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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Apr 06. 2023

옷장에서 잠들지 않기

흰옷이 없다

더러워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이 옷장은 편안하다


나는 그 안에서

밥을 먹고 전화를 하고 글을 쓰고 사랑을 한다

내 몸을 겹겹이 걸어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세탁소 옷이 된다


실제로 이 옷장은

과거를 세탁해주기도 한다

나는 가끔 깨끗하다


건강하라고 하루 한 번 밖에 나간다

개를 산책시키듯

당신은 나를 건강하게 한다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옷장 밖에 나가 본다


옷장에서 잠들면 안 된다

아늑하고 향기롭지만 안에서는 열리지 않고

밖에서는 나만 열 수 있다


당신은 열려있는 옷장도 두드리고 들어온다

비가 내려요


더러워질 자신이 있다

건강한 공기로 몸을 부풀린다

긴 옷이 차츰차츰 젖는다

나는 크고 무거워진다


우리를 비난하는 거리에서

당신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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