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빛으로 존재해. 잡힐 듯 말 듯 보일 듯 말 듯.
'
'
나는 빛을 보았다. 내가 처음 글을 배우고 쓴 첫 문장이었다.
아주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나만의 첫 문장이었다.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그저 빛으로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잡고 싶었다. 그 옷이 내 옷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 문장은 남편이 두고두고 나를 놀리는데 쓰였다.
'
'
응애응애. 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엄마 배 속애서 꺼내졌다. 껌껌한 동굴 같았던 자궁문을 열고 나와 처음 맞닥뜨린 건 '빛'이었다. 아직 뜨지도 못한 두 눈의 실낱같은 미세한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아기는 그 조그만 눈을 찡그렸다. 그 조그만 눈이 있는 조그만 얼굴이 더 쪼그라들었다.
아기는 자라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다. 아이는 조그만 얼굴에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오늘도 좋아하는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놀이터 앞 정자에서 아이는 언니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2월에 태어난 아이는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다섯 살에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똑같이 주황색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이는 분명 주황색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주황색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듯 가만히 쳐다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아이의 눈이 한 곳에 모여지기 시작했다. 찡긋. 아이는 찡긋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걸 지켜보던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코에 걸쳐진 그 무엇이 아이를 짓눌렀다. 무겁고 큰 알이 아이의 온 얼굴을 덮은 듯했다. 조그만했던 눈이 더 조그마해졌다.
아이는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좋아하는 만화도 볼 수 없었다. 세수를 하거나 잠자리에 들 때면 그걸 벗어야 했다. 아이는 안갯속 세상을 맞이했고 그 속에서 손을 꼭 쥐었다.
어느 날 아이는 티브이 속 세상에 눈을 떼지 못하였다. 아이와 동갑인 아이가 멋진 의상을 입고 춤을 추었다. 아이는 어느샌가 그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주말이면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긴 줄이 보인다. 아이는 그곳으로 걸어간다. 아이는 그 긴 줄 속에 한 명이 되었다.
다음 주말도 그다음 주말도 아이는 집에 없었다. 아이는 뿌연 안개를 가르며 그 긴 줄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