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너지 출처
내가 힘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거다. 만약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멍을 때리거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것도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원하지만 관계를 위해서는 대화를 피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여러 명 사이에서의 대화는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1대 1 대화는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어 피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1대 1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적당한 관심과 궁금함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시댁에서 동서를 만나게 되었고 함께 카페에 가 한 시간여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는 유모차에서 잘 자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거슬리는 것은 동서의 다른 사람 이야기였다. 자신의 욕구를 자신의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 이야기를 하면 우리의 대화가 서로에게 더 만족스러울 텐데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동서 지인들의 이야기는 그동안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상대에 대한 험담이 아닌 그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힘이 풀리게 한다. 나의 에너지가 슬금슬금 빠져나가기 시작해 어떻게든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몸부림은 "그렇구나", 고개 끄덕임과 같은 리액션으로 표현이 된다. 거기에 나의 질문이 추가되어 어느새 대화가 인터뷰로 변해간다. 나에 대한 적당한 관심을 기대했다 실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질문이나 리액션이 싫지 않은 듯 보여 안도하곤 한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 동서와는 달리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천하는 나는 만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동서의 에너지에 압도되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어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만나면 생각 외로 반갑기도 하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슷한 텐션의 사람을 만났을 때 힘을 받는 동서라는 것을 알기에 내가 그런 상대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늘 있지만 카페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고 대화에 집중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로 나를 싫어하지는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주로 내가 질문을 해야 하지만 동서가 내게 해주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어 다 빠져나가려던 에너지가 제자리에 머문다. 그중 하고 있는 공부는 어떤지 그것이 일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반갑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확실히 앞으로도 이어질지 일이 될지 알지 모르기에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좋았다.
관계의 발전과 지속은 서로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화를 통해 동서가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일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엄마로서만이 아닌 동서 자체로서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니 그녀도 내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싫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하니 서로가 다르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있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서로 다행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인연이란 참 소중하다. 서로가 다르다는 핑계로 계속해서 상대를 밀어내게 되면 내게 남아 있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없을 것이다. 가족이라 해도 서로가 맞지 않아 피하게 된다면 남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기대를 조금씩 낮추고 나와는 다른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성향도 다르고 에너지를 받는 방향도 다르지만 동서와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정을 늘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늘 사람과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있고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관계에서의 상처를 극복하고 온전한 나로 받아들이니 달라서 오는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거나 가족이 아닌 사람을 만났을 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신경을 쓰게 되어 만남도 약속도 하지 않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보다 서로에 대한 진심이 아닐까 한다. 얼굴의 주근깨는 늘 화장으로 가려야 한다 생각해 화장을 하고 지워야 하는 번거로움에 사람 만나기를 더 꺼려했었다. 그럴 때 마스크가 자신감?을 갖게 하기도 했지만 가까운 사람을 만나고 차를 한잔 마실 때에는 마스크를 내려야 했다.
마스크를 내리고 이야기를 하는 내 모습이 보기에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그런 내가 신기하게도 동서와 대화를 나누면서 얼굴 위 주근깨를 신경 쓰지 않았다. 외모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된 대에는 대화에 대한 집중이 한몫을 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을 하니 그 뒤에 숨은 동서의 욕구를 생각해 보느라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나이는 같지만 성향이 달라 가까워지는데 애를 써야 했지만 사람에 대한 정을 그리워한다는 공통점으로 지금껏 관계를 이어 나올 수 있었다. 가족이니 당연히 얼굴을 봐야 하고 그 관계를 흐트러 트리면 안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동서와 나의 관계도 강산이 변하는 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가족이 되지 않았다면 또래와의 대화가 거의 없었을, 혹은 전무했을 텐데 동서와 내가 가족이 되었다는 이유로 만날 수밖에 없었고, 어쩌다 보니 유일한 또래와의 대화가 되었다. 존댓말이 오가는 대화이지만 그렇기에 존중하는 대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친구 사이였다면 서로 맞춰가느라 다툼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핑퐁? 주고받기가 잘 되었던 대화였고 그런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게 잘 흘러갔다. 동서가 비어진 틈을 잘 메꾸어 주었기도 했겠지만 지나온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로서 역할을 잘해주지 않았을까 한다.
외모 혹은 서로에 대한 다름이 대화에 장애물이 되지 않음을 화인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관심과 인연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오래 있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중한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같은 나이, 엄마,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서로 다른 우리를 엮어주었다.
이로 나의 에너지 출처는 혼자만의 시간 외에 진솔한 대화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