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문은 졸업 이후 드문드문 글을 쓰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쓰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최근의 이유로는 김을 만난 까닭이 있었다. 핑계야 댈 것이 많았지만 세상을 알아갈수록 쓰는 것이 더 신중하고 지지부진해졌다고 해야 할까. 문은 김과 집회가 있는 거리에서 몇 번 마주쳤다가 본격적으로 토론을 하며 가까워졌다. 사람들 얼굴이나 이름을 유심히 기억해 두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이름과 얼굴을 조합하는 것이 어려운 문에게 토른은 김의 존재가 부각되는 계기였다.
김은 신문을 팔고 있었다. 그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단체 회원이었다. 문은 탄핵 표결을 확인하러 나온 사람들 속에서 그가 팔고 있는 신문을 받아 들고 그 사실을 알았다. <윤석열의 선전포코에 분노가 더 커지다>. 다양한 색깔의 야광봉이 흔들려 여러 개의 반호를 이루고 있는 사진이 표지를 장식했다.
"이 신문은 좌파적 독립언론으로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싣는 신문이에요."
김은 천 원을 내고 신문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문은 선뜻 구매하고 자리를 잡으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탄핵 구호를 외치고 개사한 노래들을 함께 부르고 있었다.
"춥지 않으세요?"
롱패딩을 한쪽에 벗어두고 외치는 김의 모습에 문이 물었다.
"몸에 열이 많아서요."
지나는 사람들에게 신문을 권하는 그의 목소리에 열기가 묻어 있었다. 입김이 또렷하고 풍성했다. 김은 크게 외치기 위해 목만큼은 목도리로 단단히 싸매고 있었다. 그는 패딩 주머니를 뒤져 핫팩을 꺼냈다.
"추우시면 이거 가지고 가세요."
문은 후끈한 핫팩을 감사히 받아 들었다. 신문을 가방에 집어넣고 앉은 대열로 향했다. 딱히 준비해 간 것이 없어 맨바닥에 가방을 깔고 앉았다. 뒤쪽에서 누군가 건너 건너왔다며 접이식 방석을 건네주었다. 합류하기 위해 물밀 듯이 들어오는 사람들의 대열은 여의도공원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모두 긴장하며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그날은 문의 생일 이틀 뒤였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방방 뛰었다. 문은 빌린 접이식 방석을 되돌려 주기 위해 잘 접었으나 누구로부터 전해온 것인지 몰라 손에 든 채 두리번거렸다. 그는 이 연결의 장에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손에 쥔 방석을 쥐락펴락하며 광장을 빠져나갔다.
문은 몇 개월 더 서울에서 일할 생각이었는데 겨울이 가기 전에 이사를 결정했다. 이제 내려와서 지내는 거 어떠니. 문이 서울살이를 고집했던 건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었다. 거창한 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파트타임을 전전하며 용돈벌이를 할 심산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프랜차이즈 카페, 아이스크림집, 레스토랑, 빵집에서 일을 했고 육아를 돕는 일도 했다. 보호자가 한 아이를 씻기고 있을 때 나머지 아이를 돌보거나 식사를 돕고 설거지를 했다. 문은 그때 아이를 씻기고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는 삶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씻고 나와 좋은 냄새가 나는 아이들은 젖병을 빨다가 잠에 들었다. 평화가 그 집에 있었다. 커다란 TV화면에서 헤엄치는 고래들과 거북이, 내려앉는 아기의 속눈썹 같은 평화가.
엄마는 그것을 깨진 독에 물 붓기라고 했지만 문은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끝나지 않는 무언가와 맞서는 느낌이었다. 결혼도 직장도 문에겐 불가능이었다. 문이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런 세계에서 문을 구해주는 이들이었다. 재테크와 투자와 직장인의 세계에서. 문은 누군가 산에 버린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고 퀴어축제에 참여하고 여성과 장애인과 동물의 권리를 외쳤다.
시간이 지나며 그 세계 또한 안전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하나 둘 다른 나라로 돈을 벌러 가거나 공부를 하러 갔다. 다른 친구들은 직장을 구해 일을 했고 아주 드물게 결혼 예정 중인 친구들도 있었다. 문은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연대를 하려면 삶이 있어야 했다. 그러다 윤석열의 계엄이 고민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당장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삶은 쟁취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은 삶'보다 위기 혹은 이변이 없는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
충주의 독립서점에서 문은 김과 재회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서점은 아니었다. 작은 가게 입구는 정원 없이 바로 보도블록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활짝 열린 문 안팎으로 식물이 넘실거렸다. 유리창을 따라 화분이 줄지어 서 있었고 행인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두꺼운 은행나무가 우직하게 서 있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떨어질 터였다.
서점지기는 문을 반갑게 맞이했다. 볕이 잠깐 드는 내부는 음영이 분명하게 나뉘었다. 어두운 자리를 초록 잎들이 꿰차고 있었다. 빈티지 소품과 책들이 자리 없이 놓인 듯해 편하고 정겨운 인상을 풍겼다. 자칫하면 화분이 쏟아질까 문은 가방을 끌어안고 조심조심 걸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더 있었다. 문과 같이 책을 구경하러 온 손님이었다. 문이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을 살펴보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저, 혹시 탄핵 집회에서, 신문…"
문은 어렵게 그를 기억해 냈다. 김의 목소리는 신문을 팔던 때와 달리 알아듣기 어려웠다. 감기에 걸린 듯했다. 여긴 어쩐 일이냐는 김의 물음은 독립서점에 왜 왔는지 묻기보다는 어쩐 일로 충주에 왔는지 묻는 것이 맞을 터였다.
"제 고향이에요."
"저도 여기 살아요. 고향은 아니지만."
김의 힘겨운 목소리에도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그는 매번 참석하진 못 하지만 가능한 집회에 참여하려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이 서점에서 독서토론도 하고 있어요, 김이 덧붙였다.
참여 인원은 적었다. 문이 참석한다면 세 명이 되는 모임이라고 했다. 주 1회 모임, 한 권의 책을 돌아가면서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모임은 김의 퇴근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커피값을 내는 대신 장소 제공 비용 등을 포함해 매주 만 원이 든다. 문은 참석 의사를 밝혔다. 서점지기는 간단한 저녁을 제공하니 저녁 먹을 배를 비워두고 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