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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01. 2023

3/24 금: 그래도 한번 더

네 삶의 색을 알아갈 수 있는, 대화를

첫 수업부터 고개를 푹 숙이더니, 급기야 아예 엎드려서 자는 아이가 있었다. 보통 1학년의 경우 과하게 활발해서 수업 시간에 떠드는 것이 문제지, 엎드려 자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유난히 눈에 띄는 그 아이는 10여 년 동안 가르치면서 처음 만나본 유형이었다.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있으면 되니, 일어나야지,라는 짐짓 잔소리 같은 말에 구시렁거리듯 입을 움직이며, 마스크 속에서 왠지 들으면 안 될 말을 중얼거리는 듯했다. 겨우겨우 일으킨 몸은 다시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는 첫날부터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었다. 나는, 수업이 힘들어요, 그게 누구든, 어떤 과목이든. 하고.


“너! 거기 뭐 하는 거야?”

한 바탕 큰 소리를 내어 일으켜 세울까, 아니면 조용히 다가가 책상에 노크를 해볼까, 그도 아니면 그냥 없는 셈, 못 본 셈 치고 넘어갈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돌고 돌았다. 아직 제대로 그 아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센 척 윽박질렀다가는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 어떤 래포도 없는 내가 과하게 잔소리를 했다가 벌어질 일이 괜스레 두려웠다. 맨 앞에 앉은,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볼 수밖에 없는 녀석을 깨우지도, 그렇다고 쿨(?)하게 무시하지도 못한 채, 수업을 마무리했다. “선생님, 쟨 왜 자요?”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종이 치자마자 부리나케 짐을 싸서 교실을 나왔다. 경력이 쌓여도 수업은, 그리고 교실은 어렵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전히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수업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오늘은 학습지를 풀 거야.”라고 종이를 나눠 주는 손끝을 보며 한숨을 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넌 왜 맨날 수업 시간에 자? “라고 핀잔을 주어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녀석은 내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책상에 엎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순간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국어선생님은 애 하나 제대로 지도도 하지 못하고, 맨날 자도 뭐라고 안 해. 국어 수업은 자도 돼.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어떤 행동이든 해야만 했다. 그래야, 이제 1학년이 된, 그래서 앞으로 적어도 1년은 함께할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랑 잠시 교무실에서 이야기 좀 하자.”

슬쩍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경계심을 갖고 오지 않으려고 뻗댈까 염려되어 최대한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너에게 무해한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담아. 사실 한 달 동안 수업 시간에 계속 자는 학생을 지금처럼 계속 가만히 두고 보는 것은 아니란 생각도 생각이지만 그 아이 하나 때문에 그 반 수업을 하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일단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왜, 수업이 시작하면 엎드리는지, 국어가 힘든지, 다른 과목도 그런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쉬는 시간의 교무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어수선했다. 너는 왜 오늘도 지각을 했니, 집이 5분도 안 걸리지 않니, 아 선생님, 제가 오늘 오다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2번이나 걸렸어요! 됐고, 청소 당번이다, 라며 각자의 말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은 하소연이었다가, 잔소리였다가, 푸념이었다가, 진심 어린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다. 숨 막힐 듯이 조용한 분위기라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란히 마주 본 나는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교사라는 것도 다 내려놓고 정말 진심으로 궁금했고, 알고 싶었으니까.


망설이던 녀석은 조심스럽게, 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때문에 지금도 수업 시간에 학습지 같은 것만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자신이 왜 자꾸 엎드리게 되는지를.


녀석이 안쓰러웠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랬다면 참, 네가 힘들었겠다, 많이 지치기도 했겠다, 그러니 공부하는 게 참 괴로운 순간이었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공부였다. 말과 글을 함께 배우며 느꼈을 압박감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고사리, 아니 고사리보다도 더 작은 손으로 연필을 잡고 무언가를 적어야만 했던 녀석은, 진짜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공부가 싫어져 버렸다. 과한 스트레스는 마음을 짓눌렀고, 짓눌린 마음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해결되지 않아 멍든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자란 아이는 시간이 흘러 열네 살이 되었고 내 앞에 나타났다.


