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괜찮지 않다.
일주일째 남편과 냉전 중이다. 대화도 없다. 남편은 코로나에 굉장히 민감해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실내는 가지 않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나는 콘서트 티켓을 구매했고, 콘서트에 1월에 있을 민간 자격증 시험 일정까지 있어 남편은 가고자 하는 날 반대했다. 남편은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고, 자기의 원칙이 강한 사람이라 내가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디에 가고자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격증 시험을 보러 꼭 가야 하는데 가면 사람들과 마스크를 벗고 간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서, 시험보러 가는 것에 대해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콘서트까지 가겠다 하니 남편은 화가 날 때로 났다. 가려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아... 코로나를 떠나 나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당장 내일이 콘서트 날인데도 조급하지가 않다. 3년이나 기다려온 콘서트를 가지 못하게 됐고 이미 사놓은 콘서트 티켓비용마저 날아갈 위기인데도 불안하지가 않다. 거기다 콘서트 티켓 환불 신청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못 가더라도 내 자리는 그대로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마음만은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싸울 때로 싸워서인 건지, 남편의 고집을 꺾을 재주가 없어서인지 그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미 가기를 포기해서 체념을 한 상태이다. 올해의 마지막을 그동안의 독박육아에 대한 보상으로, 단 하루의 자유를 만끽하길 바랐건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져 버렸다.
남편에게 콘서트 가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우리의 대화는 끊어졌다.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놔 버리는 건 문제로부터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와 소통이 부족한 우리이기 때문에 남편과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그가 갑자기 헐크로 변하게 될까 봐 무섭고 두렵다. 콘서트에 못 가게 되어서 많이 아쉽지만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그의 불안이 낮아질지도 모른다.
시간은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이유로 콘서트에 가고 싶은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내려놓았다는 건 거의 포기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시계는 보게 될 테지. 가기로 결정이 되어 있었다면 한 달 전부터 콘서트 홀에 가는 경로뿐만 아니라, 몇 시까지 갈지 가서 시간이 남는다면 무얼 할지 다 정해 놓았을 텐데, 이미 가지 못할걸 알기에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다
남편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청소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싶었다. 그런데 내겐 아이들이 있었다. 큰아이는 학교와 학원에 갔다 올 테니 큰아이가 나가있는 시간엔 쉴 수도 있지만, 널브러져 있는 내 옆엔 돌 지난 셋째와 유치원 방학 중인 둘째가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피곤하고 무기력해도 두 아이 밥은 먹여야 했다. 나 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 없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아이들 밥을 챙기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라도 하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집안을 다 치우지는 못해도 아이들은 챙겨야 했다. 밥 먹이고 씻기고 집은 대충 치웠다.
다음 날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보니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우선 베란다로 가 창문을 열고 가득 쌓인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비워진 빨래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런 다음 이불을 탁탁 털어 갠다음 장롱에 넣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청소기를 돌렸다. 환기를 시키고 어느 정도 깔끔해진 거실을 보니 마음이 개운해지는 듯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셋째를 유모차에 태워 둘째와 함께 시장 구경을 갔다. 5일장으로 장날이 되면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질 좋고 싱싱한 식재료와 활기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니 내 마음도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나는 기분 좋게 아이에게 미니 붕어빵과 어묵을 사주었다. 그리곤 손두부와 수제 오란다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집으로 가는 도중 아이는 장갑을 끼고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만지며 신나 했다. 신나 보이는 아이를 보니 덩달아 나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하지만 남편이 올 시간이 다 되어가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퇴근 후 혼자 밥을 차려 먹었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간간히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지만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눈치가 보였고 긴장도 되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마음이 풀어지다가도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긴장이 되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지나가다 보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가야 할 것 같은데 내 마음은 그저 어딘가로부터 멀어지기만 했다.
금쪽상담소라는 TV 프로그램에 배우 최정윤이 출연했다. 이혼 후 싱글맘이 된 지 1년이 되었다던 그녀는 딸아이를 위해 못할 것이 없다고 했다. 육아로 연기생활을 못하게 되면서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사이에 할 수 있는 알바까지 찾아볼 정도로 그녀에게 배우란 체면은 중요치 않았다. 그러던 중 라이브커머스 활동을 하게 되었고 연기도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생활력이 강하고 씩씩한 싱글맘이었다. 그녀도 씩씩한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오은영 박사는 그래서 최정윤에게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너무 씩씩하게 지내려 해서 말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씩씩하려 했고 그게 당연하다 여겼지만 오은영 박사의 말에 그녀는 육아에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혼 후에도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고 불편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MMPI 검사 결과 그녀의 마음속엔 두려움과 불안함, 외로움이 있었다. 그녀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같은 건 아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생각했던 그녀도 사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을 보니 나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나도 괜찮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일상을 보내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척척 해내었지만 난 괜찮으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남편과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풀지 못해 아쉽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비록 긴장된 상태로 있지만,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과제도 하고 글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회피'라는 단어보다 '직면'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지금의 상황과 나의 감정을 직면함으로써 괜찮지 않은 나를 바라보고 쓰다듬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