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해 무조건"

듣고 싶었던 말

세 자녀를 키우면서 다짐한 것은 첫 번째, 대리만족을 위해 아이들의 꿈에 대한 기대를 갖지 말 것. 두 번째,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않도록 할 것. 세 번째, 사랑을 표현하는 데 부끄러워하지 말 것. 네 번째, 아이들의 성격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기. 다섯 번째,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것이다. 그중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오늘 새벽 꿈을 꾸다 아이의 뒤척거림에 잠에서 깨었다.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꿈이었다. 무의식에 깔려있는 부모에 대한 바람이 꿈을 통해 보이는 것 같았다. 부모에 대한 사랑은 물질적인 것보다 직접 표현함으로 잘 느낄 수 있는데, 나는 아직도 '우리 아기 사랑해요, 엄마 뽀뽀'와 같은 영아기 시절 부모가 아이에게 무한히 사랑을 표현하는 -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 그런 사랑을 원하고 있음에 덤덤하면서도 아직도 그 사랑의 표현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셋째를 낳고 유난히도 셋째의 가슴이 너무나도 따뜻했다. 지금도 아이를 안고 있으면 따듯함에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아이와 가슴을 맞대고 안고 있으면 온 세상의 근심이 싹 사라지는 매직을 경험을 했다. 어찌나 따뜻한 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부모의 정서적 사랑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의 정서적 사랑을 완전히 느껴보지 못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부모의 사랑이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정말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 걸까, 헷갈렸다. 나는 틈만 나면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연신 뽀뽀를 해댔다. 엄마에게 태어나 주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는 아직 엄마나 아빠, 언니, 물, 약 같은 단순한 단어만 말할 수 있는데도 다 이해하고 있다는 것처럼 "응" 하고 대답을 한다.


셋째 육아에 지쳐 첫째 둘째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했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알아서 하기를 원했고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주저 말고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지쳐갈수록 잔소리가 늘어 갔지만 그럼에도 셋째를 낳으며 다짐했던 사랑의 표현은 줄지 않았다. 아이의 마음에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첫째 아이가 방에 있다 갑자기 "엄마, 큰일 났어"하며 엄마를 불렀다. 왜 무슨 일이야 하며 가보니 아이는 능청스럽게 "엄마 안아줘, 엄마다 나를 안아주는 것이 큰일이야"하고 말했다. 그렇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물질적인 지원과 육체적인 보호가 당연한 것이지만 가끔은 '그냥 주는 사랑'을 잊곤 한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따뜻한 정서적 사랑을 늘 필요로 하는데도 부모는 상황에 따라 사랑을 주는 모습이 변한다. 사는 것이 힘들고 지쳐 안아주는 것 또한 힘든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꿈속에서 엄마는 내가 아끼는 화장품을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에 있던 액체를 반이상 쏟아버렸고, 이에 나는 흥분하여 매일매일 내 화장품 다시 사놓으라고 목놓아 외쳤다. 하지만 엄마는 내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대 화장품을 다시 사주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아빠 엄마에게만 반찬이 있을 뿐 나에겐 주지 ㅇ낳았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밥을 먹다 말고 방으로 가 옷장에 있던 캐리어를 꺼내 옷을 마구 집어넣으며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말리지도 않으시고 보고만 계셨다.


꿈에서 깨니 마치 누군가가 나를 쫓아오는 꿈을 꾼 듯 어깨가 무겁고 힘들었다. 꿈속에서의 느낌이 어찌나 생생하게 느껴지던지 실제로 겪었던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최근 2~3주간 셋째의 감기가 지속되면서 푹 자는 일이 많지 않았다. 늘 어깨가 무겁고 집안일에도 쉽게 지쳐버렸다.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고 도와달라 요청할 곳이 없었다. 아아의 기침과 뒤척임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참아왔는데 말할 수 없던 고충들이 꿈속에서 폭발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정서적 사랑을 갈구해 왔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달라고 말하지 못했을 분 언제나 마음 밑바닥엔 늘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에 대한 욕구가 깔려있었다. 셋째를 임신하고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내면아이를 알게 됐고 흘려보내는 과정을 거쳤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의 사랑을 바라고 있었다. 내가 셋째 아이를 귀엽고 사랑스러워 힘든 것도 잊을 정도로 아이를 껴안고 뽀뽀하는 그런 사랑의 표현을 나의 부모에게도 원하고 있었다.


아기였을 때 나는 유난히도 울음소리가 컸고 한번 울면 그치질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때가 생각난다고, 너희들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랑스러워 미쳐도 부족하지 않을 때 엄마는 나를 낳고 힘들기만 했다. 임신 9개월 차에 갑자기 양수가 터져 나를 낳아야 했고 미쳐 이름도 생각하지 못해 아빠가 언니의 이름 끝자에 맞춰 나의 이름을 지으셨다고 했다. 이름에는 쓰지 않는 한자를 쓸 정도로 깊이 생각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 사실을 개명을 위해 작명소에 의뢰를 하면서 알게 됐고,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연을 말씀해 주셨다.


