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이 없다
더러워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이 옷장은 편안하다
나는 그 안에서
밥을 먹고 전화를 하고 글을 쓰고 사랑을 한다
내 몸을 겹겹이 걸어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세탁소 옷이 된다
실제로 이 옷장은
과거를 세탁해주기도 한다
나는 가끔 깨끗하다
건강하라고 하루 한 번 밖에 나간다
개를 산책시키듯
당신은 나를 건강하게 한다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옷장 밖에 나가 본다
옷장에서 잠들면 안 된다
아늑하고 향기롭지만 안에서는 열리지 않고
밖에서는 나만 열 수 있다
당신은 열려있는 옷장도 두드리고 들어온다
비가 내려요
더러워질 자신이 있다
건강한 공기로 몸을 부풀린다
긴 옷이 차츰차츰 젖는다
나는 크고 무거워진다
우리를 비난하는 거리에서
당신을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