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차 중딩쌤이 바라본 요즘 (09부터 11까지) 아이들의 특징
첫 제자 98년생을 지나 현재 2011년생을 가르치기까지 13년이 흘렀다.
야속하게 흐른 세월만큼, 아이들도 정말 많이 변했다. 99년생들이 "00년에도 사람이 태어났느냐?"라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10년생들이 11년생들 보고 "걔들은 아직 철없어요."라며 짐짓 어른스럽게 말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간 속에 혼자서만 변하지 않고 서있는 내가 바라본 요새 아이들의 특징을 정리해 본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일 뿐 엄청난 예외가 당연히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난 09년생, 10년생, 11년생 제자들을 다 사랑한다. 얘들아. 쌤 맘 알지?)
하나, 직설적인 화법을 좋아한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아니 98년생들이 학교 다니던 시절만 하더라도 '돌려 말하기' 화법이 조금 더 먹혔다. 상처를 줄까 봐, 혹은 기분이 나쁠까 봐 에둘러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요새 아이들은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 됐고.", "응, 아니야.", "어쩔" 등의 짧고 굵은 메시지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가 정말 많다. 한 번은 그렇게 말하면 서로 상처 안 받느냐고 했더니, 오히려 편하단다. 아직 나는, 적응 중이고.
둘, 손절이 빠르다.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이었다. 그런 성향을 끊지 못해 직장생활에서까지 후회되는 인간관계를 많이 맺었다. 아직도 끊지 못한 관계도 많다. (돈이 얽혀 있어 그렇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잘 지내다가도 나랑 맞지 않다 싶으면 바로 끊어버린다. 험담(?), 아니 그냥 앞에서 대놓고 말한다. "응, 그건 네 생각이고. 나는 다르게 생각하거든. 우리 안 맞는 것 같아. 손절하자."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놀랍지만, 실제로 그렇다.
담임할 때 몇 번 이런 문제로 상담했었는데 정말 예뻐하는 내 제자 왈,
"쌤. 저랑 맞는 친구들과 좋은 추억 쌓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아니다 싶으면 바로 끊는 게 최고예요."
곱씹어 보니 맞는 말 같다. 질질 끌어서 좋게 마무리된 적이 거의 없으니. 청출어람인가 싶다.
셋, 어휘력이 정말.... 너무... 심각하다.
국어 교과서를 읽히는 게 힘들다. 문해력이 천지차이라 한 편의 글을 어떤 아이는 10분 만에 읽고 어떤 아이는 30분이 되어도 못 읽는다. 한자어를 모르니 낯선 단어는 무조건 줄임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함축'이라는 단어의 뜻이 뭐냐고 물어보면 10명 중 5명 정도는 '함께 축구'라고 말한다. 국어교사로서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교무실에서 따로 혼낼 때, 최대한 쉬운 말로 얘기해줘야 한다. '성찰'보다는 '반성'이 좋고, '폄하'보다는 '깎아내리다'라는 말로 풀어줘야 한다. 어휘 실력이 퇴화하는 느낌이다..
넷, 디지털 미디어에 많이 노출됐지만, 정작 사용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같은 논리로 PC방에서 게임은 많이 하는데 정작 PPT를 제작하거나 미리캔버스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방법은 잘 모른다. 요새는 교육청에서 1인 1 노트북 사업을 진행해 아이들이 학교에 노트북 한 대 정도는 다 가지고 있어 디지털 미디어 수업을 해보면, 한 시간 동안 로그인 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 적도 많았다. 심지어 본인 계정의 비밀번호도 모르고, 이메일 보내는 법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교사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애들 다 로그인시켰다. 하나씩 알려줘야 배우고, 배운 후에야 성장한다고 믿는다...!
다섯, 코로나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세대다.
09년생은 초5 때, 10년생은 초4 때, 11년생은 초3 때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는 약 3년 간 학교를 마비시켰고 그로 인한 여파는 아직도 현장에서 겪고 있다. 우울, 불안, 자해/ 자살, 폭력성, 그리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 등과 가정 내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입학한 중학생들은 코로나를 겪지 않은 예전의 제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100명이 입학하면 100개의 고민을 안고 들어오는 셈이다. 마음속에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있는 아이들과 소통하며 마음 열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고되다. 안타깝고 슬프다. 그저 나는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함께 찾아가는 동행자로서 최선을 다할 뿐.
여섯,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되바라져 보일 수 있다. 말 한마디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드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딱 봐도 현실가능성 없는 일을 가지고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달려드는 모습이 한심해 보이기까지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제 나름의 삶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요새 애들 아주 별로야."라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예쁜 아이들이다. 물론, 그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88만 원 세대.
대학 시절 나를 표현하던 수식어구는 바로 88만 원 세대였다. 그 말이 나를 모두 설명해주진 않지만 그 말 덕에 내가 살아온 시절과, 내가 겪어갈 미래를 어른들에게 설명하기 쉬운 적도 많았다. 왜 이렇게 취업이 어려운지, 왜 다들 내 주변 친구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그저 한 마디면 이해를 받곤 했다.
위의 여섯 가지 특징이 지금의 중학생들을 모두 다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오만이다. 다만 혹시 조금 전에 마주친, 혹은 부딪힌 그대들의 10대가 위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면, 그래서 마음이 좀 상하고 기분이 나쁘고 부글부글 화가 나기도 했었다면 "도대체 왜 저래?"라는 마음이 솟구쳤다면, 조금만 차분히 그 아이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 글이 읽혔으면 한다.
또, 매일 같이 "너네 도대체 언제까지 쌤 속 썩일래? 말 안 듣지? -_-"라며 잔소리하는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사소하지만 사랑을 담은 선물이었으면 싶다.
그러니까 내일은 부디 무사히. 별일 없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