그 사연을 알게 되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개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가 좋은 이름일 거라 생각하고 지어주신 것이니 그 이름을 죽을 때까지 가져가기로 했다. 대신 급하게 지은 이 이름으로 더 열심히 살아 좋은 결과를 이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빠가 젊었던 시절은 누구나 어렵고 힘들었다 생각하면서, 그때 그 시절 체벌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부모들이 육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없었고 알지 못했다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표현이 엄하고 미숙했어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거짓이 아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을 통해 사랑은 표현하는 거라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하는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은 자녀의 부모를 향한 애처로운 짝사랑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했듯이 자녀들 또한 계속 사랑의 표현을 바랐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것이 그 어떤 교육보다도 효과가 높다. 아이들은 믿어주는 만큼 스스로 잘 해낸다. 강요하지 않고 먼저 말하지 않아도 숙제도 공부도 놀이도 알아서 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신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만큼인지, 사랑하긴 하는 건지 그 마음을 추측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짧고 명료하게 "너를 사랑한다. 너를 언제나 믿고 응원한다."라고 말해주면 된다.




무조건이라는 말속에는 '조건 없는'이라는 의미가 있다. 마치 내 생각이 정답이라고 검색엔진이 말해주는 듯, 사전적 의미 또한 첫 번째가 '아무 조건도 없음'이다. 무조건의 무가 없을 무(無)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조건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는 아이가 커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바람이 담겨있다. 자기 전 아이와 이불에 누워 아이에게 솔직한 고백을 했다. "너로 인해 엄마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은 사실이야. 하지만 엄마가 바라는 것은 네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거기에 경제적인 충분한 보상까지 따르면 좋겠지."


아이들과 친정에 갔던 어느 날, 아이들의 할머니인 엄마는 첫째 아이에게 "수학 모르는 거 있으면 할머니한테 물어봐"라고 말했다. 아이는 원치 않았지만 할머니의 재촉에 할머니의 수학교습이 시작되었다. 그리곤 아이들이 잠든 밤 엄마 대신 아빠가 우리 방으로 와 "피아노 학원 그만두고 수학학원 다니면 어때?"라고 물어보셨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에게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라니. 대답하기도 싫었지만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거고 재능이 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배운 걸 버리고 다른 걸 하라해"라고 말했다. 아빠는 "공부하는 학원 보낼 돈이 없으면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보내라는 거지" 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늘 학교공부나 잘하는 것만 아이에 대해 물어보시는 부모님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어떤 점이 좋은지 힘든지 물어볼 법도 한데 언제나 공부얘기만 하신다. 지금부터 영어 공부 해야 한다, 지금 수학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다 등등 공부만이 인생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인 양 말씀하신다. 불편한 이야기만 쓱 지나간다. 겉으로만 드러나는 이야기만 하시니 대화가 더 진전될 수도 깊어질 수도 없다. 첫째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하는 것만 이야기하고, 내가 뭘 잘해야만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 또한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부모님과 나의 다른 점은 솔직함과 스스럼없는 애정표현이다. 아이에게 거짓 없이 이야기하려 노력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아이가 학교에 갈 때 잘 갔다 오라고 사랑한다고 좋은 하루 보내라고 손하트를 하며 말한다. 어느 날엔 아이에게 "파이팅"을 외치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싱글벙글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둘째 아이는 언니와 동생 사이에 있어서일까 둘 보다도 더 칭찬을 받기를 원한다. 나는 그 마음을 알아채고 받아쓰기가 많이 틀려왔어도 "우리 00 이만큼이나 맞았네. 어려운 건 다시 써보자. 다시 해보니까 잘 되지?"라고 격려를 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아이를 꼭 껴안고 뽀뽀하며 사랑한다 말한다.


애정표현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 셋째 아이를 보면서 절실히 느낀다. 내리사랑이라 어릴수록 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할수록 '사랑은 표현하는 거'라는 말에 확신을 갖게 된다. 신생아였을 때부터도 알았지만 두 돌이 되어가면서 사랑은 표현해야만 아는 거다라는 신념이 생겼다. 매일 아이를 껴안고 뽀뽀하고 사랑한다 말하며 하트눈이 되어 바라보면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웃음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언니들이 달려들어 같이 안아주고 뽀뽀해 주면 아이는 더 큰 웃음을 날려준다. 첫째 아이에게 파이팅을 외쳤을 때 보여준 웃음처럼 아이는 그렇게 조건 없이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은 조건이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면서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잊고 산다. 사랑은 조건이 있는 거라는 듯 말한다. 직접적으로 사랑은 조건이 있는 거야, 이건 현실이야 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말, 행동으로 보여준다. 어떨 땐 매몰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은 기쁨이자 행복이 되다가도 상처가 되기도 한다. 동전의 양면이나 지킬 앤 하이드 같다. 진정한 사랑은 무한한 바다이고, 셀 수 없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기에 사랑에 울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