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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Jan 23. 2024

요코

욕조가 있는 화장실에 처음 살다

욕조를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지나치다

낯을 가리다

욕조는 거기 있었다

계속

계속

거기 있자

욕조 생각을 그만두었다

들어가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욕조는 따듯해졌다

손은 아직 내 것이고

쭈글쭈글해진 것이 새삼스럽고

욕조를 생각해도 위험하지 않다


그 애와 살던 개 이름이 요코였다

그 애는 요코와 나란히 걷지 않았다

너는 왜 꼭 뒤에서 걷니

넌 사실 요코가 무서운 거지?

그 애는 요코 뒤통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요코는 적당한 속도로 걷다가

한참 흙냄새를 맡다가

그 애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끔찍하고 좋아 보였다

한 발 뒤에 서자

도망치고 싶을 만큼


남들은 못 보는 게 보여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요코 같은 것

찢어발겨진 요코 같은 것


오랜만에 꿈을 꿔도 말할 곳이 없다

무서운 꿈을 꿨어

욕조만 계속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어

그리고 그 자리에 있다


기도보다 먼저 기도를 배신해서

내려지는 가벼운 형벌이라면

악몽은 몇 번이고 더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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