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당신이 내게 해줬던 그 말처럼.

by 랄라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 질 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괜찮아_ 한강 (韓江) ハンカン



하나의 기쁨이 올 때

하나의 슬픔도 딸려 오는 것일까.


사는 게 벅차도록 행복했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서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싶을 때가 있다.


새벽(우유) 배달 15년 차.

베테랑 배달원이라 자부할 수 있는 세월이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늘 초보운전자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조심조심 안전운전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하지만 사고라는 것은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예고 없이,

순식간에.



물론 나의 잘못이 클 때도 있고

상대방의 잘못이 클 때도 있다.

그리고 나 혼자 사고를 낼 때도 있고 말이다.


그동안 무사고로 14년을 매일 새벽같이 우유배달을 했던 나에게 시련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작년 6월, 밤새도록 장대비가 내리던 날

그날도 어김없이 배달을 하는데

시야가 흐려진 탓인지

정신줄을 놓은 탓인지

옆에서 달려오던 상대차랑 부딪혀 사고가 나고

나와 긴 세월을 함께했던 배달차는 사고 후에도

새 차를 구입하기 전까지

무려 두 달을 더 달린 후에 우리와 작별했다.




(작년에는 차 사고뿐 아니라

8월 삼복더위에, 지인분의 농원일을 도와드리다가

땡볕에서 열사병에 걸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뻔한 적도 있다. 말로만 듣던 삼재였나보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흐른 11월 말의 어느 날.

겨울 찬바람이 유난히 빨리 찾아왔던 작년,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운전을 하다 보니

솔솔 졸음이 쏟아졌다.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눈 떠 보니 차가 멈춰 있었다.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말로만 듣던 '졸음운전'으로 혼자 남의 집 벽에 처박혀

아찔 했던 순간을 무사히 넘기고 나는 살아남았다.


6월에 사고가 났고 9월에 차를 바꿨는데

바꾼 지 얼마 안 된 새 차가

벽에 처박혀있어서 얼마나 놀랬던지.

사고가 났다는 사실보

바꾼 지 얼마 안 된 새 차인데 또 찌그러뜨리다니.

나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벽 (철사로 된 펜스형식의 오래된 벽이었음.)

덕분에 철사가 타이어에 박혀 펑크가 나면서

차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거기서 멈출 수 있었던 거였다.


달리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졸음운전으로 그냥 앞으로 쭉 가서

다른 차와 부딪히거나 다른 건물에 부딪혔다면

어쩔 뻔했을지. 아찔하다.


그 졸음운전으로 무려 5천만 원을 지급했지만

( 처음엔 집주인이 600만 엔을 청구했다고 한다. 보험 화사에서 540만 엔을 지급했다고.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하자.)

그때도 신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가 살았으니까 됐죠. 엄마 목숨 값 치고는 싼 편이네."


라고 말 할 뿐이었다.



작년 두 번의 자동차 사고를 내고

집에 왔을 때

우리 신랑이 나를 보며


"엄마, 괜찮아요? 아이고... 엄마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내 등을 쓰다듬으며 살포시 안아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지.


당신의

괜찮다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엄마는 어쩌다가 또 사고를 냈어요.

조심 좀 하지.

왜 그랬어요.



가 아니라



그저 "괜찮아요."라는 그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오늘 오후 3시 50분쯤 신랑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미안해요. 차 사고 내서 시간 내로 못 갈 것 같아요."


연로하신 아르바이트생 배달원 한 분이

12월 말에 운전면허를 반납하시기에

신랑이 그분의 배달을 대신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직원분이 배달하던 손님댁을 외워야 해서

차로 코스 연습을 하러 나갔다가

오후 늦은 햇살이 눈부셔

일시정지를 못 보고 앞으로 나갔다가

옆에서 직진해 오던 차랑 부딪힌 모양이다.


저녁 7시에 근처 사는 한국언니들과 망년회가 약속되어 있었는데 일단 그 약속부터 취소했다.

당신이 미안하다고 했지만

지금 그게 대수랴.


당신이 크게 안 다치고 무사한 게 다행이지.


상대방 차는 신랑차랑 뒤꽁무니를 부딪혀서

전복되었다고 하는데

다행히 상대방 운전자도 크게 다치진 않으신 모양이다.

경찰. 구급차가 와서 처리하고

아버님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애들 아빠가 집에 오면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지만

나는 그저

"아빠, 괜찮아요..."

이 한마디만 해 주려한다.


그리고 당신을 꼭 안아줘야.

당신이 그때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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