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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Sep 16. 2023

행복할 자격 사랑받을 자격

행복플랜 1.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랑받을 자격이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라 믿게 됐다. 그냥 사랑하는 거다. 무얼 잘해서 어떤 재능이 있어서 외모가 예쁘고 멋있어서 그런 이유 없는 거다. 태어남도 선택이 아니었듯이 살아있는 어떤 존재든 사랑받고 존중받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왜 이리 사람관계는 복잡한 걸까. 사랑하는데 조건이 너무 많다. 


뱃속에 있을 땐 무조건 건강하게만 태어나주기를 빌었는데 태어나보니 원하는 것이 너무 많다.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외모도 누구보다 잘났으면 좋겠고 눈에 띄는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정하는 것임에도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나 또한 부모가 되어보니 자녀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육아의 최종목적은 자녀의 독립이라는데, 독립 후의 모습까지도 상상해 볼 정도로 아이에 대한 희망을 놓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자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삶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10대 20대를 보내게 될 아이들에게서 내가 해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슴 한편이 씁쓸해진다.


책 읽어라, 방 청소해라, 공부해라, 핸드폰 그만 봐라... 매일 반복되는 잔소리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알아서 본인이 필요에 의해서 해야 하는 것들인데 필요함을 느끼기 전 부모가 먼저 선수?를 치고 이야기하니 얼마나 짜증이 날까. 집이 아늑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새 보호라는 명목아래 우리에 갇어 놓은 동물을 감시하는 곳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 자녀들 또한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성인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자꾸만 다그치고 지적해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짐이 되어버리고 상벌의 개념에 익숙해져 부모는 나를 지켜주고 언제든 응원해 주는 존재로서 기억하기보다 처벌을 하는 심판관으로 머릿속에 박혀 버릴 것이다. 


부모는 그저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는 것이라 여길 테지만, 자녀들은 부모가 나를 낳은 게 맞나?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기대고 의지할 곳 없는 어린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버릴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간섭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아이들은 부모의 진심 어린 지원과 응원으로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음에도, 부모들은 간혹 그 사실을 잊곤 한다.


무수한 육아에 대한 정보들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만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버린 자신의 어릴 적 가정환경과 부모의 육아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도 똑같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가난이 대를 이어간다 라는 말이 있듯이 삶의 방식 또한 노력 없이는 달라질 수 없다.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지 않고는 바뀔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부모 자신도 변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단호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배워야 할 것은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면 속 어린아이를 방치해 두었다면 그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코 누구든 미움받을 자격이 없다. 어릴 적 잘못된 육아방식으로 내 마음이 다쳤던 것일 뿐이었으니 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면서 내면아이도 함께 성장시켜 나가면 된다.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가했거나 비난의 말들을 했었다면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아이도 자신의 부모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행동이나 말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자녀들 또한 그런 부모를 기꺼이 이해하고 안아줄 것이다. 부모 또한 미숙하고, 때론 나약함을 보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 자녀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사랑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욕구를 수용받아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욕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감정도 욕구도 모두 자신의 것이므로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불만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자신을 향하게 된다면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결국 자신을 지치게 할 뿐이다. 아무리 내 감정을 버리고 상대에게 맞춰 보아도 내 마음은 전혀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나는 감정을 지닌 고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 감정을 숨기려 하고 회피하려 하면 할수록 불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억울한 감정만 생기게 될 뿐이다. 


나의 감정 상대의 감정 모두 다 소중하다. 내가 수용받고 싶듯이 다른 사람 또한 수용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그 감정을 무시당하면 무시당할수록 나의 존재에 대한 가치만 낮아질 뿐 나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해 주면 된다. 사랑은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올 것이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하기로 했다. 내 마음이 다치면 찢어질 듯 아프 듯 상대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 아픔을 참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랑이란 자격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 주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듯, 사랑은 보상의 개념도 인정의 개념도 아니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이다. 위하고 싶은 마음. 


우리는 무얼 바라고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남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 또한 이유가 없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거다. 그러니 자격을 운운하지 말기를. 당신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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