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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Jul 15. 2024

식목일

어린 나무가 담긴 검은 봉지를 가지고 산에 올랐다

엄마가 트렁크에서 삽자루와 물조리개를 꺼내왔다

산속에서 졸던 것들이 우리 발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뱀이 나올까봐 작은 소리에도 화드득 놀랐는데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동생이 놀라 넘어졌다

엄마는 웃으며 동생을 일으키고

나는 웃으며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줬다


버섯전골을 먹다 그때 그 산은 어찌 됐나 궁금해졌다

버섯의 생김새가 조금 흉측하다고 생각하다가

둥근 삽을 닮았다고 고쳐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나는 서로의 애인을 궁금해 하지 않고

다투지 않기 위해 간신히

오래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줄을 당기면 켜지는 형광등처럼

이 얘길 하면 꼭 따라붙는 얘기가 있고

환해진다


그 산은 어떻게 됐어?

팔았지

언제?

한참 됐어


많은 것을 알 필요 없다는 듯

식목일은 이제 공휴일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됐구나 하는 것들이


팔린 산의 나무들은 어찌 되나

우리가 심은 매실나무에 물은 누가 줬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으면 거기 없는 것처럼

말이 금방 길을 잃는 것처럼

나무들은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래도 잘 자라지 못한 것 같아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부당해져서

팽이버섯 뭉텅이를 아작아작 씹어 삼켰다


출입문 앞에 놓인

새하얀 박하사탕 더미는

설탕처럼 빛나고 있다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알 수 없는 날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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