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사랑하는 남편'으로 바꿨다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던 그 이름, '남편'

말똥이, 개똥이, 소똥이. 남편이 아이들을 이름 대신 부르는 애칭이다. 첫째는 말띠여서 말똥이, 둘째는 원숭이 띠지만 원숭이 똥이라 부르기 애매해 개똥이, 셋째는 소띠여서 소똥이가 되었다. 작명소에서 좋다는 이름 지어놓고 자신이 지은 별명을 부른다. 나는 남편의 애정이 담뿍 담긴 애칭이라 믿는다.


남편이 아이들의 애칭을 부를 때 느낌표(!)의 단호함? 과 물결 표시(~)의 부드러움이 동시에 담겨있다. 마치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남편이 늦은 퇴근 후 자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토깽이들" 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만큼 남편은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남편은 가끔 나에게 사랑을 갈급하는 신호를 보낸다. 갈급하기 이전부터 전조 현상을 보이는데 그 신호를 일찍 감지하지 못하면,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이 포효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지, 세상을 다 잃은 건 모두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기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람 입장이 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의 전화번호명을 '사랑하는 남편♡'으로 바꿨다. 남편을 사랑하는 남편으로 바꿨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남편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될지,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질지 궁금해졌다.


문득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10년 차가 된 올해 '그래 내 남편이지, 남편뿐이지'하는 깨달음?으로 남편을 완전한 내 남편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남편에게 서운하게 했던 것을 떠올리게 됐다. 간혹 남편이 출근할 때 일어나지 못해 남편이 문을 열고 나갈 때 들리는 종소리도 듣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의도도 없는 행동이지만 남편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아이가 감기 때문에 힘들어해서 자다 깨다 하는데 그때마다 같이 깨다 자다를 반복해서 못 일어나게 됐다고 일부러 안 일어난 게 아니라고 둘러대기 바빴다. 이 일로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못 일어나면 뽀뽀해 주면서 출근한다고 말해주면 어때? 다른 나라에서는 부부들이 출근하거나 퇴근했을 때 반가움의 의미로 뽀뽀하고 그러잖아. 그리고 잠에서 깨면 여보 배웅할 수 있잖아" 남편은 말똥 같은 소리 하네 하며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남편을 '사랑하는 남편'이라 바꾸니 남편 또한 나를 아내에서 '사랑하는 아내'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많이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짧은 연애 기간이 증명하듯 우여곡절이 많았던 결혼생활이었기에, 반복되는 문제로 인해 남편이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있고,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판단을 하며 우울해하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어떤 시련이 와도 나와의 결혼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하려고 생각지도 않았다. 표현 방법을 잘 몰라 서툴렀고,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강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거칠게 나타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곧 반성이자 용서다. 서로를 힘들게 했던 기억을 곱씹으며 억울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보다 나 또한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힘들게 했던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다면 부족하다거나 전혀 없었다고 느꼈을 사랑이 몇 배로 불어날 것이다. 그런데 사랑을 그 어떤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겠는가. 사람은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돌볼 때 가장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라 하는데 부부 사이에서도 아이들을 대하듯 위하고 존중한다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 그 이상으로 더 귀하고 값진 사랑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있기 전 부부가 있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게 되었듯이, 부부의 사랑이 견고해야 자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


누가 더 힘들고 불행한 지 비교하며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기보다, 필요하다면 부부 상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면 더 나은 부부 사이가 되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물론 비용에서 부담을 느끼고 언제든 상담을 끊을 수 있겠지만, 그럴 땐 필자처럼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 방법을 알지 않아도 된다.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에 집중해 의식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것이다. 잘 쓰고 못쓰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느낌과 욕구이다. 상대에 대한 나의 불만과 어려움에 집중한다면 나를 들여다보기보다 자꾸만 상대의 단점을 찾게 될 것이니, 자신이 원했던 가정의 모습과 그 속에서의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 내려가길 바란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닌 마주 보는 것이다. 무조건 나를 희생하며 깎아내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등 감정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욕구를 존중해 주는 것이다. 나 또한 계속되는 부딪힘 속에서 자꾸만 마음을 다쳐 감정을 숨기기를 택하고 소통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가라앉지 않았다. 사랑은 희생이라는 정의를 방패 삼아 마음대로 해석해 무조건 맞춰주고 미안하다 해보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만 마음이 편할 뿐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희생이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희생이라 여기는 것 또한 나만의 이기적인 해석이자 생각일 뿐 상대에게는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멀어질수록 미움과 불만이 쌓이게 될 뿐이었다.


사랑은 소통이다. 무조건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다.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상대를 힘들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럼 상대 또한 자신도 힘들게 했으니 미안하다고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협상이 아니다. 얼마만큼 주었으니 얼마만큼 받기를 원하고 요구한다면 싸움은 또다시 시작이 되고 등을 돌리게 되고 말 것이다.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고 상대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자.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든 무너지지 않고 나를 지키게 된다면 사소한 갈등 하나로 나를 놓지 않게 될 것이고 오히려 상대를 더 걱정하게 된다. 배우자가 왜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고 이렇게 행동하게 됐을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랫동안 지켜온 생각이나 가치관, 습관 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설득하여 바꿀 수 없다. 한 걸음 물러나 상대를 지켜보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상대가 변하길 원했던 것은 나 자신에게 바라던 것이다.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에게서 보이면서 거슬리고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좋다. 삶이란 개인 개인이 만나 연결이 되는 것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개별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몇 십 년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개인이 어떻게 단숨에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듯이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만의 세계에 상대를 끌어들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세계를 존중해 주는 것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남편을 내가 아닌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데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원하는 것들을 일상 속에서 조율하며 해나가다 보니 자신감과 뿌듯함이 따라왔다. 때론 육아, 살림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니 내가 원하는 일을 차분히 해 나갈 수 있었다. 처음엔 남편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해지는 것 같아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지켜봐 주는 것에 지지를 받는 것으로 여겨져 이루고자 하는 것을 끌고 나갈 힘이 커졌다.


건강한 내가 되어야 가정을 지켜나갈 수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은 건강한 개인 개인이 모여 만드는 것이다. 슬픈 일 기쁜 일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면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것이다. 나 또한 남편을 존중하고 위하면서 더 많이 사랑할 것이다. 사랑한 만큼 남편 또한 나를 더 사랑할 것이니. 아니 그보다 남편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