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유

그대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늘 미래가 궁금하고 꿈을 이뤄내고 싶은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고 달리고 있다.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조금씩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엄마'와 '아내'라는 경력을 쌓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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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삶이 되지 않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기지개를 켜어 본다. 나는 또다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한 해보려고 한다. 무엇을 하려면 결심을 해야 하고, 결심을 현실로 옮겨야 하기에 조금은 피곤하지만 눈이 떠졌을 때 고민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개인의 욕심? 개인의 행복? 나만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루 세 번 밥하고 설거지하고 간식을 챙기고 아직 어린 막내를 쫓아다니다 보면 어깨가 굳어지고 몸이 무거워져 힘이 드는데도, 잠을 줄이고 글을 쓰는 이유가 나만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나만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신경 안 쓰고 내 할 일을 할 수도 있다. 온 집안이 어지러워져도 설거지와 빨랫감이 쌓여도 내 할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이자, 집안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아내로서 당연히 아이들을 돌보면서 집안도 치워야 한다. 의무라면 의무다.


엄마라서 기쁘고 엄마라서 슬프다. 정말 고귀한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을 하고 예쁜 아이들을 보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나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 녹초가 되어 그대로 잠이 들어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되면, 하려 했고 하고 싶었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이 쌓여 스트레스가 되면 아이들에게 말이 예쁘게 나오지 못한다. 아이들이 해달라 하는 것도 해주기보다 스스로 해보라고 채근하게 된다. 살지 못한 삶, 이루어 내지 못한 삶이, 내가 꿈꾸던 미래를 향한 희망이 조금씩 옅어져 나를 내려놓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이대로 내가 아무것도 제대로 이뤄보지 못한 채 눈을 감게 될까 봐, 이대로 늙어 할머니가 된다면 너무나도 속상할 것 같다. 어릴 땐 인생이 긴 것 같다가도 20대가 지나 30대를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젊음이 금세 달아날 것만 같다. 몇 년만 있으면 큰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청소년기로 들어서면서 말도 안 통하고 자기 고집만 부려 대화가 단절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세상물정도 모르는 엄마여서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지는 않을지 별의별 걱정을 한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 그것을 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더 나은 육아, 더 나은 부부관계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힘들어도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책모임 과제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작가의 서랍 속 쌓여있는 제목들과 미완성된 글들을 보면서 이 전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본다. 마음에 희망이 넘쳐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땐 제목이 너무나도 씩씩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하니가 되어 있다. 그런데 피곤하고 힘이 들면, 그땐 내가 저리도 즐겁고 행복했나 하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삶은 고되다. 어떤 자리 어떤 위치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고민이 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세상은 참 공평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삶을 사는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이목으로 인한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진 것은 많이 없지만 꿈 하나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도 관계 안에서의 평가와 비교로 인하여 고통받듯이 더 나은 삶을 살 것 같은 사람도 마음속에 힘든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마음을 굳세게 먹는다 해도,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여린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 뒤엔 불행이 있고 죽음 뒤엔 삶이 있는 거겠지. 동전의 양면처럼. 맛있는 밥을 먹고 좋은 곳을 구경할 때 지구 어딘가에선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나 죽음을 당하거나, 너무 먹을 것이 없고 가난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 때론 극과 극인 이 세계가 원망스럽고, 알 수 없는 인생길에 허무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면을 건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나만을 위한 삶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대' 그리고 '나'라는 삶의 교과서 - '나'하면 반드시 상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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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이 있기 이전에 상대가 있고, 내가 아는 삶 뒤엔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삶이 있다. 우리는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답은 알지 못한다. 삶은 수학공식처럼 답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계속 궁금해하고 배우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앞을 볼 수 있지만 뒤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삶은 참 신기하다. 나의 뒷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을 수 있으니 그댄 나에게 삶의 교과서 된다. 좋은 점 나쁜 점을 평가할 순 없지만 우리에겐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혜안이 있다. 내게 있는 것과 남에게서 보이는 것을 부정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 사람들 마음속엔 양심과 본성이라는 필터가 있으니, 삶의 옳고 그름을 가르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 나의 거울인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에게 삶의 교과서가 되고 나 또한 누군가의 삶에 거울이 될 수 있으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고, 그것이 내게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내 삶의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는

그대와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와 내가 함께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