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수 없는, 아니 담을 수 있는
1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교 1학년,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 때 우연한 기회로 친해진 친구들로 어느 하나 비슷한 구석 없어 보이지만 어느 하나 특출 나게 다른 점도 없어서 오래오래 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코로나로 만나기 힘들 때에는 온라인으로 만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예민하고 걱정 많은 나를 깊이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랄까.
각설하고, 만났다. 1년 만에. 나는 중간에 가족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그러면서 사실 약간의 무기력도 와서 모임에 나가지 못했는데 친구들은 그 와중에도 틈틈이 종종 만나 소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행여나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주 어릴 때 만났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그런 생각이 들 틈조차 없었다. 하긴, 중, 고, 대학교를 지나 연애, 결혼, 출산, 육아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니 그럴 리가.
만남의 장소는 광화문. 광화문은 진짜 예전에 학생 기자활동 할 때에도 현 남편과 연애할 때에도 정말 자주 갔던 곳인데 거의 6년 만에 가는 기분이 새로웠다. 아직도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D-타워의 아웃백에서 미리 예약해 둔 자리에 앉아 그간 쌓여있는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바빴다.
우리 20대 때에는 돈 없어서 2인 1 음료 시키던 것을 이제는 1인 1 음료 시킬 수 있다며 깔깔거리고,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메뉴를 부득불 시키면서 맛있다고 호들갑 떨고, 부시맨 브레드를 겨우 한 번 밖에 리필하지 못함에 슬퍼하며, 역시 아웃백은 투움바 파스타지, 라며 손뼉 치다가 주문을 받아주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다 그 옛날 피자헛에서 일하던 스스로를 회상하다 보니 시간이 두 시간이나 훌쩍, 흘러버렸다.
5월의 햇살과 바람은 너무나도 좋은 것이어서 이제는 애기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버린 우리를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열네 살로 데려다 주기에 충분했다. 힙한 카페를 찾겠다며 무작정 지도를 켠 채 광화문에서 인사동을 지나 익선동을 거쳐 종로 3가까지 걸어가는 우리는 마흔을 지척에 앞둔 유부녀가 아니라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깔깔거리고 300원짜리 컵 떡볶이 하나에 자지러지던 여중생이었다. 분명 그러했다.
물론 열심히 걸어 찾아간 익선동의 한 카페는 만석이어서 들어가지 못했고 그 옆에 있는, 아니 그 옆에 옆에 있는 카페들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서 한 곳도 발을 들일 수 없었지만 돌아 나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인생 네 컷 사진관(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나?)에서 우리는 흘러가는 것이 아까운 '순간'을 담기로 했다.
엄청 큰 리본 머리띠를 색색깔로 나누어 쓰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찰칵, 찰칵.
요새는 사진에 있는 QR 코드를 찍으면 사진 파일과 영상도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친구들 말에 세상 참 좋아졌다 말하니 너 그런 말 하면 나이 든 거래,라고 말하는데 할 말 없었다. 하긴, 나 학교에서 애들이 아는 말의 절반도 이제 못 알아듣지.
사진 한 장씩 손에 들고 한참을 걷고 걷다 결국 야야, 힙한 데는 봤으니 충분해, 우리 그냥 대형 프랜차이즈 가자,라는 말에 선택한 스타벅스 3층에 빈자리 겨우 맡아서 음료를 시키고 그렇게 또 2시간을 보냈다. 사실 막상 들어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가만 들어보면 서로의 자기 이야기하기 바쁜 그런 어수선함 속에 묘한 편안함이 신기하다.
어느덧 네 시.
이제는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열두 시의 신데렐라처럼 헤어지면 다시 평범한 각자로 돌아가겠지만
네 컷에 담긴 오늘은 기억하며 아마 얼마간은 평온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