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쓴다 했을 때 걱정부터 했던 언니가 진짜 마음을 보여주었다. "심리학 공부가 좋은 거구나"라며 대화의 끝에 나눠준 언니의 말이 진심으로 와닿았다. 한 번씩 친정에서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할 때 글은 잘 쓰고 있냐고 물었었고 나는 단답형으로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런 언니가 매번 잘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언니가 정말 나에 대해 궁금한 걸까? 으레 하는 빈말 같은 걸까?라고 생각했다. 늘 언니에게 주기보다 받기만 했었기에 언니에게 나란 사람이 갈 길을 잘 찾지 못하고 헤매면서 꿈만 좇는 사람으로 비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언니가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맞을까, 과연 언니와 내가 친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언니와 슬픈 내용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의 방송을 보면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 간의 대화에서 나의 이야기가 닿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해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소리 지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가족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하곤 했다. 내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한 채로 성장한 나는 가족과의 대화를 포기해버릴 정도가 되었다. 웬만하면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심지어 언니와는 길면 몇 달을 전화하지 않았다. 언니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전화하지 않았다. 도통 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전화가 오면 쥐어짜듯 이야기를 해야 했다.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떤 소식을 전했을 때 곧바로 점심시간이면 전화가 왔고 그럼 나는 부모님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힘들겠다라든지 속상했겠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언니의 전화는 반가웠지만 일방적인 것 같은 대화는 고구마를 100개 이상 먹은 것 같은 뻑뻑함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힘들어서 못 살겠다며 엉엉 울며 전화를 했을 때도 그런 생각 하면 안 된다고 다그칠 정도로 감정에 대한 공감을 말로 하지 못했다. 그런 언니를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판단했다. 자매로서의 케미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언니가 이날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인 것처럼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언니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던 데에는 나의 질문이 한 몫을 했다. 그동안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남았던 어린시절 초기 기억에 언니가 있었고, 내가 기억하는 장면에 대해 언니의 생각이 궁금했다. 초기기억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며 어린시절의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침을 말해주었다. 언니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형부에게 "이 얘기 들으면 충격받을 텐데..."라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자 형부는 "괜찮아" 하며 언니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언니는 용기를 냈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장면에 자신이 기억하는 장면을 덧붙여 말을 하니 하나의 기억이 완성이 되었고 그날의 사건이 이해가 되었다. 이로 언니와 나는 같은 초기 기억이 있음을 확인했고 사춘기 소녀들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것 같은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말을 좀 더 선명하고 명확하게 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했을 때 자신도 그래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고 언니의 딸이면서 하나뿐인 친정 조카에 대한 고민까지 이야기했다. 언니의 고민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어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언니와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자신만의 논리나 기준이 확고하면서도 사람을 경계하는 듯 보였던 언니가 내게 보여준 진심 어린 모습은 인상 깊게 남아 일상에서 힘이 되었다. 깐깐할 것 같은 언니에게 신뢰를 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느껴졌는데 처음으로 언니에게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그런 언니에게 인정받았으니 그 어떤 평가나 분석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언니와 내가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책쓰기에 집중하며 조금씩 변화된 긍정적인 에너지가 언니의 마음을 움직였다. 언니의 마음에도 공감이라는 씨앗이 새싹이 되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니가 ISTJ 라 해서 원래 그런 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몰랐던 언니의 직관과 감정을 대화를 통해 알아가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감정을 내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 편한 것 만은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언니의 지론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답답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꺼내어지게 됐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언니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언니의 마음에 안심을 심어주고 싶다. 내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나눌 수 없던 솔직한 마음을 함께 나누니 언니와의 관계가 한 층 깊어진 느낌이다. 그동안 상대의 눈치만 보며 상대의 기분에 따라 의견을 바꾸는 것이 감정형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관계를 통해 행복하길 바라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불편한 것을 피하는 것만이 나와 서로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언니와 나 각자의 인생에서 혹은 함께 하는 순간에 서로 몰랐던 부분들을 발견하고 서로를 통해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