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빠가 내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애들 보며 살면 되지. 그냥 아무 일 없이 그렇게 살면 되지. "
이런 아빠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내 인생엔 그 어떤 희망도 결실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남편과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직 젊디 젊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억울하고 답답했다.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 이해할 순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행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고 좋아한다. 다행이다 란 말속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부정도 완전한 긍정도 아닌, 너무 들뜨지도 않은 평온한 나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적격인 것 같다.
나는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예쁜 세 딸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공부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내 인생엔 다행한 것들이 참 많다. 그중 가장 내게 참 다행인 것은 위기를 희망으로 여길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늘 관계를 어려워하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는데, 공부를 통해 살아갈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힘든 시기들이 있었고 이혼의 위기도 있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심리학 강의와 그곳에서 만난 여러 수강생 분들 덕분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공부하기 전에는 '너 메시지'를 쓰며 남편 혹은 가족 탓을 해왔는데 이젠 '나 메시지'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게 되었다. 남편의 말투에서 상처받는 날들이 많았었는데 남편의 말투를 걷어내고 들으니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전엔 남편의 화난 것 같은 말투에 늘 상처를 받았었고 그 말들에 방어하기 바빴다. 방어가 실패하면 속이 상해 울었고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심리학 공부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상대의 말에 반응하기보다 그 말속에 숨은 구체적인 메시지에 집중하다 보니 그의 말이 제대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참 다행이다.
내 인생은 네가 있어 참 다행이다.
아무리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여도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 혼자로서는 결코 다행일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 참 와닿는 요즘이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결혼도 선택이라 하는 말도 이해가 된다. 어쩌면 난 결혼을 선택한 것이고 아이도 선택한 것이다. '순리'라는 말도 있지만 요즘 세상에선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살지 결정하고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남편을 선택했고 함께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회피하거나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중심이 있어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결혼 10년 차가 되니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가는 중이다. 네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것을.
남편이 있었기에 사랑스러운 세 딸을 낳을 수 있었고, 그 딸들 덕분에 참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지금 내 나이에 이렇게 예쁜 딸들이 있어서 완성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가정을 이루는 것 또한 인생의 중요한 과업이라 여겼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 비록 힘든 일들도 많았고 자꾸만 의지하는 나도 있었지만 이제라도 나를 알고 나를 찾아갈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엄마도 완전한 행복을 주는 엄마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참 다행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아가고 있고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나를 칭찬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심하게 하게 되면 꼭 아이의 기분을 묻고 사과를 한다. 무조건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려고 나를 억누르진 않는다. 사람이기에 화가 나는 감정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화가 나면 화난 마음과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존중받고 있다 느낀다. 나는 반드시 아이가 밉고 싫어서 화를 낸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상황이나 행동에서 화가 난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니 참 다행이다. 아이에게 사과할 수 있어서.
너를 알고 싶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동안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피하기 바빴는데 이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내게 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판단하거나 조언, 충고하지 않으면 온전한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급히 서두르지 않으면 상대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다. 편견을 걷어내고 상대의 욕구와 감정에 집중하다 보면 내면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있다.
어젠 친구에게 정말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거의 2년 만이다. 친구는 내게 생일 축하한다고 선물 쿠폰을 보내주었고,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뜻밖의 말이었다. 나 또한 친구에게 그동안 연락을 못했으니 나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했다. 순간 내 마음에 울림이 왔다. 나도 연락 못한 건 마찬가진데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고 너무 다행이었다. 친구가 나를 잊지 않았고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내 인생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