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고 나를 알아차리는 것
내 삶은 주로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권위에 눌려 순응하는 패턴을 보인다. 그걸 인식하고 알아차린 순간 혼란이 왔고 삶에 대한 이해가 절실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나가야 스스로에게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온전한 내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알아감과 성장에 대한 욕심이 줄어들고 현재의 삶에 순응하고 무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하는지 몰랐던 때에는 내게 주어진 미래가 궁금해 사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미래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어쩌면 미래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운명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 인생 모서리에 아주 작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금은 좀 불행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훗날엔 자유로울 거라고 희망고문을 했다.
현실은 도망갈 수 없는 족쇄였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부모여서가 아니라 나는 잘 살지 못할 거야 하는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결국 검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거야 하는 무의식 속 그림자가 말을 했다. 우울증 환자는 아니지만 내 마음 잠재의식 속엔 늘 우울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자꾸만 창밖을 내다보았고 사라짐에 대한 생각을 했다.
매일을 몰아치듯 글을 써 내려가던 시간이 지나가고 마음에 여유 아닌 여유가 생기면서 꿈에 대한 희망이 흐릿해졌다. 되겠어?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힘들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어딘가에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말할 곳이 없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생각했다. 그 어디에도 탈출구도 희망도 없으니 선택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고 그것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는 죽음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육체는 한 줌의 재로 사라질지언정 마음이란 녀석은 그 자리에 남아 미련덩어리가 되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죽은 자리에 남아 계속해서 바라만 보고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인간이 죽음으로 평화를 얻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마음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내 삶의 희망을 아이에게 걸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를 찾아야겠다고, 가만히 주저앉아 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힘들지만 가능한 일주일에 하루 혹은 시간이 날 때 체력이 받쳐줄 때 글을 쓰고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누구의 탓도 하지 말고 해 볼 수 있는 대로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순응'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10대에는 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냐고 울부짖었고 20대엔 하고 싶은 걸 어떻게든 해보다 좌절감을 느껴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결혼이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혼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도 나는 갈팡질팡 우왕좌왕 헤매었다.
완벽한 도피를 꿈꾸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술했다. 마냥 자유롭고 재미있고 싶었다. 내가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즐기는 삶은 결핍을 낳았고 계속해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 했다. 회피는 회피를 낳았고 두려움으로부터 뒷걸음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야 했다. 어설픈 도피는 내 발목을 붙잡아 똑같은 현실에 놓이게 되거나 더 부정적인 순간들이 내 앞을 가로막곤 했다.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든 전쟁이 나지 않도록 불구덩이에 나를 던져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불구덩이가 불구덩이인지도 모르고 우울증 환자 코스프레를 하며 죽기를 소원했다. 베란다로 나가 밖을 쳐다보았고 남편이 베란다에 설치해 둔 봉에 걸려있던 스트레칭 밴드를 바라봤다. 걸어둔 모양새와 높이가 딱 죽기에 맞아떨어져 보았다. 어느 날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마음을 전하며 통곡을 했지만 언니는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고 다그치기에 바빴다.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고 늘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살았을 언니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 힘들었겠다, 얼마나 힘들었니,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말은 죽어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하루종일 공부를 하여 시험에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공감의 반응이라 생각했다. 기대할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 기대는 빨리 포기하는 게 오히려 현명해 보였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도록 의식이 나를 가로막았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침잠해 있다가도 알 수 없는 삶의 희망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작가가 될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르는 희망을 꿈꿨다. 빨래를 널다 마주친 뜨겁고도 따뜻한 햇살은 가슴을 뛰게 했다. 그래서 나는 건조기가 있음에도 햇빛이 들이치는 날이면 무조건 빨래를 널었다.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 빛에 반짝이는 빨래들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나도 밝은 햇살에 바싹 말려지고 선명해질 거라 생각했다. 