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 생각해 봐.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 무척이나 모범생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고 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그런 답답하면서도 고지식한 사람이 바로 나다. '메모광'이라는 수필을 아시는지? 수필 속 '메모광'처럼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요새 중학생들의 천진난만한 산만함을 견딜 수가 있나.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중 하나는 필기구. 연필 한 자루 제대로 들고 다니지도 않고 볼펜은 늘 심이 분리되어 있고 필통엔 다 뭉그러진 컴싸(컴퓨터용 수성사인펜)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갔다. 수업 진행을 위해 연필 열 자루를 직접 깎아 대령(?)하긴 했지만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좋을 수 없지. 이해가 안 가는데.
하필이면 지금까지 근무했던 곳도 소위 말하는 '험지'여서 공부를 싫어하거나, 공부할 의욕이 없거나, 혹은 그냥 학교나 교사 자체에 반감이 심한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깊은 밤이 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재즈 음악을 듣는 사람이 학교에서 온갖가지 육두문자를 들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갖가지 이유로 학교 가는 게 싫었던 적이 많고, 실제로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먹고살기 위해 나가는 학교가 너무 지옥 같아질 것 같아 방어책을 스스로 마련한 건지, 아니면 특유의 공감능력이 발휘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 중1 때는 어땠지...?'
생각해 보니 중1 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준 내용을 필기할 때 검은색 볼펜이 아니라 형광펜으로 필기를 한다거나(실제로 지금도 그런 애가 있다. 그게 더 좋다면서... 나도 그랬다.) 시험 전날까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놀았다. 시험? 그게 뭔지도 몰랐고 얼마나 중요한지 관심도 없었다.
수업 시간의 내용? 하~~~ 나도 기억 안 난다. 그냥 앞자리 친구, 옆 짝꿍이랑 같이 도시락 나눠 먹으면서 깔깔거리던 거. 도서관 가서 장난친 거. 쉬는 시간에 복도 뛰어다니면서 논 거. 그런 것만 기억이 난다. 모범생으로 살았던 나도 중1 때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논 기억 밖에 없는데 하물며 공부에 아예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거기다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볼거리, 발로란트, 롤 등 놀 거리가 이렇게나 많은 요새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갖는다?
그건 100이면 100 아이들의 욕망이 아니라 어른들의 욕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공부 안 했잖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애들한테 요구만 하고 있네?
마음이 조금씩 열렸던 것 같다.
맞네, 나도 공부 못 했네. 아니하기 싫어했네. 솔직히 지금도 싫어하네. 그런데 애들은 얼마나 싫을까?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우리 시절에도 공부 싫어했는데, 요새는 공부해도 취업 힘들고, 오히려 대기업 간 사람들도 다 그만두고 유튜브 한다는데. 심지어 나도 우리 딸이 교사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데. 더 돈 많이 버는,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일 찾으라고 하고 싶은데.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는 친구들이라면, 학교에 와서 앉아 있는 시간이 너~~~~ 무 아까울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하루에 6시간씩 한 달에 20일.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면?
게다가 종일 앉아있으며 듣는 수업이 재미있긴 하나?
국어, 도덕, 사회, 역사, 정보, 기술가정, 영어... 뭐 하나 할 것 없이 다 어렵고, 재미없지 않았나? 나 학창 시절엔 어땠지? 그때는 졸면 분필 맞던 시절, 졸면 나가서 손 들던 시절이었는데 그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억지로 듣지 않았나?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내용 기억이나 나나?
그런 생각까지 닿자 조금씩 내가 만난 아이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머리로 하는 이해와 마음으로 하는 공감이 조금씩 만나기 시작한 것. 그러다 보니 수업 시간에 졸거나, 딴짓을 하거나, 떠드는 것이 조금씩 받아들여진 것이다. (물론 아직도 나는 수많은 말들로 통제를 하지만^^)
맞다. 나도 공부 못했다.
아니하는 방법도 몰랐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였지 학교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인정하기로 했다. 지금 만나는 아이들, 상황을, 마음을 이해하기로. 받아들이기로.
그러면 어쨌든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서 뭔가를 가르치며 돈을 받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의식 수업을 너무 사랑하는 나이지만(조별 수업, 미션 정말 싫어한다. 보통 무임승차를 많이 당해서) 어쨌든 중학교 시절의 국어 수업이 즐거움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 변하고 싶었다. 딱딱한 정보 대신, 재미있는 활동을 넣자. 중요한 내용을 정리한 요약본 대신, 추리 퀴즈, 모둠 미션을 넣자.
생각을 멈추지 않고 수년간 달리니 뭔가 남는 게 있는 것도 같다.
주변 선생님들과 비슷한 듯 다른 수업이 쌓이고 쌓여 13년이 되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닿았는지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국어선생님 수업이 제일 재밌다."라고 말해주며, "국어 시간엔 이렇게 조용한 거다."라고 치켜세워준다. 특별히 수업을 잘하는 건 아니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한 마음이 닿았다고 본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나의 수업에 대한 갖가지 소소하고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팁이다. 부디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오늘의 한 줄 요약: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 사실 우리도 다 그 시절 보냈잖습니까. 다그치지 마시고 조금만 이해해 보세요. 역지사지! 이해해 준다는 느낌이 들면, 아이들도 마음이 열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