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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ul 19. 2023

나는 나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한다. 어른이 된 후에는 누군가에게 그 환경을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만의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을까?


태어나 보니 부모가 있었고 혹은 형제자매가 있었다. 선택 없이 이 세상에 온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을 원하는 대로 만들거나 제어할 수 없다. 오로지 주어진 대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긍해야만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서 날 낳은 것이 아니다. 환경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모든 것이 부모 됨의 준비가 되어서 아이를 낳으면 가장 좋겠지만 모든 것이 상황에 맞게 다 들어맞을 수는 없다. 부모도 아이를 낳고 아이가 커가면서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미숙한 부분이나 부모의 정서적 환경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진다. 부모의 불안정함은 아이에게 그대로 흡수되어 아이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것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불안정한 채로 성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검증된 자료를 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성인이 되어서도 잘 살지 못하고 불만족스러울 때 어릴 적 환경을 탓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되새기면서,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어려운 거라며 부모 탓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가정환경 탓으로 돌리기엔 앞으로 남은 살아갈 시간들이 아깝기만 하다.


나 또한 부모를, 가정환경을 원망하기도 했다. 가정환경은 뒤로하고 가장 원망스러웠던 것은 미숙했던, 부모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양육방식에 대한 가치관이 전무했을 거라는 것이다. 부모조차도 삶에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지 정서적 측면에서 알지 못했다. 그저 사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고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 주변을 탓하며 그렇게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가치관에 흡수되어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가난이 대대로 이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의 것은 날 것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지며 알게 모르게 말이나 행동에서 드러나고,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부모와의 상호작용 방식이 사회생활을 하거나 가정을 꾸릴 때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어려움을 겪곤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를 정확히 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자라났는지 곱씹어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서 어릴 적 가정환경과 부모에 대해서 묻는 모습을 많이 보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어린 시절을 정리해 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그때의 상황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바라보면 원망이나 미움 등의 감정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혹은 미안함이 느껴지면서 그때의 어려웠던 환경들이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었던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부모 때문이라고 원망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처음부터 내 마음과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을 스스로 걸러내기보다는 힘들었던 이유를 되새기며 탓을 했다. 나는 그런 과정을 무조건 나쁘다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삶을 마치고 죽음의 길을 갔을 때 애도를 하듯이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며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충분히 미워하고 원망해 보니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주변에 표현하기보다는 글을 쓰면서 쏟아부었다. 다 쏟아붓고 나니 오롯이 '나'만이 남아있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들이었다고 이해하게 되니 어느샌가 미움도 원망도 사라졌다. 사라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나'만이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의 환경도 부모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고 부모 또한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니 연민의 감정이 몰려왔다. 부모도 그냥 사람이었다. 자신들을 설명해 주었던 페르소나를 걷어내면 사람 그 자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욕구와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가야 한다. 나의 바람을 이루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 무엇을 하기로 결정이 되면 그대로 실천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못할까, 왜 이것밖에 할 수 없지 라는 생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부족하면 채우면 되고 넘치면 덜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건강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가장 용기 있고 멋진 모습이라 생각한다. 무엇을 잘 해내고 이뤄내야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지 않는다. 진짜 자기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할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다 뜻대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현재의 노력을 다하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질 날이 오지 않을까?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노력과 실천뿐이다. 그것은 시대가, 세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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