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피아노 개인 레슨 상담을 예약해 놓고 남편과 나는 고민이 많았다. 피아노를 계속 가르쳐야 할지 그만두고 교과목을 가르쳐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피아노 콩쿠르가 있던 어느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아이의 피아노 레슨을 주제로 옥신 각신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로 나간 콩쿠르였기 때문에 같은 학년인 아이들과 실력 차이가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게 현실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피아노 개인 레슨을 포기하라는 듯 말했다. 남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는 가지만 아이에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콩쿠르가 있기 일주일 전 피아노 영재교육원에서 아이의 실력을 테스트할 기회가 있어 2시간여 차를 타고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 지역에서 열리는 콩쿠르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믿었고, 아이에게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남편은 아이가 상을 타올 때마다 기뻐하면서도 아이가 정말 잘하는 게 맞는지 반신반의했었다. 테스트를 받아본 결과 예상치 못한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열의도 있으니 개인 레슨으로 기본부터 다시 배워볼 것을 권유했다.
개인 레슨 상담을 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피아노 실력을 평가받으면서 지금까지 배워왔던 피아노 학원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가르쳐왔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에게 계속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맞는지,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게 더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말하니 남편은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지 않은것 같아 답답해 했고 급기야 언성이 높아졌다. 남편의 언성에 도대체 뭐라고 말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소리를 지르니까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당신은 뭘 원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남편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자신만의 원칙과 자신이 원하는 것이 같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원하는 것이 무어냐는 나의 질문에 또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나는 남편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해서 다시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비난처럼 들리는 말을 들으면 방어를 하려고 변명을 하게 되거나 반격을 하게 되어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아이가 그동안 배워온 게 아까우니 그만두지 말고 취미로 동네 학원에서 배웠으면 하는 거구나?"라고 물었다. 남편은 나의 말에 좀 차분해진 듯했다.
남편이 답답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긴장이 되게 하거나 비난처럼 들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편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했다. 남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잘 들어서 같이 의견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에서는, 갈등상황을 해결하려 할 때에는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쓰든 상관없이 그들이 표현하려고 하는 욕구를 듣는 훈련을 우리 스스로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어떤 메시지라도 그것을 욕구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적으로 들리는 분석밖에 할 수 없다면 전쟁은 멀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 전쟁이 언어적이든, 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 말이다.
나는 피아노든 어떤 것이든 아이의 선택에 맞기길 원했기 때문에 피아노를 당장 그만둬도 상관없었다. 아이가 행복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과의 의견차이로 갈등상황이 극으로 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콩쿠르가 있었던 주말 동안 아이의 개인 레슨 상담을 취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피아노를 배웠던 비용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가르칠지 영어를 가르칠지 결정이 되지 않았다. 가족들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엄마 아빠인 우리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물어보아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하니 아이의 의견에 따를 수가 없었다. 결국 상담을 취소할 수 없어 전화상담 후 직접 방문해 보기로 남편과 결정을 했다.
남편과 처음 논의를 할 땐 각자의 생각 차이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 예체능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괜한 바람을 넣는다며 트집을 잡았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남편의 비난 어린 말들에 화가 나기도 하고 남편의 의견에 더 따르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하지만 남편의 현실적 감각으로 인해 나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된다. 전화로 상담을 하면서 물어보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 주었다. 남편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레슨이 없는 주중에 혼자 연습을 할수 있을지, 일주일에 한번 받는 레슨이 효과가 있을지 등에 대해 물어볼 것을 당부했다. 남편이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는 것을 보니 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직접 방문해 상담을 받기로 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과정을 돌이켜 보니, 합의점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명확한 의사전달이었다. 상담을 취소하지 않으려 나는 남편에게 정확한 문장으로 "소개를 받은 분이고 취소를 하기에는 날짜가 다 되어가니 한 번 가보자. 직접가서 상담을 받은 후 결정을 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견이 없이 알았어라고 말했다.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그동안 여러 의견에 흔들렸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의사 전달을 하는 것이 도전과제였고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상담을 다녀오고 레슨을 받기로 결정을 했어도 불안함은 계속되었다. 매주 한 시간여를 운전해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 남편의 몫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남편이 힘들어서 못한다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나는 또다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말을 했다. "내일 12시까지 가야 하는데 몇 시에 출발하면 될까?" 남편은 차분하게 "10시 넘어서 11시 되기 전에"라고 말했다. 남편이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해주니 안심이 되었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정해져 안도하게 되었다. 그동안 남편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때마다 거절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들을 들어왔기 때문에 남편과 논의를 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었다.
