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가 있는 화장실에 처음 살다
욕조를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지나치다
낯을 가리다
욕조는 거기 있었다
계속
계속
거기 있자
욕조 생각을 그만두었다
들어가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욕조는 따듯해졌다
손은 아직 내 것이고
쭈글쭈글해진 것이 새삼스럽고
욕조를 생각해도 위험하지 않다
그 애와 살던 개 이름이 요코였다
그 애는 요코와 나란히 걷지 않았다
너는 왜 꼭 뒤에서 걷니
넌 사실 요코가 무서운 거지?
그 애는 요코 뒤통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요코는 적당한 속도로 걷다가
한참 흙냄새를 맡다가
그 애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끔찍하고 좋아 보였다
한 발 뒤에 서자
도망치고 싶을 만큼
남들은 못 보는 게 보여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요코 같은 것
찢어발겨진 요코 같은 것
오랜만에 꿈을 꿔도 말할 곳이 없다
무서운 꿈을 꿨어
욕조만 계속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 없어
그리고 그 자리에 있다
기도보다 먼저 기도를 배신해서
내려지는 가벼운 형벌이라면
악몽은 몇 번이고 더 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