고마웠다. 내가 뭐라고 만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제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는 게 어디 쉬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남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10분도 되지 않은 그 대화가 진심으로 고마웠던 것이다. 마음을 열어 보여주니 답을 해야 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 주어진 학습지는 다 채워야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꼭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런 말을 뱉는 순간 분명 열린 마음이 더 굳게 닫힐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고맙다. 선생님한테 네 이야기를 해줘서.

네가 이야기한 덕분에 그동안의 네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어. 참 고맙고 좋다. 네가 선생님 마음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정말 고마워.

네 이야기를 듣기를 잘했다. 그래, 그랬구나. 네가 어린 시절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따위의 말을 두서없이 내뱉었다. 정말 솔직한 마음을 담아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그래서 너를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전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여러 번 반복하기까지 했다. 진심이었다. 대화를 하기 전엔 전혀 몰랐던 녀석의 삶이 드디어 눈에 그려졌다. 수업 시간에 엎어지고, 학습지를 빈칸으로 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까짓 거 공부, 조금 늦게 시작하면 어떠냐, 그전에 마음부터 돌보는 게 맞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녀석에게는 당장의 공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선생님도, 너를 도와주고 싶어.

아니, 기다려 볼게. 네가 힘들면, 학습지의 절반, 아니 그 절반의 반도 안 채워도 돼. 대신에 포기만 하지 말자.

그러면 선생님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릴게. 그래 볼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이 남았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녀석을 보냈다. 자리에 앉아 깜빡이는 메신저 창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한참 동안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내 말이, 그 안의 내 진심이 얼마나 그 녀석의 마음에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요새 아이들이 되바라지고, 힘들고, 개념도 없고, 지치게 하고, 예의가 없다고 세상 모두가 떠들어도 어쨌거나 그들을 매일 같이 만나는 우리는 그래도 한 번 더 용기 내어 다가서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서 사실 어떤 날엔 다 포기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한 발 더 내밀어 대화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노력 자체로 조금은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안다. 사실, 교사의 하루는 숨 쉴 틈 없이 바쁘고, 정신없으며,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시간조차 없다는 것을. 행정업무에, 수업준비에 상담에 너무나도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한 행동의 결과가 때로는 와전되어 자신의 발목을 잡아 괴롭히는 경험도 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좋으면서도 지치고, 행복하면서도 괴롭다는 것을. 아니 사실 요새는, 다들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나의 한 발자국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변화할 수 있는 1%의 가능성이라도 줄 수 있다면, 먼저 내밀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매일 만나는 고객은 아직 성장할 가능성이, 변화할 가능성이 정말 무한한 존재이므로. 그 아이가 내 앞에 가지고 온 제 삶의 색이 어떠한지, 한 번 정도는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씩 털어놓는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어주며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고생했네. “라며 또 다른 삶의 색을 더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힘들어도 지쳐도 말이다. 사실은 총알하나 없는 전쟁터에 매일 같이 나가야만 하는 스스로를 위해서.




그날 이후,

매일 엎드리던 녀석과 내 사이에 드라마 <학교> 같은 변화는 사실 없다.

녀석은 여전히 수업 시간에 곧잘 엎드리고, 딴청을 하거나, 힘들어한다. 그러면 나는 “이제 일어나서 수업 들어볼까?” 따위의 말을 건네곤 한다. 그래도 다시 엎어질 때도 종종 있다.

다만, 확실히 달라진 것은 복도에서 나와 마주치면 전보다는 좀 밝게 인사를 하고 수업 시간에 어쨌든 연필을 들고 학습지에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 덕분에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그 반 수업을 들어가는 게 전처럼 힘들지 않다.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기다림엔 어떤 이유도 없으니까.

그러면 언젠간 아주 조금의 변화가 생길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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