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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기 위하여

선암사에서

by 조연지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자주 제풀에 꺾이는 나를 견뎌주는 이. 나는 사랑에 자신이 없었는데 그는 내게서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사실 평생 친구들과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친구는 더없이 완벽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 관계. 드문드문 사랑을 느끼며 잘 지냄을 공유하는 것으로 삶을 채우고 싶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나라서 연인을 대하기가 어렵다. 특히 나를 다루는 것이 어려운데 연인에 대해 어렴풋한 정의를 세워두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래야 할 것 따위는 없다. 사랑받을 자격 또한 그렇다. 이를 알지만 사회에서 나를 정의해 온 방식으로 연애 안에서도 나를 비슷하게 정의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는 스스로를 비난하게 만든다. 10대, 20대, 30대… 시기별로 정해진 성과들이 있다. 누군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이르거나 늦었다고 감각하는 기준인 것이다. 최근엔 이런 것들이 많이 흐려지고 있다지만 내 안에 공고히 자리하고 있는 기준들에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할 때가 많다.

그런 생각에 빠지다 보면…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내가 지금 태평하게 연애를 하는 게 맞아?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거래적인 마음으로, 내가 이것을 택한 대신 잃는 게 더 많으면 어쩌지? 하면서. 이것은 사랑에 무례한 태도다.

또 어떤 생각이 드냐면 내가 연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사람이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사람에 대해서도 그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연인이라는 관계는 상대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자꾸만 소유욕을 자극한다. 물건은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은 움직이니까 그렇다. 불안해지는 내 모습이 거슬려 주춤한다. 나는 왜 안정을 경험하지 못해서 이렇게 관계를 어렵게 만들지? 하며 과거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 오래 머무르면 안 된다. 다가오는 건 미래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하기에 달려있기 때문에.


IMG_2913.HEIC 젖은 발을 말려주는 것들

순천에 다녀왔다. 처음 가는 도시였다. 많이 걷고 누리고 기도하며 지속할 힘을 구했다. 무엇이든 내가 지속하고 싶은 것들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랐다.

선암사에서 겹벚꽃을 보았다. 겹벚꽃이 지는 무렵이었는데도 그걸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겹벚꽃을 보고 있으면 수줍음과 화려함이 공존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숨기려 해도 보이는 아름다움 같은 것.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리가 부족한 주차장에 차를 대는 것 말고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나무 그늘을 걷고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길엔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N이 부채를 갖고 싶어 했는데 나 때문에 못 산 것 같아서 부채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물질이든 연락이든 마음대로 전할 수 없을 때 나 자신이 굉장히 싫어지지만 언젠가 내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왜인지 순천은 다른 나라 같기도 해서 멀지만 종종 오고 싶단 생각을 했다. 물과 나무 거리가 깨끗하고 고요했다. 역사의 순간이 이곳저곳 잘 보존되어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레 섞인 도시였다. 현재가 과거에 흘러든 느낌이 든다. 걷다가 들어가 보고 싶은 바이닐펍을 발견했는데 문이 닫혀서 구경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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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지 않음을 알되 지속할 수 있기를


한때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지금은 닮고 싶기도 한 것 같다. 무언가에 곧잘 열성적이고 지향적이고 맹목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내 모습과 달리 친구는 딱히 그런 게 없어 보여서 무슨 재미로 사는지 궁금했다. 혹은 그를 안쓰럽게 여기며 내 삶이 더 나은 삶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게 그런 연습이 부족했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다. 원대한 목표가 없어도 정해둔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 행복해도 된다는 걸 연습하는 중이다.

사실 그 친구를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사회의 눈치를 봐 가면서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있었겠지. 가장 가까이서 사랑을 체감하는 관계 때문에 사람과 나, 사랑을 재정의하는 중이다. 삶의 방향이란 정하기 나름이고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즐기면 된다. 의무와 자유 사이에서 힘껏 즐거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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