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주 잔소리를 한다. 공부해라, 책 읽어라, 핸드폰 그만해라...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귀담아듣기는커녕 잔소리라 여기고 짜증을 낸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보다 핸드폰은 많이 보는 것에 걱정을 하지만 정작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하거나, 아이들이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에게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그 나이에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아무리 춤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한대도 아이돌이 된다는 것은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테니 그때 그때 해야 할 공부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들어 수학을 어려워하고 어려운 것을 쉽게 포기하려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초등학생 시절 곱하기와 나누기와 같은 계산 문제가 지나자 점점 수학이 어려워졌고 그 어려움을 극복해 보지 못하고 포기했던 기억이 생각이 나면서 아이만큼은 어려운 것에 겁먹지 말고 될 때까지 해보길 바랐다. 무조건 학원에 의지하는 것보다 친구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차근차근히 알아가기를 바랐다.
어려운 것은 재미없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살아가는데 지식만이 중요한 것은 아닌데 공부가 아니면 갈 길이 없다는 생각에 아이의 진로를 생각하면 답답하다.
핸드폰으로 아이돌 영상을 보고 아이돌 사진을 다운로드하여 편집 앱을 이용해 동영상을 만드는 아이를 보면 아이돌의 화려한 겉모습만을 보고 외적인 것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고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던 나의 어린 시절과 많이 대비되는 아이의 모습에 일찍이 순수성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핸드폰만이 아이의 기쁨이 되고 놀거리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폴더 폰에서 스마트 폰으로 바꿔 준 뒤 아이는 가만히 있을 때는 무조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이들은 책을 보든 만화를 보든 춤을 추든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행동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늘 핸드폰을 본다. 무엇을 보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숏폼을 보고 있다. 대부분 아이돌들의 동영상이다.
아이돌의 동영상을 보는 것을 나쁘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가 핸드폰에 잡아먹히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핸드폰을 쥐게 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모든 것은 글로 존재하고 글로 시작할 텐데 아이가 책을 보는 시간보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더 많으니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은 세상은 스마트폰 속 세상이 아닌데 아이들의 놀거리가 거의 없는 요즘 아이들이 핸드폰을 최고의 장난감이라 여기고 있는 것일까. 어딜 가나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고 있고, 심지어 유모차 탄 아이도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나는 어린 시절 아이돌을 동경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좋아하는 아이돌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 간직했을 정도였다. 뮤직뱅크, 인기가요 등 음악방송은 놓치지 않고 시청했다. 무대 위 수많은 가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누가 출연했는지 다 기억은 하지 못했지만 무대 위 자유로워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고 부러웠다. 주목을 받고 환호를 받는 모습에 더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일요일마다 인기가요를 시청하면 엄마는 보지 말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왜 싫어하셨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알지 못한다. 아빠는 음악방송을 시청하는 것보다 연예인들의 염색머리를 싫어하셨다. 같이 TV를 보고 있으면 꼭 채널을 돌리셨다.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흭 채널을 돌리셨다.
왜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왜 음악방송을 보는지 물어보신 적이 없다. 자녀와 소통하기 위해 "어떤 연예인을 좋아해?" 혹은 "어떤 노래를 좋아해?"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대화가 없었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할 때도 얼른 끄라고 방문을 열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집에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아이돌을 좋아했던 건 중고등학생 때였는데, 요즘 아이들은 좋아하는 시기가 더 빨라졌다. 초등학생 시절 언니와 룰라 춤을 추며 놀았던 기억은 있지만, 연예인을 좋아하고 동경하지는 않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을 때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니란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다양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외든 국내든 어디든 다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현실이 꼭 그렇게 되지는 않았기에 책을 보면서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를 만나기를 바랐다.
알고 보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나의 욕구였고 바람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경험하고픈 나의 욕구가 아이에게 투영된 것이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자신만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원하는 것을 다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길 바랐기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내 부모가 알려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한 것을 내 아이에게만큼은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내면아이를 만났던 나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수용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어린아이를 키우기 위해 공부를 했고, 글을 쓰게 됐다. 점차 시간이 흘렀고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이젠 진짜 어린아이인 자녀들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마냥 예쁘고 귀엽기만 했던 첫째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시간의 속도를 감탄하면서도 아이의 시간도 지금처럼 우리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의 시간이 나의 시간만큼, 아니 그 보다 더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귀하게 느껴진 만큼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길 바랐다. 계획을 세운 데로 학교와 학원을 다녀와 좀 쉬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한 후에는 책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책도 읽고 공부도 했으면 했다.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가 핸드폰을 쥐고 있는 모습이 계속 포착이 됐다. 실제로 길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음에도 핸드폰만 보고 있는 모습만 보면 마치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핸드폰만 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틔어 나왔다. 핸드폰 그만하고 이제 할 일을 해라,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그러니 너의 할 일을 하며 충실히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아이가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남편 퇴근 후 또 큰아이에게 잔소리 총알이 발사됐다. 미안한 마음에 엄마가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지금도 그렇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의 기회가 달라지는 것 같은 현실이 슬프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나의 현실이 한탄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마음과 아이가 삶을 대하는 태도라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당장 네가 원하는 학원을 보내주지 못하지만, 네가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면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에겐 미래가 있고, 미래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 지금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 요즘엔 아이가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행복하다면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날들이 아주 약간은 버겁고 꿈을 가진 내가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