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박나래가 고교시절 지냈던 하숙집 할머니와 20여 년 만에 재회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박나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워 목포로 내려가려 했는데 할머니가 잘해주셔서 견딜 수 있었다고 할머니께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특히 박나래는 할머니의 밥을 잊지 못한 듯했습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재회한 박나래에게 밥 먹고 가라며 밥상을 차려주셨습니다. 박나래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정말 맛있다. 김치 맛도 똑같다며 진심으로 감사해했습니다.
학창 시절 잊지 못할 '밥상'이 있으신가요? 혹은 기억에 남는 음식과 음식을 먹었던 장소와 분위기를 기억하시나요?
저는 학창 시절 엄마의 김치찌개를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있던 하얀 쌀밥과 따뜻한 김치찌개의 조합을 좋아했고,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창 시절 저를 키워 주웠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밥'이었습니다.
음식은 사람의 몸을 성장시켜주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성장시켜 줍니다.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감'입니다.
아기는 안정감을 느끼며 성장합니다. 누워있던 아기가 뒤집고 앉고 기고 걷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안정감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안정감은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요?
아기는 엄마의 냄새와 엄마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안정감을 느낍니다.
아기가 조금 더 커 엄마의 음식을 먹게 되는데, 아이는 엄마의 음식 만드는 소리로도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엄마가 도마 위에서 재료를 손질하거나 음식을 만들면서 나는 소리로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음식을 만들 때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거기에 도마를 두드리고 음식을 휘젓는 소리가 합쳐지는데 하나도 시끄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이 안정됨을 느낍니다.
박나래 님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혼란스럽고 불안했을 텐데 힘들었던 그때를 붙잡아 주었던 건 할머니의 음식과 음식을 만드시던 정성 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나 혼자 산다의 박나래 님 영상을 보면서 엄마의 따뜻한 밥을 떠올렸습니다. 박나래 님의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할머님의 음식처럼, 어디선가 외로이 있을 많은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엄마의 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 중에 여러 번 유산을 하고 힘들게 아이를 낳은 분이 있습니다. 자녀가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가 왔습니다. 그 자녀는 이젠 더 이상 엄마의 품 속에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사춘기가 온 청소년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도 엄마의 품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품에 파고들 순 없지만 아이에겐 따뜻한 엄마의 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마음 한편이 쓰렸습니다. 혹시나 엄마의 따뜻한 밥이 곁에 없었던 분들이 계시다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꼭 엄마의 밥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기억 속 자신을 품어주었던 따뜻한 밥 한 공기의 기억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힘든 세상을 피해 갈 순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혹은 자신의 현실을 위해 뛰거나 걸으며 나아갑니다. 그 길을 가는 과정이 때로는 힘이 들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오늘 한 번 여러분 마음의 중심을 지켜 나아가게 하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떠올려 보시면 마음속에 따뜻함과 감사함이 올라오실 겁니다.
힘든 하루 끝에 맞이하는 또 다른 오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밥 한 끼 잊지 마세요.
마침 저희 아이가 학원 갔다 돌아왔네요. 저도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과 음식을 준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