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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Aug 11. 2022

0을 향해

나의 장례

   사자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이곳에서의 장례가 따로 치러질 것이다. 나는 이제 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 세계 사람들은 내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나는 잠깐 이런 소식들을 들을 수 있을 뿐 저 세계의 어느 것에도 개입할 수 없다. 죽음 이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한다. 확실히 이곳에서의 시간은 지루하다. 저 세계에서 장례가 치러질 때까지 오랜 날들을 나름대로 잘 보내야 한다.

   내게 아직 온기가 남아있을 때 나는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로 불려갈 수 있었다. 자석처럼 무언가 당기는 힘에 의해 이끌려 갔다. 자유롭지 않아서 좋았다. 푸딩처럼 몸이 쪼개지기도 했다. 동시에 많은 이들이 나를 떠올릴 때마다 그랬다. 나는 희미한 덩어리들로 흩어져 그들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그러면 나는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 하나이자 여러 개인 나는 그들의 어깨 위에 손바닥 위에 무릎 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죽은 생명이기 때문에 온기가 한정돼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차츰 온기를 잃었다. 더 이상 나눠줄 온기가 없어지자 정말로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사자를 기다린다. 사자는 부드럽고 포근포근한 갈기를 가졌다. 여기엔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사자가 있다. 사자는 말을 하지 않지만 나의 말을 잘 알아 듣는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늦어도 다음 해가 뜨기 전에 답이 적힌 쪽지를 갈기 아래 품어 온다. 사자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찾아올 수 있다. 그런 점이 불공평하다. 사자는 나를 기다리는 법이 없고 늘 내가 사자를 기다린다.

   청이가 그랬다. 나를 기다려줬다. 우리는 대학가의 계단에서 마주했다. 그는 겁 없이 내 무릎에 털썩 기대앉았다. 나는 그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의사는 누가 키우다 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캐리어 안이 무서운지 내내 울었는데 그가 맑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청(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더운 날에도 그는 볕 드는 자리를 좋아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워도 청이는 내 품에 파고들어 동그랗게 잠을 잤다. 그는 내 기분을 잘 파악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고의적으로,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어서 더 간편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동물이었다면 나는 그와 함께 살았을까? 그는 나와 함께 살았을까?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 끔찍할 때가 있으니까. 그에겐 새 주인을 고를 권한이 없었다. 우리는 합의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살 수 있었다. 혼자 자지 않으려면 그는 나에게 기대야만 했다. 때로 그는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한참동안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가끔은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으나 끝내 그를 일으킨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장례에 관해서 사자에게 전할 것을 적어놓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나는 동물도 가능하냐고 물어볼 것이다. 영화제나 예술제 같은 시상식에서 이름이 불린 연예인처럼 나는 사랑하는 대상들을 열거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느냐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를 부를 수는 없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해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할 시간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건 그들 중 누군가에게 불공평하다. 덜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에 빗금을 긋는다.

   사자가 쪽지를 가지고 왔다. '저곳에서의 장례가 끝났음.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이곳에서의 장례를 준비할 것.' 사자는 내가 쪽지를 다 읽으면 곧바로 떠난다. 나는 일부러 쪽지를 천천히 읽는다.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만 사자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안 된다고 한다. 이름과 함께 영혼을 가지게 되니까. 나는 종종 영혼 없는 것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혹은 나의 영혼이 그 자리에 없었으면 싶었다. 늘 실패했다. 내가 있는 곳엔 영혼이 존재했다. 오래오래 함께 할 영혼이 옆에 있기도 했다. 오래오래 함께 할 영혼은 바뀌기도 했으나 그 순간엔 유일하다고 믿었다. 사랑을 믿어서 영혼을 부지할 수 있었다.

   장례가 끝나면 길고 긴 시간이 주어진다. 기억을 잊도록 새로운 여행길이 시작된다. 내 이름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어디로도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나를 잊고 내가 나를 잊어서 그냥 영혼으로 불리다가 영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빨리 잊자고 약속할 것이다. 내일은 그들과 헤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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