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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한 사각형

24.11.28.

by 조연지

나의 고양이가 아프다. 여느 때처럼 그는 내 주위를 맴돌며 울다가 책상 위로 뛰어 올랐다. 어쩐 일인지 엉덩이 부근의 털이 젖어 있어 휴지로 닦아내려 했다. 그는 피하는 듯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닦아내야겠다는 집념으로 그를 쫓아갔고 그의 꼬리를 평소보다 세게 쥐고 엉덩이를 들여다 보았다. 크고 둥글게 곪아 있는 주머니가 보였다.

이동장을 꺼내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하니까 그를 이동장에 먼저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처음 만나던 날부터 이동장을 싫어했다. 끌어안아 올리기도 힘든 독립적인 고양이다. 침대 아래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불과 인형, 모래화장실로 막아 두었는데도 그는 이불을 들춰내고 아래로 기어 들어가 있었다. 간식으로 그를 달래며 밖으로 나와주길 기다렸다.


이동장 옆에서 우리는 간식으로 이어져 있었다. 검은 동공을 커다랗게 키운 그가 잔뜩 긴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야금야금 간식을 먹다가 이동장의 냄새를 맡고 바깥 기억을 되살린 것인지 나의 불안이 전해진 것인지 그가 잽싸게 침대 방으로 도망쳐 다시 침대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꼬리를 잡아보았지만 아플까봐 세게 잡을 수 없었다. 그가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화가 났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그가 있었다. 내 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울고 있었다. 나를 피해서 운다. 나는 나무로 된 침대 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조금 더 화가 났다면 침대 틀이 망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난폭한 내 모습이 싫어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체하면 둘 다 체력이 소진될 것이었다.

벽과 침대 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느 그의 불룩한 등이 보였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등을 만졌다. 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그가 더 멀어지기 전에 이동장을 가지고 와 억지로 잡아당겨 넣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벽 사이로 이동장을 끼워 넣고 침대 아래 웅크려있는 그를 끌어당겼다. 그가 빠져나갔다. 나는 매트리스를 들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침대 틀을 다른 방식으로 배치해 놓고 매트리스 아래쪽을 들어 올렸다. 무거운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아웅아웅 크게 울었다. 지붕이 사라진 그는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내가 벽 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매트리스 위로 올라갔다. 그는 겁에 질려 도망칠 때면 오줌을 눈다. 고름 냄새 같은 것이 함께 풍겼다. 그가 앞발로 매트리스 틈새를 파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와, 청아, 나와, 말하며 매트리스를 점점 더 벽으로 붙였다. 벽에 세워둘 참이었다. 각도가 심하게 기울자 그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는 닫힌 창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창에 몸을 부딪혔다. 그가 처절하게 도망치는 모습을 보자 화가 누그러졌다. 아파서 그만두고 싶었다.

매트리스 아래 구조물 두 개를 마저 세워놓는 동안 그는 바닥에 뭉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희고 두터운 겨울 솜이불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였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아까보다 작게 울고 있었다. 나는 더 해볼 힘이 없었다. 그를 이동장에 넣기를 포기하고 이불 귀퉁이를 모아 쥐고 이불가방에 그대로 넣었다. 한쪽 면과 손잡이는 부직포로 되어 있어 안정적이었다. 그가 숨 쉴 구멍을 내어주려 지퍼를 열어두고, 혹시 몰라 위에서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게 이불을 벌려 두었다. 그는 겁에 질려 위를 잘 올려다보지 않았으므로 가끔씩 그를 만지거나 이름을 불러 깨어있다는 걸 확인해야 했다.


이동장에 담겨 이동할 때보다 이불가방 속에서 더 작게 울었다.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죄책감을 줄일 수 있었다. 이불가방을 조수석에 넣고 운전석에 올랐다. 찾아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굵은 눈발이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리숙한 내가 데리고 온 청이까지만 하고 싶었다.


의사에게 찍어둔 환부 사진을 먼저 보여줬다. 항문낭 때문에 왔고 정확히는 모른다고 말했다. 의사는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일단 고양이를 꺼내 저울 위에 올리라고 말했다.

청이는 겁에 질리면 웅크리기만 한다. 이때엔 안아 올려도 저항하지 않는다. 두려움에 잡아먹힌 그가 오줌을 지린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가 담긴 따듯한 이불 속에 손을 넣어 그의 양 옆구리를 잡아 올렸다. 안 그래도 커다란 그의 몸이 길게 늘어났다. 무게가 많이 나가 수술은 어렵다고 했다.

청이를 치료실로 들여 보내고 눈에 눈물이 고인 걸 느꼈다.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을 자주 했는데 눈물은 그런 식으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슬퍼서 운 것보다 화가 나서 운 적이 더 많았다. 나는 내게 사랑이 없을까봐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내내 긴장하고 놀란 것이 뒤섞여 고여 있었다.

의사가 치료실 밖으로 나와 청이는 치료를 잘 받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항문낭 안에 들어있던 딱딱한 덩어리 세 개를 보여주며 다 꺼냈으니 환부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을 거라고 했다. 절대로 핥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넥카라를 한 청이가 다시 희고 두툼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이불가방을 들고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약봉투를 받고 계산을 했다.

그를 차에 넣었다. 눈이 내리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계속 울었다. 그가 좋아하는 발매트 위에서 꼼짝 않고 울었다. 나는 세탁기에 이불을 넣고 침대 방에 흩날리는 털뭉치들을 쓸어 담았다. 방과 거실을 한껏 쓸고 청이가 흘린 오줌을 닦아냈다. 일주일 뒤 같은 일을 똑같이 할 자신이 없어 매트리스를 그냥 세워두기로 했다. 침대 틀만 원래 자리로 옮겼다. 혼자서는 한 번에 옮길 수 없는 것이라 아까처럼 네 귀퉁이를 번갈아 왔다갔다 하며 제자리로 옮겼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그가 현관 앞에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마자 이런저런 말을 하며 내게로 다가왔다. 다른 날과 같이 가방을 내려두고 외출복을 세탁기에 넣거나 옷걸이에 걸어두고 화장실 앞에 쪼그려 앉아 그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넥카라가 자꾸 걸려 그의 방식대로 내게 부비지 못했다. 금세 고롱거리는 숨소리를 흘렸고 종일 내게서 도망치던 그가 어떻게 다시 내게로 다가올 수 있는지 신비했다.

침대 틀 안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그는 내 옆으로 와 가까이서 잠을 청했다.

내가 누운 높이보다 사각형의 틀 높이가 더 높았는데 꼭 관에 누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게 사랑과 죽음이 뒤섞인 털뭉치이다. 우리를 둘러싼 우묵한 사각형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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