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게 뭐길래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리고 사랑의 의미

'사랑의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른다.'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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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터져라 음악을 듣는다. 같은 곡을 몇 번이고 되돌려 듣는다. 최애 가수의 라이브 동영상을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보고 듣는다. 가수의 목소리와 그 곡의 가사를 계속해서 음미하며 가슴에 새긴다. 사랑이 전부였던 그날들을 그리워하는 노래 속 화자는 매일이 다 엉망이라 말하며 매일밤 울다가 지쳐 잠에 든다.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귀를 막아도 네 목소리가 들려와 하루를 견뎌낼 수 조차 없다. 자꾸만 내 생각이냐 하냐고 희미한 그대를 붙잡고 그대도 조금은 나만큼 아파야 한다고 떠난 그대를 놓지 못한다.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가수의 목소리는, 가슴 절절히 사랑을 외친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걸까. 매일 밤 잠을 설칠 정도로 그리움에 사무친 그 심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요즘 내가 듣고 있는 노래는 정승환의 '그런 날이 올까요'다. 곡이 발매된 날부터 주야장천 보고 듣는다. 정승환 특유의 따뜻한 음색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아이들이 듣는 동요는 절대 반복해서 들을 수 없는데 정승환의 노래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같은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 진다. 가사가 내 마음에 확 와닿을 때까지 듣고 또 듣는다. 가사에 가수의 목소리가 더해져 실제 이야기인 것처럼 빨려 들어간다. 나는 가사 속에 담긴 감정을 이해해 본다. 노래 속 화자의 심정에 따라가 본다. 가슴 절절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해서 더 그 마음을 알고 싶다. 단순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보았을 비현실적인 사랑인 건지 현실에서도 삶이 엉망이 될 정도로 그렇게 그리울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노래를 듣다 보니,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란 책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런 날이 올까요'는 오세이사(줄임)의 컬래버 음원으로 책 내용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가슴 절절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사랑의 의미를 찾고 있다니, 기가 찼다. 현실 속 사랑에 익숙해져 버릴 때로 익숙해져 더 이상 '사랑'이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나였다. 사랑한다는 말은 오직 아이들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사랑을 찾고 있다니. 다시 사랑한다면, 두 번 다시없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잊어 가는 기억. 축적되지 않는 기억


소설 속 여 주인공 히노는 그날그날 잠을 자면 기억을 잃는다. 히노는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 그날의 상황을 빠짐없이 적는다. 아침이 되면 다시 자신의 병을 직면하고, 전날 기록해 둔 것을 읽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히노에겐 매일매일이 새로운 상황이고, 새로운 친구들이지만 기록을 읽고 원래 알던 사람처럼 행동한다. 어쩌면 우리도 기억을 잊고 다시 알기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선택적 기억이라는 말이 있듯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그 외에 것들은 기억에 담아 두지 않아 서로가 기억하는 것들이 달라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잊어버리려 애쓰는 것일 수도 있다. 다 알고 있지만 상대의 기억 속 내 모습을 부정하고 싶어 기억하지 못하는 척 피하려고 한다. 히노가 매일 상황을 새롭게 직면해야 하고 그 과정이 뼈아프게 다가오듯 우리도 눈앞에 있는, 풀리지 않는 것들을 힘들어도 직면해야 한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늘 맘 속에 있어 왠지 모를 답답함을 안고 살아간다. 부부가 서로 싸우게 되면 과거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 감정이 격해진다. 아무런 판단 없이 온전히 서로를 바라보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해 서로를 공격한다.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대로 기억을 쌓아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 외에 기억은 축적되지 못하도록 외면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축적된 기억이 달라 괴롭고, 잊으려 해서 더 괴롭다. 사랑한다 속삭였던 그때의 기억이 다 어디로 갔는지, 그때의 기억은 쏙 빼먹고 서로를 힘들게 했던 일들만 이야기한다. 축적된 기억을 왜곡해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고 만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처음 기억으로 들어왔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다시 시작해 보려 애써보지만 지나간 시간은 쌓아온 기억을 안고 있어 좋든 싫든 갖고 가야만 한다. 그건 내게 축적되지 않은 모르는 기억이라 여겨보지만 이미 상대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어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서로에게 기억되는 건 사진을 찍듯 온전한 기억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함께 시간을 쌓아 올리는 것


"신기하네."

히노가 중얼거렸다. 내가 돌아본 것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왜?"

"아니, 신기해서. 진짜 신기해. 마음이 조급하지 않다고 할지, 괴롭지 않아. 말이 없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거북하지도 않아. 둘이서 이렇게 조용히 시간을 쌓아 올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중

10년의 결혼생활동안 여러 갈등을 겪으며 사랑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고, 사랑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대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랑이라 여겨 왔었는데 결혼생활을 하며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보지만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빠져버리니 삶이 공허했다. 물론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갈등이 다시 올라오면 안 좋은 기억이 좋은 기억을 없애려 했다. 남편과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애쓰고 서로의 동선을 피하려 해 보지만 한 공간에서의 우리 둘은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결국엔 서로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니, 사랑이라는 두 글자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 같다. 마음이 많이 편해진 요즘, 남편을 대하는 것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을 보니, 사랑이란 함께 시간을 쌓아 올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하고 싶은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 모두가 함께 한 시간 안에 쌓여서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안 좋았던 기억을 버리려 하지 않고 바라보면 관계에 서툴렀던 나를 보게 된다.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상대로 인한 괴로움이 아니라 나로 인한 괴로움이었다. 그러니 기억을 잊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관계가 어렵다면 어려운 이유를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럼 그 속에 있던 남편의 모습도 이해할 수 있다. 남편의 어려움이 보여 남편도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싸울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나를 좋아했던 거 맞아? 나를 사랑하긴 해?"라고 물어보곤 했다. 사랑하면, 좋아하면 내게 이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사랑과 별개로 각자의 몸에 밴 생활습관이, 사고방식이 서로를 힘들게 한 것이지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내게 "네가 날 좋아하면 나도 널 좋아하는 것이고 네가 날 싫어하면 나도 널 싫어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어쩐지 얄미웠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선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던데 왜 남편은 내게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갈등으로 서로가 괴로웠는데도 나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동안 함께 한 세월과 아이들이 있어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기억 때문에 놓지 못하는 거라고 헤어지지 못하는 거라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았던 우리였지만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함께 한 시간 안에 하나 둘 생긴 아이들과 함께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마치 연애시절, 겨울에 눈을 맞으며 손을 잡고 걸었던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만 있었던 것처럼, 좋은 기억들만 쌓여 지금이 행복한 것처럼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갑자기 도루와 함께 보낸 시간이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영상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모두 언젠가는 잃을 것들이다. 없어질 것들이다.

그래도.... 온갖 것이 변해간다 해도. 인생을 삶으로써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 흐릿해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고 빛바래지 않는다.'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중


사랑이란 변하지 않는다. 환경이, 삶의 모습이 변한다 해도 결코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고 빛바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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