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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른솔 Sep 30. 2015

아비뇽에서의 카우치서핑 1

지쳤던 내가 편하게 쉴 수 있었던 Michel의 집

지난 이야기

 7월 8일 파리를 당장 떠나야하는데, 7/8-7/10까지 2박 3일 동안 잘 곳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당시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를 너무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에 야간 버스에서 자고 런던으로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묵느니 그냥 그 돈으로 런던에 가서 뮤지컬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7월 8일 밤. 나는 다시 런던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7월 9일 아침에 런던에 도착해서 시내를 돌아본 후, 밤에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봤다. 기대한 대로 훌륭했다.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파리행 야간 버스를 탔다. 그렇게 2박을 야간 버스에서 해결한 후 7월 10일 아침, 파리에 도착했다.


피곤했다. 이틀째 씻지도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계획하긴 했지만 버스에서 2박을 하는 건 거의 미친짓이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아비뇽(Avignon)으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기차표를 샀다. 아비뇽은 작은 도시지만 일정은 무려 5박 6일(7/10-7/15)이나 되었다. 중간에 일정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아비뇽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런던과 파리에서 제대로 쉬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내 여행은 이제 시작이니까 마음을 넉넉하게 먹기로 했다.


비가 많이 왔던 내가 도착하던 날의 아비뇽

아비뇽에 도착하니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기차역에서 버스정류장까지만 뛰어가면서 비를 잠깐 맞았는데 상당히 많이 젖었다. 씻지 못한 상태라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비뇽 시내에 도착하니 미셸이 마중 나와 있었다. 미셸은 장난기 있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내가 아시아식으로 목례를 하자 약간 과장되게 목례를 따라했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미셸은 차를 가지고 나왔는데 차에 타니 굉장히 마음이 편했다. ‘살아남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미셸과 대화를 나누며 좀 놀라웠던 것은 미셸은 영어를 생각보다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왠지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때까지 실수에 대한 불안감에 영어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는데 미셸은 나랑 수준이 비슷한 것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받은 최근의 레퍼런스 보여주겠다.

“Language was the biggest barrier for us.” - 말레이시아의 Ahmad Zuhairi

(언어는 우리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다.)

“He has a bit of barrier in relation to his English skills” - 영국의 Sergio Sandes

(그의 영어 실력은 약간의 장벽이 되었다.)

“His English is not very good so language can be barrier.”- 슬로바키아의 Oto Kern 

(그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언어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미셸의 영어 수준이 나랑 비슷하다는 걸 알고 나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영어를 잘 못하고 이 사람도 잘 못하니까 실수에 대한 불안감이 비교적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를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 아비뇽에 온 이후로부터 인 것 같다.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이 사람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까 잘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영어를 쓰는 나라는 유럽에서 영국과 아일랜드뿐이다.)


미셸의 집에는 친구의 가족이 놀러와 있었다. 미셸은 혼자 살기 때문에 북적거리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아 좋았다. 방을 안내받고 짐을 풀어놓으니 안도감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잘 곳없이 돌아다닌 3일 동안 워낙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곤했기에 더욱 그랬다. 씻고 나오니 미셸은 와인과 안주를 가져와 먹자고 했다. 친구 가족들도 앉아서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미셸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그의 친구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 미셸이 통역을 해주었다.


와인을 먹다보니 메인 요리가 다 되었고 메인 요리를 먹었다. 알고 보니 와인과 과자가 전채요리(Appetizer)였다. 메인 요리는 감자와 생선 이용한 요리였는데 먹을 만했다. 메인 요리가 끝나니 치즈 타임이 왔다. 치즈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약한 맛부터 시작해서 강한 맛으로 마무리를 한단다. 그 다음엔 케이크 & 과자 타임이었다. 치즈 타임 정도 되었을 때 이미 배가 터질 듯해서 도저히 그 이상 먹기는 쉽지가 않았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따듯한 음식을 먹는 것이라 걸신들린 것처럼 많이 먹었는데 미셸과 그의 친구들은 보통 지금의 나 정도는 먹는 것 같았다. 참 많이 먹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밸런스 조절을 해봐야겠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미셸의 정원을 구경하고 바로 잠에 들었다.


푹 잤다. 일어나니 미셸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뭔가 요리하는 건 아니었고 유럽 보통의 아침식사인 빵, 버터 그리고 커피를 차렸다. 특별한 것은 커피를 사발에 타먹는 다는 것이었다. 우아하게 한손으로 커피를 한 잔 할 것 같았는데 사발에 국처럼 두 손으로 먹는 것이었다. 좀 신기하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열심히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여유롭고 풍족한 아침식사였다. 하아. 

나를 놀라게 했던 사발 커피

미셸은 평일에 직장을 가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아비뇽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혼자서 다니는 걸 좋아하니 잘 되었다. 아비뇽은 큰 도시가 아니라서 설렁설렁 걸어 다니기로 했다. 아비뇽은 지금 연극제 기간이라 어딜 가나 북적였고 관광객도 많았다. 아비뇽 연극제는 매년 여름 아비뇽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규모의 연극 축제다. 나는 딱히 연극제로 보러 이곳에 오진 않았지만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연극제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여러 나라의 길거리 연주자들이 한 건 하러 오기도 하고 연극을 홍보하려 무대용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는 것도 자주 보였다.


걷다보니 파리에서 산 샌들의 끈이 끊어져 새 것을 다시 사기로 했다. 아아. 그동안 얼마나 걸어 다녔으면 일주일 만에 끊어져버렸을까. 튼튼해 보이는 샌들을 사고 걸으니 한결 나았다. 신던 샌들은 바로 버렸다. 나를 위해 일주일 내내 혹사당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3개월이나 여행을 하다 보니 버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짐이 많아지면 힘들기 때문이다. 항상 그날그날을 위해 소비하고 웬만하면 저장해두지 않는다.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도 않는다. 갖고 싶은 것이 보여도 들고 다녀야 할 걸 생각하면 이내 포기한다. 오랜 시간 동안 여행을 하면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새 신발(왼)과 헌 신발(오)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다 보니 미셸이 나를 데리러 올 시간이 되었다. 미셸의 집은 너무 외곽에 있어서 도저히 혼자서 올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 나는 미셸에게 의지해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나의 자유로운 여행을 상당히 제한하는 것이 되어 좀 아쉬웠다. 뭐 그래도 미셸의 집은 좋았고 아비뇽에선 일단 쉬어가기로 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메인 요리

집에 와서 좀 쉬다보니 미셸이 저녁을 준비하는 것 같아 구경했다. 도와줄 거 없냐고 물어보니 그럴 건 없고 옆에서 말상대나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요리는 딱히 어려워보이진 않았지만 맛있어 보였다. 오븐에 넣고 조리가 다 될 동안 와인과 안주(전채요리)를 먹기로 했다. 미셸의 친구들도 하나 둘 모여 프랑스의 긴 저녁식사를 오늘도 또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다. 저녁 시간을 대충 계산해도 2시간은 되었을 것 같다. 어제는 지치고 배고픈 마음에 정신없이 먹기만 했는데 오늘은 좀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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