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기록 소설 ㆍ빛 2

제자리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자꾸만 입 속으로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여자는 손이 얼 정도로 차가운 물을 틀어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의 배는 산처럼 부풀어있었다. 깜깜한 밤. 쭉 찢어진 두 눈이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자고 있는데 물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그 두 눈은 찢어진 소리로 말했다. 여자의 쪼끄려 앉은 다리 사이로 축축한 무엇이 새기 시작했다.

저 멀리 비틀대며 걸어오는 남자가 보인다. 여자는 조금씩 조여 오는 배를 부여잡고 그를 향해 걸었다. 빛이 보였다. 여자는 그 빛을 보며 배를 부여잡은 채 아슬아슬 걸었다.

그 빛은 뿌연 먼지와 함께 그녀의 배 위로 쏟아졌다. 여자의 눈이 감겼다. 까만 세상이었다. 여자는 앞이 보이지 않는 까만 세상에서 홀로 앉아 두 무릎을 꼭 안았다. 아무도 없었다. 여자를 비추는 한줄기 빛만이 있었다.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아파트 복도 끝 집까지 닿았다. 아주머니가 달려왔다. 아주머니가 새댁이 고생이 많다며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었다. 아이의 울음은 그치질 않았다. 아이는 온갖 세상의 어둠을 다 집어삼킨 듯 온몸을 비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결국 여자는 아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까만 세상에 홀로 앉아 두 무릎을 감싸 안은채 고개를 파묻었다.

여자는 텅 빈 냉장고를 보며 하염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지갑을 보았다. 지갑을 든 손이 힘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툭 툭 동전이 탈출해 뒹굴었다. 동전은 어디도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여자는 아이를 포대기로 둘러업고 집을 나섰다. 걸어 걸어 시장에 도착했다. 그녀의 눈은 초점이 없이 흐려지는 듯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녀의 눈은 미동이 없었다. 배추를 손질하고 남은 배춧잎들이 바닥에 널려있었다. 그 잎들은 어디 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있었다. 그 어떤 바람도 불지 않았다.
여자는 뒹굴거리는 빈 까만 봉지를 보고 얼른 그 배춧잎들을 주워 담았다. 어디도 새 나가지 못하도록 꽁꽁 묶었다. 여자는 까만 봉지를 두 팔로 안은채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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