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Nov 17. 2024

낭만에 대하여

꼭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나의 낭만

사방이 조금씩 어두워지자 멀리 보이는 도쿄 타워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었다. 붉은색의 타워, 그리고 노란색의 조명.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조용한 음악과 산미 가득한 커피, 그리고 적당히 짭짤한 크루아상 샌드위치가 어울리는 카페, 도쿄 타워가 보이는 카페의 창가 자리는 도쿄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곳, 그 자리에 앉아 같은 메뉴를 먹으면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미처 떨쳐 내지 못한 걱정도 사라지는 듯한 기분.


으레 그렇듯이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노트북을 꺼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녀석이었다. 취직에 성공했을 때, 받은 선물이었다. 사양도 한참 떨어지고 이젠 배터리도 간당간당하지만 버릴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은 볼 때마다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거냐’고 했지만, 이상하게 이 노트북으로 글을 쓸 때면 막힘없이 술술 풀렸다. 처음 출판한 책도, 이 노트북으로 모든 원고를 작성했다. 워드 작성에 충실한 데다 의미까지 있으니 바꿀 이유가 없었다.


부팅이 되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산미가 가득한 커피가 좋아졌더랬다. 예전에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커피를 좋아해 먹을 줄은 몰랐다.


- 웩, 이렇게 쓴 걸 왜 먹어? 그것도 4,000원씩이나 내가며?


툴툴거리던 나였다. 그런데 이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도 역시, 작업을 시작하려면 커피가 필요했다. 늘 마시던, 커피 맛이 그리웠다. 크루아상 샌드위치 한 입 물고, 적당히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메일함을 열었다.


대부분 쓸데없는 메일이었다. 대출, 투자, 아니면 아주 오래전 가입한 쇼핑몰 사이트의 개인정보이용약관 변경 등에 관한 소비자 동의... 의미 없이 스크롤을 넘기다 문득, 눈에 걸리는 제목이 있었다.


- [작가님. 쓰임출판사 차이경입니다.]


제목에 홀려 클릭했다. 도쿄까지 온 이유가 무색했다. 숨 가쁘게 바쁘던 한국 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쉬겠다 마음먹고 온 곳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2주 동안은 절대, 일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다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은 말했다. 클릭해, 클릭해...


- 작가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차기작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자 해서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지난 도서가....


요지는 차기작 준비에 대한 회의였다.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두근, 두근, 두근. 분명 쉬겠다고 온 곳이었는데 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머릿속엔 이미 ‘휴식’ 대신 ‘차기작’이라는 단어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차기작, 차기 도서, 나의 세 번째 책.


작가,라는 멋들어진 이름이 ‘직업‘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5년까지만 해도 수도권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그뿐이었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현실에 쩌들어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늘 갈증을 느끼며 사는 그런, 교사.


전환점이 되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과의 글을 엮어 모은 한 권의 독립 출판 서적이었다. 그러니까 2024년이던가. 학급 문집을 만들어 보겠다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당시 가르쳤던 이현, 다경, 서윤이와 함께 글을 썼고, 열심히 편집했고, 독립 출판을 했다.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아 서툴렀지만 덕분에 한 권마다 정성이 담겼다. 새벽까지 작업을 해야 해서 고됐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다. 그토록 염원하던 ‘글’이고 ‘책’이었다. 따지자면 열한 살부터 소설가를 꿈꾸지 않았던가.


아이들과 함께 만든 책이기에 자랑하고 싶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학교 이곳저곳에 홍보도 하고 조촐하게 사인회도 마련했다. 예산 때문에 20권도 인쇄하지 못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아이들만의 글이 아니라, 선생님만의 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글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학교 인스타 계정, 페북 계정, 그리고 유튜브 등에 우리의 책이 꾸준히 소개됐다. 한 번 알고리즘을 타자 무섭게 퍼져 나갔다. 학교로 찾아온 언론사의 취재, 얼결에 유퀴즈 프로그램까지 출연하고 나자, 나는 글을 쓰는 선생님, 세 명의 아이들은 글을 쓰는 청소년 작가로 유명해졌다.


2021년부터 블로그에 써 오던 글이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출판사 곳곳에서 계약을 원했다. 아직도 이런 ‘학교’가 있느냐, 아직도 이런 ‘아이들’이 있느냐, 그리고 그런 선생님이 실제로 있느냐며 너도나도 계약을 원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얼떨떨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로서의 권리를 얼마나 지켜주느냐였다. 이야기 속에 등장한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제대로 된 계약을 해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글에 실린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 마음을 알아주고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이 쓰임출판사였다. 그리고 그때, 내 책을 담당한 신참 편집자가 차이경 씨였다. 일하며 애 키우는 워킹맘. 글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에 우리는 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곁을 많이 내주었다. 관계 중심적인 나에겐 득이 되는 관계였다.


그렇게 해서,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출판한 <중학생만 13년>은 그야말로 초 대박이 났다. 소설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에세이 분야로서는 꽤 괜찮은 실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학생이었다.”


라는 카피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 우리는 언젠가 학생이었지, 우리 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 옛날 어디 즈음에 학교란 공간에서 지낸 적이 있었지, 그랬지, 하는 마음이 모여 책 구입으로 이어졌다. 인스타에서, 릴스로, 쇼츠로, 그렇게 조금씩 번져 나간 것이 10만 부를 훌쩍 넘어 버렸다.


그때부터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어려웠다. 밤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수업을 하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 둘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잠을 줄이고 줄이면 결국 방학 직전에 2주 정도는 병가를 내야만 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작가냐, 선생님이냐, 그것은...


전업 작가로 전향하자마자 일은 술술 풀렸다. 오글거리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교류했던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시선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덕에 어느새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있었다.


5년 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기업체. 강연을 원하는 곳, 사인회를 원하는 곳이면 한 달음에 달려갔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이후엔 나를 좋아하는 독자와의 소통 때문이었다. 내 책을 읽고 난 후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보면 절로 힘이 났다. 운전도 못하면서 전국을 돌았다. 그때 처음 코레일 VIP가 되었다.


잠시, 아주 잠시만 쉬고 싶었다.

도쿄로 행선지를 정한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한국과 시차가 없으며 커피가 맛있으며, 여행지로 즐거운 기억이 있었던 곳. 도쿄 타워 앞 카페에서 처음으로 첫 책의 탈고를 마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롯폰기의 평일은 한적했고, 카페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며, 그동안 막혔던 글을 마무리한 순간을 추억하고 싶었다.





- 전 2주 후에 돌아갑니다. 그동안 생각 정리해서 차기작 준비도 해 볼게요. 늘 감사해요.


간단한 답을 보냈다. 오랜동안 함께해 온 동료에 대한 예의였다. 차기작은, 아직 생각한 바 없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심장이 두근거렸다. 글을 쓰고 싶다. 얼른 한국에 가서, 아니 한국 가기 전에... 가만있어 보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갔다. 흩어질세라 노트에, 앱에, 그리고 워드에 빠지지 않고 기록했다.


커피는 식어가고, 한 입 베어문 크루아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노래는 흐르고, 창밖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저마다의 행선지를 향해 걸어가고, 롯폰기의 한가운데 서 있는 도쿄타워엔 반짝, 하고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