햇살 좋은 날 도마를 베란다에 내어 놓기도 했는데 마치 내 마음도 햇빛에 소독되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하루엔 깜깜한 밤과 환한 낮이 있듯이 삶에도 깜깜한 밤이 있으면 환한 낮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었다. 온종일 밝은 날만 있으면 휴식을 취할 밤이 그리워질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달리다 잠시 시원한 물을 마시며 쉬어가듯이 우리의 인생도 달리기와 휴식이 공존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돌보며 움직이다 보면 내가 경혐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게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며 살아간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노력하여 어떤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 내어놓을 때이다. 글쓰기는 내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주었다. 몇 날 며칠을 조금씩 써 내려갈 때도 있었고 앉은자리에서 두세 시간을 버티며 써 내려가기도 했다. 글을 쓰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며 놀라기도 했고 앞으로의 글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글쓰기는 내게 자율성을 주었다. 아무도 내 생각에 토를 달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한 내가 되었고 온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글로 자유를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을 내는 것이 하나의 목표가 되기도 했지만 책을 내는 것만큼 글을 씀으로 자유를 얻고 오로지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글을 쓰면서 눈치 볼 것도 없었고 내 생각이나 감정을 억누르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잠을 포기하고 얻은 새벽의 꿀맛 같은 시간은 조금씩 나를 성장시켰다. 현실에선 괴로움의 순간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글쓰기는 힘든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해 주었다. 남 탓도 하지 않게 했다. 오로지 나만의 생각과 느낌에 집중하게 했고 온통 희망으로 범벅을 해놓았다. 매일 글을 쓰는 전업작가로서의 태도가 내게로 빙의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알려짐과 수익은 첫 번째 목표가 아니었다.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었고, 공부의 길은 내 길이 아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책을 읽음으로써 어쩌면 공부가 나의 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새로운 생각이나 지식을 알게 되면 설레었고 책 위의 글자만 봐도 기뻤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를 다 보내어도 아깝지 않고 온전히 새벽을 바침으로 피곤을 얻었다 한들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그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떡집 알바를 하면서 매일매일 떡 모양을 내고 포장을 하는 단순노동이 힘들지 않고 몸에 잘 맞았지만 이바지 떡을 넣은 상자를 보자기에 곱게 포장을 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느꼈다. 내가 만든 꽃모양을 들고 손님이 예쁘다 하며 들고 갈 때의 희열은 말도 못 하게 행복함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단순한 노동이 편안했던 것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해 내는 재미와 기쁨으로 한 가게에서 2년여 정도를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시스템에 맞추어 끼워 넣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창조해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판에 박힌 지식을 외우며 똑같은 사람, 직업인이 되는 것보다,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지식을 암기해 내고 시험에 통과하는 것 또한 내겐 없는 능력이자 재능이었다. 내 몫의 또 다른 재능이 있고 그걸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크리슈나무르티, 교육을 말하다 란 책에서 이해는 자신의 심리적 과정 전체를 알아차리는 것, 즉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고 했다.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삶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글쓰기는 나를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죽고 싶다 생각했던 그때도 전혀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의 사건과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여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은 나를 알아가고 사랑해야 한다는 어려 책 속의 말들이 확 와닿지 않았다.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이고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젠 조금은 알 것 같다. 선택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도 환경도 선택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내 것이고 내 삶의 방향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올바른 방향을 알고 싶어 하고 선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만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삶이 끝나가도 늘 남 탓을 하고 불평불만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의 생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의 생활보다 더 나은 삶이나 그보다 더 뛰어난 완전히 경험해 보지 못한 천국, 지상낙원은 아닐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어떻게 죽음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답은 결국 자신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딱 이만큼 그 세계에서도 그렇게 살게 될 거라고. 그리하여 현실이 지옥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게 남은 삶이 얼마큼인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적어도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길 바란다. 더 나은 삶이란 지식이나 재물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를 더 사랑하고 위하는 것임을, 잠을 양보하고 얻은 이 새벽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