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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30. 2023

시 하나에 사랑과

짬을 내어 써보는 학교 이야기 

절정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의 가장 슬픈 곳에서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서

세상의 가장 어둔 곳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때


꽃은 핍니다.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점심시간이 끝났다. 5교시가 시작되었다. 운동장에서, 교실에서, 벤치에서 놀던 아이들은 각자의 반으로 돌아가고 묘하게 신비로운 정적만이 감 싸도는 지금, 짬을 내어 글을 쓴다.


수행평가를 채점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글을 한참 읽다가 책꽂이에 꽂힌 시집을 우연히 펼쳤다. 열심히 글을 쓴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글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뭐라고, 국어가 뭐라고, 수행평가가 뭐라고 어찌 되었든 주어진 종이에 뭐라도 끄적이는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에서다. 


어떤 시가 좋을까 고르던 중, 눈에 딱 들어온 시가 바로 <절정>이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은 데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내가 원하는 것과 같았다. 


학습지로 옮겨 내 마음을 담은 편지와 함께 아이들에게 전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그전에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속내를 적어본다.


작년에도 했던 글쓰기 수업이지만 이 수업은 할 때마다 아이들의 날 것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아 참, 좋다. 1학년 아이들이 천둥벌거숭이라 예의도 모르고, 시험이 없어서 수업에 긴장감도 없어 힘든 것은 있지만 그래도 평가가 많이 자유로워서 아이들이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도 있고 그 글을 철저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아도 되며, 과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어서 좋다. 사실 1학년이 개인적으로 제일 기피학년이었는데 요새는 1학년이 제일 편하고 좋다. 지필 평가가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모두 좋은 것은 분명하다.


여섯 개의 반, 110명의 아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아이들이 살아온 삶이 짠해서, 기특해서, 안쓰러워서, 대견해서 몰입하게 된다. 아이들의 글을 모두 읽고, 도장 대신 진심을 담은 피드백을 적어주는 것은 솔직히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하고 난 후에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류(일종의 마음을 나누었다는 느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열이다. 


오늘은 5반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글쓰기가 너무 재밌다고, 이렇게 쓰니 후련하기까지 하다고 말해주었다. 활발한 아이들이 많은 6반에서는 쉬는 시간 종이 (심지어 점심시간 종이 었는데도) 치는 줄도 모르고 글을 쓰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글쓰기의 힘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그래서 난, 글쓰기가 참 좋다.


이 마음 잊지 않고 얼른 다음 반의 글을 읽어봐야지.

그리고 글씨체, 맞춤법, 그리고 띄어쓰기에 집착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아이들의 삶을 오롯이 느껴봐야지.

그러고 나서, 수업에 들어가면 꼭 말해 줘야지. 



괜찮아, 잘하고 있어. 

네 이야기를 들려줘서 참, 고마워. 



사진: Unsplash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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