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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ul 20. 2023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파이팅 해야지 

날은 푹푹 찌고 아이는 우유를 쏟고, 컵에 물을 담겠다고 정수기 버튼을 눌러 물이 넘쳐흐르고... 정신없는 아침을 보냈다. 부정적인 마음에 휩싸이고 짜증이 나려던 때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반복되는 하루에 시작이 되는 이 노래 네 옆에서 불러주겠어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파이팅 해야지 파이팅 해야지'


특히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라는 문구가 와닿았다. 평소 아이가 즐겨 듣고 있어 같이 듣게 됐는데 그때마다 내 귓속을 파고들었던 메시지였다. 오늘은 노래를 틀어놓지도 않았는데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하며 나를 다독였다.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 사는 데 정답이 없었다. 다른 사람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 쓸 수도 없으니,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화를 내고 내 밤 좀 이해해 달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뭐 어쩌겠어'란 말만 되풀이하게 될 뿐이었다.


내 인생은 내 것이었고, 어떤 선택을 하든 혼자 감당해 내야 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더 옳은 쪽으로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답답하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글쓰기도 당장 어떤 결과를 내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방법이라 믿었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 확신했다. 어쩌면 확신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늘 상상을 하고 꿈을 꿔야 한다는데 이젠 그런 거 모르겠다. 기대감이 없다. 사람에게도, 내 꿈을 이루는 것에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건 묵묵히 글을 쓰는 것뿐이다. 


뭐 어쩌겠어. 힘내야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이불을 개고 청소기를 돌린다. 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다.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기분이 좋지 않아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눈에 보이는 바닥의 머리카락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셋째 출산 이후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아이가 돌이 지난 지금도 매일 한 움큼? 씩 빠진다. 처음보다는 빠지는 양이 줄어든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머리 빠지는 걸 예방할 수 있는 약이나 비타민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머리를 감을 때만 머리카락이 빠지면 좋을 텐데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머리카락이 하나씩 떨어져 있다.


청소 한 번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코 푼 휴지도 그대로 놓아 늘 아빠에게 잔소리를 들었던 내가 결혼 후 이제야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게 됐다. 돌돌이는 집에 방치해 두고 머리카락을 늘 손으로 주웠는데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할 수 없어 다이소에 가서 긴 봉이 달린 돌돌이를 사 왔다. 


사용 후 종이를 뜯어내는 일이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돌돌이에 머리카락이 샥 붙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간혹 불편함을 참으며 지낼 때도 있지만 마음에 불편함이 쌓이면 때때로 화로 짜증으로 분출이 된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혼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꾸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마음에 빠져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불편함을 참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여 힘든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해야 될 말이나 감정표현을 바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기다림이란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쌍방이 같이 그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테지만,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없다면 상대를 기다려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자존감을 회복해 나갔다. 머리카락을 빠르고 쉽게 치우기 위해 돌돌이를 샀듯이 나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에 집중하거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지금의 내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것을 택했다.


그 어떤 상황이나 말들로 나를 흔들리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단단해지고 싶었다. 주변에서 자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채근하더라도 결국엔 나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이 단단하다는 것을 증명해 내지?'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마음이 단단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나 자신의 마음이 나약해지거나, 혹은 상황이나 사람 탓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정이라는 보상이 없어도, 당장의 수용이 없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내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마음이 단단한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를 되뇐다. 내 마음을 수용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 하여 화를 내면 나 자신만 망가질 뿐이다. 예전에는 내 의견이 상대에게 수용이 되지 않을 때마다 참 많이 울었다. 어린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용받지 못해 떼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참 속상하고 화도 많이 났었다.


수많은 거절은 상대에 대한 기대감을 놓게 한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나의 욕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으며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선에서 나만의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고 주문을 건다.


나는 오늘도 '힘내야지 뭐 어쩌겠어'를 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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