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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Jul 31. 2022

커다란 단풍나무집

나의 유년

   이사를 했다. 삼촌이 살던 방의 구조와 똑같았다. 삼촌은 할머니 집 마당에 딸린 셋방 중 하나에 살았고 삼촌이 살다가 나간 집으로 우리가 이사했다. 문을 열자마자 현관 겸 주방이 있었고 주방을 사이에 두고 현관문과 병렬로 나무문 하나가 더 있었다. 나무문을 열면 가로로 긴 방이 하나 나왔다. 방 끝까지 걷다 보면 오른쪽에 철문 하나가 있었다. 그 문을 열면 화장실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90도 회전시킨 디귿자 모양의 집이었다.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러지 못하게 했다.



   마당이 있었다. 마당엔 화단이 있고 뒤안엔 텃밭이 있었다. 화단 옆 시멘트로 난 길을 빙 둘러 가면 할머니 집이 나왔다. 삼촌이 셋방에 살았을 때 나는 더 어렸다. 할머니 집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할머니 집에 놀러 오는 사람이었다. 마당엔 삼촌이 데려온 작은 강아지 세 마리가 있었다. 삼촌은 허스키라고 했다. 할머니는 집안에 개를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서 우린 개들을 보러 마당에 자주 나갔다. 탱탱볼을 바닥에 떨어트리면 개들이 튀어 오르는 탱탱볼을 쫓아갔다. 탱탱볼이 대문 쪽으로 튀어가면 나는 개들이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게 뒤쫓아갔다. 우리는 개들을 많이 쓰다듬고 껴안았다. 개들은 다치지 않았지만 한 마리씩 어디론가 사라졌다. 왜 우리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강아지를 보냈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여기가 내 집이니까 마음대로 할 거라고 했다. 후에도 여러 번 마당에 개가 살았다. 그들도 잠깐씩 초록색 개집을 지키다 예고 없이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마당의 개를 끌어안고 쓰다듬지 않았다.



   할머니 집은 계단이 많았다. 비가 오면 마당을 가로지른 물이 계단 옆 물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 대문 밖으로 나가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게 보였다. 낙엽이나 풀 가지가 섞여 있었다. 할머니는 홍수가 나도 이 집은 물에 안 잠길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홍수가 나서 동네 사람들 모두가 계단을 올라오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동네 자체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홍수가 난 적도 없다.

   심부름을 하러 언덕을 내려가면 왼편엔 덕창 마트가 있고 오른편엔 방앗간이 있었다. 그래서 언덕 아래엔 좋은 냄새가 났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덕창 마트에서 두부나 콩나물을 사 갔다. 어른들은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라고 했다. 덕창 마트에 사는 할머니가 불쌍해서 몇 번은 거스름돈을 그냥 두고 온 적이 있다. 할머니는 마트 안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고 있어서 어쩔 때는 크게 불러야만 주인 할머니가 나왔다. 마트는 오랫동안 마트였다가 슈퍼였다가 슈퍼마켓이었다가 찐빵집으로 바뀌었다. 찐빵집으로 바뀌었을 때 주인은 바뀌어 있었고 찐빵 집도 곧 문을 닫았다.

   또 내가 불쌍히 여긴 할머니는 유모차에 박스를 싣고 다니는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보다 더 높은 집에 살았다. 언덕 하나를 더 올라가서 오른편에 나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 집은 아주 낡아서 폐가 같았다. 동생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올라갔다 오기로 했는데 우리는 가위바위보만 하고 그냥 그 집에 가지 않기로 했다. 그것도 누군가의 집이고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나는 할머니 집 마당의 개를 훔쳐다가 박스 할머니께 드리고 싶었다. 할머니는 허리가 너무 굽어서 자기보다 작은 것을 보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우리는 단풍나무에 자주 올라가 놀았다. 옷에 나무껍질 부스러기가 붙어 있곤 했다. 여름엔 매미를 잡았고 기어가는 송충이를 구경했다. 나뭇가지는 대문으로 가는 길까지 길게 뻗어 있었는데 그 밑을 지날 때마저 뛰어가야 했다. 송충이가 떨어져 몸에 붙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바닥을 보고 있으면 하얗고 길쭉한 것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부드러운 털 아래 짙은 문양이 징그러웠다. 내 얼굴엔 점이 많은데 나도 누군가에겐 징그럽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 나무가 지금은 없다. 화단도 없다. 할머니는 이제 무엇을 돌보며 사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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