫다. 피해의식이란 말만 들어도 원가족 안에서 소외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괴롭다.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 자신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의 기억을 피하고만 싶다. 그 기억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잘 될 것 같고 원하는 일을 하게 되어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렇게 돼야만 한다고 무의식이 나에게 말한다.
그동안 남편이 욕구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늘 화로 분출하는 모습이 미우면서도 불쌍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니 남편이 남편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자신의 모습과 환경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남편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선택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쌍하지 않다.
그의 모습은 그가 선택한 것이다.
나의 모습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자의식이란
개체가 자기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관찰하는 현상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발생한다.
자신의 행동을 지나치게 관찰하여, 타인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의식이 심한 사람의 특징
자의식이 심한 사람은 사전에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통제 및 조절하며,
타인의 반응을 미리 사전에 계산해 봄으로써
실패나 좌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준비를 한다.
환경을 자신의 내면에 구축해 놓음으로써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