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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Mar 17.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34)

[분석 5_2/4]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의 자의적 정의.


‣자존감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자기 계발에서 자주 다루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자존감이 뭔지 명확하게 정의해주는 일은 드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특정 개념을 알고 있다고 하려면 타인이 물어봤을 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리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을 정의함으로써 강함을 분석하겠습니다.


1)자존감 :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자 높은 회복 탄력성.


우리가 자존감이 높다고 여기는 사람은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가령 어떤 일을 할 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하는 정직함이 자존감의 기초 요소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가능하고 객관적으로 일의 난도와 자기 능력의 척도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죠. 만약,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이 할 수도 없는 일을 보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를 객기부린다고 평하겠죠.


최근 인터넷의 댓글 창을 보면 자존감이 높아도 문제다, 라는 식의 글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는 이게 자존감에 대한 정의가 섬세하지 않게 내려져서 나오는 말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 자존감이 높아서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거든요. 대체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실패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실패로 인한 슬픔과 좌절도 받아들인 후 다시 시작하죠.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며 멘탈이 좋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공정함을 느낍니다.


2)자존심 : 타인과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의 높낮이.


자존심은 조금 더 세밀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다수의 사람은 자존심을 자존감과 헷갈리거든요. 우선 자존심이 센 사람의 특징을 본다면 교만함과 불만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대체로 그들은 나는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야, 라며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그래서 타인보다 더 노력하고 좋은 결과를 내려고 애씁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성과도 그들은 불만족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죠. 우리는 이를 완벽주의라고 일축하기도 하는 데 자존심과 완벽주의는 다릅니다. 차라리 장인정신이라는 말이 자존심과 더 어울립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세계 최초로 문워크를 보여줬던 날, 정작 그는 울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연습하고 기대했던 바에 비해 문워크의 동작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요. 하지만 세계는 그의 퍼포먼스에 열광했었죠. 자존심이라는 건 이처럼 자신에 대한 기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결국 타인에 대한 기대로도 확대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 대접에도 홀로 과민반응하는 거죠. 대표적으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무관심을 힘들어합니다. 이는 그들이 느끼는 주체의 크기와 타인이 바라보는 주체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아서입니다. 이 때문에 이 괴리를 상처로 받아들이는 거죠. 여기서 한 가지 포인트를 짚어야겠습니다.


자존심이 높다는 건 자기애가 강하다는 것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을 수도 있거든요. 가령 자기가 만든 창작물이나 성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존심이 센 사람은 아예 공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파괴해 버리고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죠. 그러나 자기애만 강한 사람이라면 그걸 발표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맹목적인 애착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센 사람은 무관심이 곧 무시로 받아들여지고 인간관계에서도 마찰을 일으키고는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이 외려 무관심을 즐길 때도 있는데 반해 그들은 무관심을 곧 치욕으로 느끼는 거죠.


자존심이 센 사람은 분명 피곤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이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오직 자존감만 높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자존심도 매우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기와 타협을 덜 하기에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기에게 버거운 일을 맡아봄으로써 더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존심에 센 편이죠. 그래야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결을 지닐 수 있고 남들은 타협하거나 현실을 택했을 때, 끝까지 자기 고집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요. 장인이 괜히 고집불통인 게 아닙니다. 고집불통이 아니면 장인이 되기 전에 상인이 되고 맙니다.


좀 더 확장해서 자존심이 센 사람은 타인에게 바라는 바가 있기에 타인을 대하는 데도 명확한 기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여러분 주위에도 바람을 피울만한 모든 조건이 구비됐는 데도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존심이 셀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자기에 대한 기대가 높기에 타인을 대할 때도 거기에 상응하는 대접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연인에게 미안해서 바람을 안 피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에 대한 기대가 높아서 안 피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바람을 피우는 자기 모습을 용납할 수 없어서 바람을 안 피우는 겁니다. 이걸 문장으로 뽑아낸다면 이럴 겁니다. 그는 내게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니야. 나는 이런 하찮은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야. 또한 자존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있습니다. 팀 단위의 업무를 진행할 때, 모두가 포기하고 괴로워할 때 끝까지 남아서 버티는 사람도 자존심이 셀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세간에서 자존심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다루거나 비판하는 건 정의를 잘못했거나, 다면적으로 검토해보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은 실로 내면을 가꾸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힘입니다. 이런 자존심이 있어야 자기 가치를 높일 분만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 변화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거든요.


