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핑크색 반짝이 구두
나는 큰 딸을 위해 샀던 구두를 차 트렁크에서 꺼내 언니 앞에서 툭,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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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는 그대로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구두를 들고 있던 손을 놓자 구두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안착했다. 구두는 아이의 발보다 한치수가 작았다. 아이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리본이 달린 반짝이는 핑크 신발이었다. 구두는 안타깝게도 사이즈가 작았고 어쩔 수 없이 한 치수가 큰, 똑같은 구두를 다시 사야 했다. 이미 신발을 한 번 신어서 환불을 할 수 없었다. 마침 언니가 근처에 살아 조카에게 주면 될 것 같아 퇴근 후 언니와 만나 언니에게 신발을 주었다. 언니가 살고 있는 새로 지은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당시 살았던 빌라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그 구두를 보내야만 했다. 많은 것을 가진 언니의 딸인 조카에게, 마치 물건을 버리 듯 구두를 버렸다. 3만 원짜리 구두를 벌벌 떨며 샀던 그때가 생각나 차마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조카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구두를 쥐고 있던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띠자마자 구두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EP. 2 검은색 단화
아직도 엄마가 사준 그날의 구두가 신발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구두는 이제 내게 희귀 아이템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니 늘 운동화를 신고 다녀야 해서 구두는 자린고비의 굴비 신세가 되었다. 어디를 가든 늘 세 명의 아이들이 함께이기에 발이 불편하면 온몸이 피곤해져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다. 대신에 나는 검은색 단화를 신는다. 검은색 단화는 치마나 바지 어디에도 무난히 잘 어울리고 구두보다는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언니가 아웃도어 의류를 주로 판매하는 브랜드 매장에서 사준 검은색 단화를 아직도 신고 다닌다. 겨울을 제외하고 양말을 신지 않아도 되는 계절에 신고 다닌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주야장천 신고 다닌다. 그렇게 신고 다녔는데도 아직 멀쩡하다.
EP. 3 하히힐
스키니 진을 입고 날씬함을 뽐내던 그때 그 시절. 여자라면 한번쯤 신어봤을 발 아픈 구두. 무려 7cm의 굽을 자랑 했다.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나를 돋보이는데 온 신경을 썼던 그때. '나 예쁘고 날씬하지?' 라며 속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지금은 다시 신으래도 절대 못 신는다. 펀한 게 제일이다.
EP. 4 구두 아닌 구두.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
투박하기 그지없는 아줌마? 들만 신을 것 같은 신발이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알게 된 정수기 회사에서 필터를 교체해 주는 일을 하는 코디를 하며 신게 된 신발이다. 운동화도 구두도 아닌, 단정한 듯 촌스러운 느낌의 신발이다. 정수기 코디를 하기로 한 후 롯데백화점으로 가서 바로 구매했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에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일을 시작했다. 나는 매달 사고를 냈고 보험료만 팍팍 올리고 이사를 이유로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이 신발 역시도 이사를 온 후 신발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몇 달 후 코디를 하며 입었던 유니폼과 함께 아무 미련 없이 버렸다. 새로운 모험이었던 운전과 코디 그리고 영업. 한 때 재미있었고 좋은 경험이라 여기며 다시 만나지 말자고 인사했다. 덕분에 3개월에 한 번 오시는 정수기 아주머니에게 늘 고마운 마음으로 오실 때마다 음료수를 건네게 되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 같아도, 세상엔 쉬운 일 하나 없다는 깨달음?을 주었던 일 중의 하나였다. 고마웠다. 정수기 회사도 지점장님도. 그리고 구두 아닌 구두도.
지금 가장 많이 신는 신발은 운동화다. 청바지 혹은 검은색 트레이닝복에 외투를 툭 걸치고 늘 그랬듯 아무 고민도 없이 현관 앞에 놓인 운동화를 신는다. 어느 날 큰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늘 똑같은 옷만 입어?"
순간, '내가 늘 똑같은 옷만 입었지.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잠깐의 생각 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만 늘 너희들 돌보느라 어딜 가지 못하니까 특별히 바꿔 입지 않아도 돼. 편하니까 늘 이렇게 입어." 아이에게 어떻게든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아이는 나의 대답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난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이렇게 똑같은, 편한 옷만 입으니 어디를 갈 때 옷을 나름 신경 써 입으면 어색하다. 살을 빼야 할 것만 같다. 내 몸이 옷에 맞추지 못해 아쉬움이 생긴다. 날씬한 몸으로 예쁜 옷을 입으면 잘 어울릴 텐데. 하는 생각들이 맴돈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결심하진 못한다. 단지 지금이 편할 뿐이다. 똑같은 옷, 똑같은 신발. 고민하지 않고 입고 신으면 된다. 하지만 편함이 때론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조금은 나를 조일 수 있는, 긴장감을 주는 구두도 필요함을 느낀다. 구두는 내게 그런 존재다. 불편해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신어야 할, 신어야만 하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부딪혀야만 하는 가족과도 같다. 편안함과 불편함 그 사이 어딘가. 구두와 가족은 내게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