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모과차 한잔 잡수셔요.
이젠 살다 살다 내가 모과청을 다 만들어 보네.
사카모토 선생님이 주신 모과 다섯 알.
더 많이 가져가라고 하시는 걸
다섯 개만 가지고 왔다.
반질반질 샛노랗게 윤기 나는 고운 모과가
향은 또 얼마나 좋은지.
껍질은 씻은 후 벗겨낸다.
반으로 갈라서 씨앗을 제거한 뒤 감자 채칼로 채 썬다.
같은 양의 설탕에 버무려 잘 섞어준 뒤
소독한 병에 담았다.
일주일정도 상온에서 숙성 후 냉장보관 한 뒤,
목이 칼칼하거나 감기기운이 있거나 잔기침이 올라올 때
혹은 그저 아무 날도 아닌 날,
홀로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나만을 위해 물을 끓이고
향긋한 오후를 만끽하고 싶을 때.
모과청을 한 숟가락 푹 떠서 뜨거운 물에 타 마시면 그만일 것이다.
나의 첫 모과청은 완성되었지만 아직 주인을 찾아가진 못했다.
모과 한 알을 깎고 채 써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선명해지는 기억 하나.
내가 살던 고향 집에는 큰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지.
어릴 땐 왜 모과 향이 그토록 싫었던 걸까?
시큼한 모과.
그런데 우리 아부지가 어느 날
설탕에 얇게 저민 모과를 내 입에 넣어 주셨지.
(아부지는 기억하시려나)
그 시큼한 향과 떫떠름한 맛.
여지껏 먹어보지 못한 아주 독특하고 인상 깊은 맛이었지.
다섯 살 꼬맹이에게 모과절임은 너무 강렬한 맛이어서
그 후론 모과를 보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왔었고
더 이상 모과를 입에 대지 않았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더 살아야
진한 모과향을 맡으면
나는 어김없이 다섯 살 꼬맹이가 되어
고향집 나무 마루에 걸터앉아 있고
그런 나에게
작고 얇게 썬 모과를 입에 넣어 주시면서
"먹어 봐야, 우리 막둥이 얼른 이거 먹어 보랑께.
모과가 몸에 겁나 좋단다이."
라고 하시던
아빠의 정직하고도 뭉툭한 손,
따스한 눈빛과 사근한 얼굴.
그리고 그 작던 모과 한 조각이 되살아 난다.
그 뒤로 나는 모과를 즐겨 먹진 않았지만
가을이면 어김없이 모과들이 땅에 뒹굴어
한 알 쯤은 현관에, 한 알 쯤은 차에 두고 방향제로 삼았다.
일본에 와서도
모과는 집집마다 많이 심어져 있는 흔한 과실수여서
때로는 어느 다정한 집주인이
상자에 모과를 가득 담아 담벼락 밑에 내어 두고
"필요한 분들은 마음껏 가져가세요."
메시지를 적어 두기도 한다.
사카모토 선생님이 주신 모과 다섯 알.
샛노랗게 어여쁜 모과열매를 한참 동안 눈으로 보고
향기도 맡고.
그중에 하나를 깨끗이 씻어 모과청을 담갔다.
모과청이 기관지에 그렇게 좋다는데.
겨울이면 잔기침을 자주 하시는 우리아부지.
내가 만든 모과청 좀 갖다 드릴까 보다.
겨울 들녘에서 실컷 뛰어놀아야 할 어린 딸에게
아빠가 줄 수 있는 특별 보양식은
감기예방을 돕는 쌉싸름한 모과였을테다.
쌉싸름하기도 하고 떫떠름하기도 했던 모과가
혀에 닿았을 때
입안에 고르게 퍼지던 은은하고도 달콤한 향.
그것은 어쩌면
뭐든 좋은 건 자식에게 다 주시고자 하셨던
아부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부지같이 살다 보면 내 인생에도 모과향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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