3)자신감 : 특정 대상에 대한 자기효능감.


자신감은 위의 두 개념인 자존감, 자존심과는 달리 오직 주체에만 속한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감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와 인식에서 나오는 힘이거든요.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말하자면 자존감, 자존심은 개인의 품성적인 영역이라면 자신감은 주체에게 어떤 과제를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대장장이에게 호미를 만들라고 하면 자신 있게 하겠지만, 시를 지으라고 하면 자신감을 잃어버리겠죠. 같은 주체이지만 과제에 따라 자신감은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는 대상과 주체 사이에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장장이에게 호미는 당연히 만들 수 있어야 하는 물건이지만, 시는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더욱이 똑같은 호미를 만드는 상황이라고 해도 누구와 경쟁하느냐에 따라 자신감은 현격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같은 동네 대장장이들과 호미를 만들어 1등을 뽑는다면 다들 한 번쯤 해 볼만 하다면서 도전할 겁니다. 그러나 전국 단위의 대회라면 자신감이 없어 참여를 고사하는 사람이 늘겠죠. 이건 그들이 만들어야 하는 호미의 등급이 달라져서입니다. 즉 호미와 대장장이는 여전히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전국 단위에서 입상할 수준의 호미와 대장장이는 헐거운 관계를 지니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자신감은 가변적이면서도 높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닙니다. 가령 한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드는 호미가 세계 제일이라고 믿고 진실로 자신만만해한다고 칩시다. 만약 그가 동네 대회에서는 입상했으나, 전국 대회에서는 전혀 입상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다른 예로 조별 과제에서 이렇게 말해주는 조장은 가장 믿음직한 사람일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조별 과제라면 한 번도 A+ 놓친 적 없거든요. 발표만 제가 하게 해주시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문제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말해놓고 당일 발표 때, A4용지를 인쇄해서 읽고 있다면 여러분은 부들부들 치를 떨 겁니다.


“자신만만하길래 믿었는데, 완전 미친놈이지 뭐야.”


이 세 가지 개념을 다 소개한 이유는 셋 모두가 조화돼야만 내면의 힘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자존심 없이 자존감만 높다면 그는 현실과 타협하고 고만고만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자존심과 자신감만 높다면 타인에게는 재앙으로 작용합니다. 그와 같이 일하려면 미쳐버릴 겁니다. 그럼 자존감도 높고 자신감도 높은 사람은 어떨까요. 거듭된 실패를 하고서도 경험해봤으니 됐다면서, 혼자 쿨내 진동하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화가 중요합니다. 저는 높은 자존감과 중간 정도의 자존심과 자신감이 좋다고 봅니다. 그래야 타인을 힘들게 하지 않으면서 자기 나름의 철학을 지니며 살 수 있거든요. 이 아래로 퀴즈 형태로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이 높은 사람을 제시해볼 테니 한 번 풀어보세요.


조건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카페에 갔습니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대각선 방향에 미모의 여성이 앉아서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네요. 저도 모르게 계속 눈이 가는데 친구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숫기가 없어서 계속 보기만 하는 저와는 달리 친구는 눈을 반짝이면서 말합니다. 연락처를 물어보고 오겠다고 말이죠. 이윽고 친구가 의자를 박차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겁니다. 곧 몸을 돌려 돌아오는 친구를 보니 치통을 앓는 사자같은 표정이군요. 제가 어색히 웃으며 친구에게 말을 걸자.


갑)내가 연락처 받는 일이라면 잘하거든. 근데 이번에는 운이 안 좋았는지 잘 안됐어. 왜 그럴까?

을)야, 내가 물어보니까 바로 거절하더라고. 솔직히 클럽 가면 저 정도 여자 연락처는 받을 수 있는데 카페라서 그런가 보다.

병)어쩐지 너무 예뻐서 나한테는 과분해 보이더라. 지금 누군가를 만날 마음이 없다고 하네. 말은 그런데 뭐....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예의 바르게 거절한 거겠지.


이 중 갑, 을, 병이 각각 자존감, 자존심, 자신감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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