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점을 보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내 앞날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분명 노력 없이 안 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 나는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로서만 살게 될 것인지, 내 일을 가진 엄마가 될 것인지 알고 싶다.
졸리고 피곤하고 그냥 놀고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내가 관심 있지 않은 과목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수학 시간도 거의 졸았던 것 같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외에는 내 머릿속에 없다. 올해 9살이 된 큰 딸이 배우는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수학학원을 다녔었는데 그때 진정 내 머릿속에 수학이 들어왔던 건지 의문이다. 하긴 했는데 지식으로 남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생 때 다녔던 토익학원도 마찬가지다. 사실 기본적인 영문법에 대한 지식도 완전히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토익 학원을 다녔다. 왜 다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취업이라는 명목으로 다녔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난 집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순간이 즐거웠던것 같다. 수업 중간에 있었던 쉬는 시간도 좋았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하며 학원 주위를 배회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전 들렸던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도넛을 사 먹곤 했다. 사람으로 바글거리던 강남 한 복판에 있는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기쁨이 더 컸다. 그리곤 강남역 지하상가를 돌며 옷가게들을 구경했는데 그 재미 또한 쏠쏠했다. 나는 그렇게 공부하는 시늉을 하며 공부를 핑계로 이곳저곳을 다녔다.
나름 결혼 전 여러 경험들을 했다. 직장인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다 대학로에 있는 연극을 기획하는 회사에 인턴으로 다니게 되었다. 월급은 60만 원. 꽤나 짠 월급이었지만 무료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는 재미도 참 좋았다. 회사에선 주로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었는데 마침 영어뮤지컬에서 새롭게 배우를 뽑았었다. 대표님은 내가 연극 동아리를 하는 걸 아시고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 해서 같이 연습을 하게 되었다. 몸치였던 나는 따라가기가 벅찼다. 결국 연습 일주일 만에 잘렸다. 그렇지만 그때도 역시나 새로운 경험이 재미있었고 대학로라는 공간도 참 좋았다. 이동하며 듣는 음악도 참 달콤했다. 원하는 결과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나는 큰 수확 없는 일들을 전전하다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도 꿈을 쫓아 이것저것 시도했지만 의지 부족과 남편의 반대로 성과는 없었다. 유일한 성과가 있다면 세 딸이다. 첫째 출산 시 진통을 하다 수술을 하게 되어 셋 다 수술을 하였다. 수술 후 느껴지는 절개 부위의 고통을 세 번이나 감수했다. 가장 큰 인내심을 발휘했던 때가 아이들을 낳았던 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생 끝에 낳은 첫째 아이가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내가 한 잔소리에 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속해서 아이가 울어 같이 얘기를 해보려 불러 내었다.
"엄마가 잔소리해서 우는 거야?"
"아니."
"그럼 왜 우는지 말해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인다.) 피아노 학원에서 oo가 나 피아노 못 친다고 놀려. 자기는 가요도 칠 수 있고 듣기만 하면 따라 칠 수 있어하면서 나한테 엄지를 밑으로 내리면서 우우 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딸은 처음 나간 콩쿠르에서 준대상을 받아 학원에서 제일 높은 등수로 상을 받았기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친구보다도 진도도 훨씬 앞서 나가 있는데 왜 자기가 잘 친다며 딸에게 손가락을 밑으로 내렸을까. 아이는 너무나 속상해했다. 생각해보니 결론은 그냥 딸을 질투해서 그런 것 같았다. 학원 원장님은 딸에게 무시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나는 딸의 마음에 속상했겠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 만나면 혼내주어야겠다고 하였다. 정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지만 어느 책에서 그렇게 자녀에게 얘기했다는 사례를 보고 나도 그렇게 이야기하였다. 아이는 다행히 후련해하고는 잠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사람 마음속엔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를 심어야 해. 친구들의 말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해."
이 말은 나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나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나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로 인해 결정을 내리곤 했다. 속상하면 나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인에게 터놓았다. 그래서 남편과의 사이도 위태로웠다.
위태로웠던 이유를 셋째를 낳고 나서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었다. 힘들었던 순간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관계의 위태로움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몰랐고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여러 우여곡절을 지나 셋쩨를 낳았다. 셋째를 갖기 1년 전에 이사를 했는데 그 후부턴 부모님에게도 속상한 일들을 거의 말하지 않았고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해결방법은 잘 몰랐지만 오로지 나 스스로 감내했다.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 후반기부터 부모교육 공부를 시작했다. 가족에 대한 이론들과 자아존중감에 대한 이론들을 배우며 나는 관계 속의 힘들었던 일들을 다 떠내려 보냈다. 속상했던 일들과 기대를 떠내려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공부와 글쓰기였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면서 힘든 마음을 다 흘려보내고 내 부족함도 깨달을 수 있었다.
관계에서 오는 서운함과 기대를 흘려보내니 조금씩 내 마음에 단단함이 자라남을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더 성숙해지고 싶었고 자기 계발을 하여 외적으로 발전하고 싶어졌다.
발전에 대한 깊은 생각들을 매일 하다 보니 비로소 단단했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의 마음속에 단단하고 뿌리 깊은 나무를 심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