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꿈

글쓰기의 지도가 있다면

이 슬리퍼만 신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 집 곳곳에 붙어 있는 지도들이다. 별 특징 없던 우리 집을 남편이 지도의 집으로 만들었다.

매 주말이면 집에서 쉬는 게 좋다고 말하는 남편이지만 우리는 늘 함께 어딘가로 향한다. 그곳이 집 앞이든 저 멀리 어디든 말이다.


요즘 들어 남편이 부쩍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결혼한 지 10년, 직장생활 10여 년, 밑 빠진 독처럼 들어오면 나가는 월급에 상실감이 큰 걸까. 지쳐버린 걸까. 보상 없는 삶에 회의감이 드는 걸까.


남편이 두 번째로 많이 하는 말이 있다.

"5년 후면 나 쉴 수 있는 거야? 더 빨리 그 기간을 줄일 순 없어? 1년은 안돼?"

장난스레 시작된 남편의 투정 아닌 투정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남편의 말에 헛웃음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속으로 말했다. '나도 당신 쉬고 싶어 하는지 알고, 내가 돈 벌어와서 당신 쉬게 해주고도 싶어.'

남편의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거의 두 시간이다. 매일을 그렇게 수많은 차들 사이를 달리며 회사와 집을 오간다. 신혼 초 중국 출장을 자주 가는 회사에서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살고 있는 지역 안에 있는 회사여서 출퇴근 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난 달에 회사가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잦은 출장이 싫어 이직했더니 이직한 회사마저 지방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회사가 멀어진 만큼 하는 시간도 길어졌고, 남편의 장거리 운전은 이때부터 시작이 됐다.


나의 친정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니셨다. 아빠는 집이나 자동차를 사고팔기를 잘하셨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됐다. 아빠의 역마살을 닮은 것인지 나도 여기저기 참 잘도 다녔다. 역마살은 나에게만 있는지 알았는데, 고것이 남편에게 옮겨갔나 보다.


남편은 회사에서 이것저것 잘도 가져온다. 두유나 우유 그리고 빵, 심지어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돈가스도 가져온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니 내가 초등학생 때 급식 때 나온 귤을 안 먹고 집에 가져가 엄마에게 주었던 생각이 난다. 아무튼, 어느 날엔 지도를 가져왔다.


지도는 어느새 우리 집 온갖 벽을 차지했다. 현관 앞 벽에서 부엌까지 지도는 그렇게 벽들과 하나가 됐다. 덕분에 아이들도 나라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지도는 남편과 닮았다.


결혼 전 남편에게 자기 계발서였는지, 세계여행을 하는 책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책을 준 적이 있다. 그 당시엔 남편이 어떤 표현도 안 했지만 결혼 후 알고 보니 남편은 책 선물을 받고 기분이 안 좋았었던 것 같다. 함께 발전하는 삶을 꿈꾸며 준 책이었는데 남편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남편이 한 달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중고로 책을 여러 권 사 읽더니 이번엔 공부를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수학 기호가 잔뜩 있는 책이었다. 남편은 매일 자기 전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 공부가 언제까지 갈진 모르지만 발전하고픈 욕심이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방문 닫고 열심히 공부하던 남편은 어느새 이불 위에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다.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공부가 너무 어렵다며 뭐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편이 가져온 지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우리에게 그림으로 글자로 이 세상엔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마치 지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으니, 나는 갈 수 없지만 너희는 한번 가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남편도 매일 같은 거리를 오가다 다른 길도 가보자 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보았지만 계속 같은 거리를 맴맴 돌고 있다.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자, 바로 나인가?


며칠 전 한 블로그에서 '48분 기적의 책 쓰기'란 책을 포스팅한 것을 보았다.

출간 작가를 꿈꾸며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깜깜한 밤이 아침이 되길 기다리고 꿈꾸었는데 아직도 밤이었다. 밝은 해를 볼 수 없을까 고민하다 글 쓰는 법을 찾아보았다. 어떤 특별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건가 하고 살짝 보았더니 결국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맞았다.


책에서 저자는 '아무리 완벽한 책 쓰기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고 매일 미루기만 하면 작가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비결은 한 가지밖에 없다. 많이 쓰는 것. 그것도 매일 쓰는 것이다.'


인생을 바꾸는 강력한 도전은 작은 용기와 작은 실천,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엉덩이 붙이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매일 비슷한 하트 숫자에 정체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트 10개 정도만 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나는 전혀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걸까... 하며 낙담했다. 하지만 그래도 하트를 눌러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하트를 눌러 주시는 분들이 품앗이처럼 눌러주시는 것만은 아닐 거라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글쓰기를 한 달 이상 하게 되면 습관이 된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달 이상 쓰고 있으니 계단 하나를 올라선 것과 같다.


글쓰기에도 지도처럼 여러 나라가 있다면, 여행자들이 세계일주를 하며 도장깨기를 하듯이 나도 글쓰기에서 도장깨기를 해야겠다.


지도야 이제 나랑 같이 가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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