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 Bodyscape> @ 갤러리 현대
삼청로 갤러리 현대에서 이건용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건용 작가는 현재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한국의 동시대 작가입니다. ‘장소의 논리’, ‘신체 드로잉’ 등과 같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한국 미술사에 큰 영향을 준 그의 작품에서는 차분한 노련함과 뜨거운 열정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갤러리 현대에서의 전시는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 시리즈에 집중합니다. ‘신체 드로잉’은 문자 그대로 신체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작품입니다. 한 작품을 그릴 때 작가는 한 자리에 서서 혹은 앉아서 자신의 몸 움직임을 100% 반영하려 노력합니다.
이건용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감상자는 그의 작품과 마주함을 통해 단순히 회화만 포착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 편의 퍼포먼스를 관람하게 됩니다.
그림과 함께 설명을 들어야 더욱 와닿을 이건용 작가의 작품이기에, 서론은 이만 짧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중 특히나 매력적인 것을 위주로 본격적인 도슨트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액자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캔버스 천 뒤에 섭니다. 그 천의 높이는 작가의 키와 비슷합니다. 그곳에서 천 너머로 손을 뻗어 앞면에 붓칠을 합니다. 손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검은색으로 칠하고, 민트색으로 한 번 더 칠합니다.
그런 다음, 물감이 칠해진 경계까지 천을 접어 내립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낮아진, 그래서 아까보다는 팔을 더 길게 뻗을 수 있게 된 상태로, 또다시 캔버스 앞면을 칠해나갑니다.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캔버스 뒤편에서 천의 가장 아래쪽까지 칠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작품이 완성됩니다.
완성된 그림은 작가의 3차원적 행위를 2차원에 담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작가의 작품 창작 과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구현하지요.
앞서 이건용 작가는 작품 창작 중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100% 반영하려 노력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서 ‘100’이라는 숫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건용 작가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치를 넘어서려 애쓰지 않습니다. 150%나 200%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움직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다고 하여 좌절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이 뻗을 수 있는 곳까지 팔을 뻗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80%나 90%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담아내는 100%로 나아가려 한다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미련을 갖지는 않습니다.’ 저에게 이건용 작가의 회화를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 그러나 그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정성. 그것이 이건용 작가 작품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딱 하나 골라 보라고 한다면, 저는 바로 이 작품을 꼽겠습니다. 강렬한 색상의 작품이지요. 그러나 단순한 시각적 인상이 애호의 이유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언제 창의성이나 예술성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일정 부분은 제한되어 있고 나머지는 자유로운 상황 속에서 창의성이 극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황이 아닌, 어느 정도의 제재가 걸려 있는 상황 말입니다.
사실 이건용 작가의 작품에는 이미 한 번의 제재가 걸려있습니다. 바로 붓을 든 자리 그 지점에서 위치를 변경하지 않은 채로 팔만 휘둘러 그림을 그린다는 것인데요, 이 작품을 그릴 때 작가는 새로운 제한적 상황을 추가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팔에 두 개의 막대를 붙였습니다. 하나는 팔꿈치 관절 부분에, 다른 하나는 손목 관절 부분에 묶어 두었죠.
가장 제한된 상황 즉, 팔꿈치와 손목 관절 모두에 막대가 붙어 있는 상황에서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신체 관절은 손가락뿐입니다. 그렇다 보니 붓질 하나하나의 획은 짧을 수밖에 없지요. 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큽니다.
이후 손목 관절에 묶어둔 막대를 제거합니다. 작가는 여전히 팔꿈치 관절은 사용할 수 없지만 이제 손목 관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전의 상황보다 붓질 하나하나의 획이 조금 더 길어집니다.
가장 자유로운 상황이자 대부분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하는 신체 상태 즉, 손목과 팔꿈치 관절을 모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다다릅니다. 이제 작가는 길쭉길쭉한 획을 아무런 불편함 없이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건용 작가는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거기에 새로운 한계를 하나 더 추가하니, 그림을 그리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놀랍고 감동적인 작품을 선보입니다.
다음으로는 이 작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림을 볼 때 무엇이, 어떤 모양이 떠오르나요?
네, 아마 대부분은 ‘날개’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실제로 작가가 캔버스 앞의 한 점에 서서 작가 자신의 날갯짓을 기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날갯짓을 할 수 없습니다. 날개가 없으니 마땅히 그러하죠. 그러나 이건용 작가는 자신의 팔로 날갯짓하는 시늉을 반복하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그 기록의 결과물이 바로 날개입니다.
이건용 작가의 작품은 추상화입니다. 그리는 방식을 보아도,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보아도, 그 어떠한 구상화적 시도를 확인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이건용 작가의 날개를 봅니다.
추상적인 행위를 기록함으로써 추상화를 그렸지만, 관객은 명백한 하나의 구상적 요소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참 신비롭습니다.
이건용 작가의 작품을 몇 번 접했다면, 이제는 작가가 이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 자연스럽게 그 퍼포먼스 과정이 머릿속에 상영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작가는 캔버스 앞에 등을 지고 가만히 서서, 팔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물감을 칠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서 있던 부분, 그리고 캔버스에 등을 마주하고 서 있었기에 작가의 팔의 움직임으로 잡아낼 수 없었던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물감으로 채워집니다.
분명 작가는 무엇인가 구상적인 것을 그려낼 의도가 없었을 텐데, 감상자는 작품에서 신체라는 구상적인 요소를 포착합니다.
한 가지 더, 여러분께서 꼭 발견했으면 좋겠다 싶은 점 한 가지는, 이 작품은 유독 캔버스가 걸려있는 위치가 낮다는 점입니다. 왜일까요?
네, 아마 많은 분께서 이미 예상했을 것입니다.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이 관객의 머릿속에서 더욱 잘 구현되도록, 작가가 작품을 그릴 당시 고정되어 있었던 캔버스 높이로 전시를 해 둔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기획은 위의 작품에만 해당하는 특징은 아닙니다. 이번 전시의 대부분 작품이 작가가 서서 그릴 당시 높이에 작품이 걸려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듯, 여러분도 더욱 편하게 작가의 퍼포먼스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건용 작가의 개인전 [Bodyscape]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이건용 작가는 그의 뛰어난 작품으로 지난해 미국 아트플랫폼 아트시(Artsy)가 선정한 ‘지금 주목해야 할 작가’ 35명 중 유일한 한국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국내외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이지요.
이처럼 현재 진행형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건용 작가의 매력적인 개인전을 놓치지 마세요! 삼청로 갤러리 현대에서 무료로 진행되고 있고,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전시는 2021년 10월 31일까지 진행됩니다.
지금까지 [도슨트 by 푸름], 푸름이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5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