남편의 말에 하려던 것을 멈추거나 남편의 뜻대로 하려고 애를 썼었지만 번번이 남편의 화를 돋우게 되는 것을 보고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편은 ISTJ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면 실수 없이 한 번에 해내야 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약을 먹이더라도 아이가 거부하면 포기하기 일쑤였는데 남편은 어떻게든 빨리 자신의 눈앞에서 아이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갑자기 화를 냈고 다른 사람 탓을 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인데도 분노를 폭발해버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우유부단한 나의 태도에 남편이 화가 났던 것이다.
NF기질인 나는 상대의 기분에 따라 나의 결정을 무시해 버리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때가 많다. 자신만의 논리와 원칙이 우선순위에 있는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우유부단하다거나 바람직하지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처럼 말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에 빨래가 많으면 잘 빨리지 않으니 빨래를 있는대로 다 넣는 것은 비상식적이라 말한다. 빨래를 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른 것인데 그것 또한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한다.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을 당장 해결해야 하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나는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해결해야 될 문제를 다양한 시선에서 보려고 한다.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할 때 여러가지 사항을 놓고 비교해보느라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남편은 그런 나를 매우 답답해 한다. 남편이 답답함을, 무엇을 원하는지 말로 표현해주면좋을텐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비언어적으로 표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이 화가 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게 되니,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원하는 바를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맞춰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명확하고 또렷하게 말을 전달해 주어야 할 대상이 남편뿐만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내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혼자 장을 보거나 어디를 갔을 땐 시간이 흘러도 혼자이기 때문에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비교할 수 있지만 상대와 함께일 때는 줏대 있게 행동하고 말해야 했다. 가족 외에는 거의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내다 보니 현재의 모습을 점검해 보거나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쓰기 과정에 참여하면서 어떤 부분이 비어져 있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명확하고 또렷하게 말하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마음에 중심이 생겼다. 할 일을 하느라 피곤하면 남편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 책 쓰기를 통해서 마음에 활력이 생겨서인지 남편에게 살갑게 대하게 됐다.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기 전에 일어나 남편이 자고 있는 방에 가 남편을 깨워주었다. 출근하기까지 시간이 남으면 옆에 같이 있었고, 출근 준비를 할 때는 남편이 아침마다 먹는 영양제를 챙겨주었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우리에겐 큰 변화가 되었다. 출근할 때까지도 못 일어나고 자고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에 남편은 항상 자신은 돈 벌어 오라는 노예라 말했다. 왜 돈 벌어 오는 노예라 말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 깨워주고 출근 준비를 할 때 간단하게 영양제를 챙겨주며, 문 앞에서 배웅해 주길 원했던 것이다. 어느샌가 이런 남편의 불만 섞인 말들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내가 힘든 만큼 너도 힘들어봐야지 하며 생활비를 늦게 줄 거라 하는 말이나 자신은 노예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됐다. 오히려 남편도 에너지가 생긴 것인지 자기 전 방에서 맨손 운동을 하기도 했다. 건강검진을 받고 건강에 대한 염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함도 있지만 예전보다 확실히 남편이 밝아졌다. 맨손운동을 하는 모습에 활력이 느껴졌다.
아내이기 때문에 혹은 남편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규정을 지으면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 같았다. 고리타분한 전통적인 사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오니 서로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떤 대단한 것을 해주려 하기 보다 그냥 옆에 있어주니 자연스럽게 화목함이 찾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싸우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거나 말없이 혼자 집을 나가거나 하는 일들이 없어져 다행이었다. 요구하는 것에 반응이 없거나 싫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질문에 차분히 답을 해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불안함은 중심이 없을 때 찾아온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지 못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불만의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게 된다.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떨 때 편안하고 불안한 지 알게 되니 그렇게 맞춰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그것은 남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의사를 전달할 때 명확하게 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 또한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한다면 인생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